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할아버지도 귀에 무언가를 꽂고 손녀가 장만해준 최신형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다. 어린이는 어떨까. 공부 시간은 어수선하고 뛰어놀라고 준 자유시간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쥐죽은 듯 고요하다.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에 시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눈동자의 운동을 지배하는 동안신경을 쓸 일도 없다. 아이들의 시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뿐인데 엄마들은 덜컥 안경을 씌어준다. 시력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먼 하늘을 바라보면 몸의 항상성에 의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지만 부모는 안경을 택한다. 안경이 없는 옛날엔 전부 맹인들뿐이었겠나.
편안함과 신속함을 추구하는 정서는 우리 몸의 건강과 역행한다. 인간은 부단히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움직임이 없으면 식물과 다를 바 없다. 바깥 상황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주 찾는 영화관 상황은 어떨까. 팝콘이 담긴 머리통만한 박스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입장해 퇴장할 땐 빈 통을 들고 나온다. 혼자 영화를 즐기는 필자는 귤이나 몇개 먹을 뿐인데 옆의 젊은 연인들은 연방 팝콘과 콜라를 입에 쏟아 붓는다.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형편없이 먹으며 살아가는 인류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혹은 탈이 나도 무엇인가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신앙처럼 존재한다. 유희를 즐기듯 음식을 먹고 조금 달라지기 위해 턱을 깎거나 도화지처럼 온몸에 문신을 한다. 심지어 눈에 축구공이나 거미줄 모양의 렌즈를 착용하기도 하는데 렌즈 표면을 면봉으로 문지르면 색소가 묻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미용을 위한 인위적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에 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 외로 크다.
탈이 나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그릇된 사고의 중심에 병원과 의약품이 버티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신줏단지 모시듯 넣어둔 약을 꺼내 먹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이 약이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약이 없으면 우리는 죽었을까. 평균수명을 배 이상 늘리는데 전적으로 의약품이 기여했다는 믿음은 맞는가. 아니다. 안정적인 영양공급이나 주택보급, 상하수도의 질적 개선, 분쟁 종식, 영유아 사망률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오히려 지나친 약 의존성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작은 병을 중병으로 키우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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