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 있어야 다리를 뻗을 텐데
누울 자리 있어야 다리를 뻗을 텐데
  • 박용선 기자
  • 호수 135
  • 승인 2015.04.03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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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非금융 3인방 매각 지지부진

▲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한국항공우주산업을 매각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사진은 항공우주산업 사천공장. [사진=뉴시스]
“기업 인수 후 매각, 동시에 수익 창출.” 산업은행 ‘기업 금융’의 기본 방침이다. 비非 금융업체에 한해서다. 현재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한국항공우주산업(카이ㆍKAI)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매각을 계획 중이지만 그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팔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누울 자리가 있어야 다리를 뻗는다는 얘기다.

“비非금융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산업은행의 방침에 어긋난다. 경영을 목적으로 지분 또는 기업을 인수하는 게 아니다. 단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차원이다. 이후 인수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능력 있는 업체에 매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은행으로서 수익도 챙긴다.” 기업 인수 후 매각, 동시에 수익 창출. 산업은행 ‘기업 금융’의 기본 방침이다. 산은은 현재 비非금융업체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한국항공우주산업(카이ㆍKAI)의 지분을 각각 31.46%, 50.75%, 26.75%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장기적 관점에서 매각을 계획하고 있다. 때문에 매각작업이 지지부진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2000년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31.46%)로 올라섰다. 8년 후 매각에 나섰다. 포스코ㆍGSㆍ한화ㆍ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 문제로 협상이 결렬됐다. 2009년 1월이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방침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시기를 보고 있을 뿐이다. 벌써 6년째다. 산은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당장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말을 이었다.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해야 하는데, 시장에서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경쟁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매각 준비는 항상 돼 있다.” 조선시황이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끝없는 침체기, 매수자가 없다

글로벌 조선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2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46척, 118만CGT(표준화물선환산 t수)를 기록했다. 2009년 9월 30척(77만CGT)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2월 241척(520만CGT)과 비교하면 81% 감소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실적도 감소했다. 2010년 1조1448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은 2012년 4862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현재까지 400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가도 떨어졌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만~3만원이던 주가는 2014년 들어 하락세를 띠기 시작했고, 2015년 3월 25일 현재 1만82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대우조선해양을 굳이 지금 팔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원한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 상황에서 제값을 받고 팔기는 어렵다”며 “매수자는 기업의 성장성을 보는데 불황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 경기 사이클을 설명하며 매각 시기를 전망했다. “조선업은 경기 사이클이 길다. 약 15년을 본다. 2000년 선박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물동량도 줄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15년 사이클 기준으로 보면, 8년은 더 있어야 선박 발주량이 늘어난다. 업황을 보고 매각 시기를 잡는다면 2023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변동성은 있다.”

 
대우건설도 산은의 매각 리스트에 올라 있다. 산은의 사모펀드 ‘KDB밸류 제6호 유한회사’는 2011년 3조1000억원의 자금을 투입,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매입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지만 매각 작업이 한번도 진행되지 않았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대우건설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주가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은이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당시 주가는 1만5000원. 하지만 2015년 3월 25일 현재 8210원으로 45% 떨어졌다.

때문에 산은은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것보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우건설과 경영개선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수주량과 매출액, 순이익 등 회사의 경영목표 설정에 적극 개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산은이 대우건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시기는 제한돼 있다. KDB밸류 제6호 펀드의 만기는 올 10월이다. 2년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산은이 더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대우건설을 1년 안에 매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2015년 들어 국내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있어서다. 대우건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국내 주택사업 분야가 전체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한다. 대우건설 주가 역시 2015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건설 시장이 더 좋아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우건설 스스로 경쟁력을 쌓는 것도 한계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어느 정도 손실을 받아들이고, 매각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카이(산은 지분 26.75%)는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과 상황이 다소 다르다. 업황이 나쁘지도, 기업가치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카이는 2009년 매출 1조865억원, 영업이익 504억원을 기록했다. 5년이 지난 2014년 매출은 2조3149억원(113%)으로 늘었고, 영업이익은 1613억원(220%)으로 증가했다. 주가도 상승했다. 2011년 주식시장에 상장한 카이는 2012년 3월 30일 2만9050원에 거래됐고, 3년이 지난 2014년 3월에는 5만원대를 기록 중이다.

카이, 한화-삼성테크윈 인수 마무리 돼야

과거 산은은 카이 매각 작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03년, 2005년, 2009년, 2012년 등 정기적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매번 실패했다. 항공기 제작이라는 산업 특성상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를 상대로 한 방위산업이라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2012년을 마지막으로 매각 공고도 나오지 않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카이의 향후 매각 일정은 정해진 게 없다”며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이 카이 매각과 관련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과거 카이 매각을 위한 명분이 사라졌다. ‘주인(오너)이 없어서 성장을 못 한다’는 논리가 깨진 것이다. 국내에서 항공기 제작산업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작용했다. 카이 매각은 주요 주주와 공동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경영권이 포함된다. 현재 카이의 주요 주주는 산은을 비롯해 삼성테크윈(10%), 현대차(10%), 두산의 자회사인 DIP홀딩스(5%)다. 그런데 삼성테크윈이 한화에 인수되면서 카이 지분도 함께 넘어갔다. 하지만 삼성테크윈 직원들이 이 딜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삼성테크윈이 카이 지분 매각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산은 관계자는 “카이의 주요 주주가 지분을 함께 팔겠다고 나서야 매각 작업이 진행된다”며 “우선 한화-삼성테크윈 인수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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