주인 없는 포스코, 정권의 전리품
주인 없는 포스코, 정권의 전리품
  •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 호수 138
  • 승인 2015.04.24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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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잔혹사 이유
▲ 국민기업 포스코는 민간의 소유임에도 정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사진=뉴시스]

정권이 바뀌면 꼭 흔들리는 기업이 있다. 포스코다. 주인이 국가에서 다수의 소액주주로 바뀌면서 언뜻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정권의 전리품처럼 경영권을 주고 받으며 이권을 챙기기 바쁘다. 포스코 잔혹사의 이유를 살펴봤다.

기업은 주인 있는 기업과 주인 없는 기업으로 나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오너 일가가 확실하게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고 포스코나 KT, 국민은행처럼 지분이 잘 분산돼 있어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들도 있다. 계열사 편법 지원이나 부당 내부거래, 총수의 전횡 등이 재벌 체제의 문제로 지적되지만 정작 주인이 없는 기업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재벌 총수는 자식과 손자에게 기업을 물려줘야 하기 때문에 한 세대 이상을 내다보고 경영을 하지만 임기가 정해져 있는 전문 경영인은 10년 뒤의 미래보다 당장 올해 실적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재임 기간에 최대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설비투자를 미루거나 과도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장기적인 성장성을 희생하는 경우도 많고 주주들 눈치를 보면서 고액 배당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기업 포스코의 몰락은 주인 없는 기업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 직원들은 정준양 전 회장이 재임했던 2009년부터 2014년까지를 잃어버린 5년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부채 비율은 58.7%에서 88.3%로 급등했다. 영업이익률은 10.6%에서 4.9%로 반토막이 났는데 배당성향은 오히려 높아졌다. 2013년에는 당기순이익의 46.7%를 배당으로 지급했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바뀌고 물러난 회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데자뷰를 거듭해 왔다. 주인 없는 기업이지만 한 주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낙하산 회장을 내리꽂고 그때마다 전임 회장의 비리를 들춰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정권의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부정부패와 결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포스코는 1965년 대일 청구권 자금 5억 달러 가운데 1억1948만 달러를 자본금으로 만든 국민기업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로 건설한 제철소”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선조들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포스코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보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1968년 주식회사 설립 이후부터 1981년까지 정부가 포스코에 투자한 돈은 모두 2205억원, 이후 2000년까지 정부가 배당과 지분 매각 등으로 회수한 돈은 3조8899억원이다. 투자 수익률이 연 평균 16.1%, 같은 기간 은행 대출금리 평균 14.4%보다 높았다. 민영화 이후 2000년 초반에는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돼서 민영화의 성공 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 없는 기업 포스코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포스코는 단일 주주의 지분 비율이 3%를 넘을 수 없다. 주인이 국가에서 다수의 소액주주로 바뀌면서 언뜻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정권이 전리품처럼 경영권을 주고받으며 이권을 챙겼다. 포스코는 민간이 소유하되 정권의 영향력 아래 경영이 휘둘리는 가장 안 좋은 민영화의 사례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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