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창자를 본 적 있는가
뒤집힌 창자를 본 적 있는가
  •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 호수 132
  • 승인 2015.03.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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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순대의 재료인 돼지창자엔 돼지의 삶이 담겨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굳이 좋아하는 동물을 고르라면 필자는 단연코 돼지를 꼽는다. 생김이 귀엽거나 맛이 있어서도 아니고 필자처럼 다리가 짧아서도 아니다. 부모와 오남매를 포함한 필자의 일곱 식구가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의 중심에 돼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부모가 축산업 등 거창한 업종에 종사한 건 아니다. 필자의 모친이 순댓국 장사를 했을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북이 고향인 부부는 지긋지긋한 북한 땅을 멀리 떠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겨우 철원이다. “참, 멀리도 왔네요.” 살면서 필자는 비아냥거릴 때가 많았다.
 
부모가 부산까지 갔더라면 요즘 유명세를 치르는 국제시장에 터를 잡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남녀는 38선을 넘어 몇십리를 더 왔을 뿐이며 쉬어가려고 한곳에서 필자를 포함한 오남매를 낳고 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리어카로 고물을 모으고 엄마는 순대를 만들어 좌판에서 팔았다. 흙벽돌로 지은 집은 겨울이 되면 틈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벽이 갈라지곤 했다. 칼바람이 부는 철원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어머니가 순대를 만들게 된 건 아버지가 주워오는 파지나 탄피, 전깃줄로는 일곱 식구의 호구지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남매를 둔 스물여덟의 여성이 왜 하필 ‘고기를 담은 작은 자루’라는 뜻의 만주어인 순타(순대)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후 젊은 여성은 이순耳順이 될 때까지 돼지 창자와 선지로 만든 순대를 팔며 오남매를 키우는 힘든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손은 항상 돼지기름으로 번들거렸는데 큰아들 놈은 자신을 만지려는 엄마의 손을 피하곤 했다.

돼지기름이 얼굴에 묻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손은 싫었지만 그 손으로 만든 순대는 환장하고 먹었다. 어머니가 김이 오르는 순대를 길게 잘라 주면 필자는 김밥 베어 먹듯 먹어 치우곤 했다. 지금은 순대를 동그랗게 썰지만, 그 당시는 어슷하게 썰어냈는데 사람들은 줄을 서서 순대를 먹었고 엄마는 부지런히 기름 묻은 돈을 앞치마에 담았다. 국민 간식으로 대표되는 떡볶이와 달리 순대는 일반인이 만들어 먹기 어렵다. 재료의 특성도 그렇지만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순대의 원재료를 동네 푸줏간에서 받아오는데 비싸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칼로 썰기만 하면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달리 내장이나 머리 등은 특별한 손질이 필요하다. 보통 머리, 창자, 허파, 간 등이 세트로 묶여 있는데 큰 함지박에 몇마리 분량이 담겨 있곤 했다. 그중 우리가 좋아하는 순대의 주재료인 창자 안에는 돼지가 남긴 삶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물의 장이 어찌 아름답겠느냐만 어머니의 돼지 내장 손질을 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뒤집힌 창자 안에 무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다음호에….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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