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과 동시에 ‘증세 없는 복지’ 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당조차 “어렵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실제로 월급쟁이가 내는 세금이 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근로소득세는 25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예산(24조9000억원)보다 5000억원 증가했다. 2013년 근로소득세(22조원)와 비교하면 3조4000억원(15.5%) 늘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가액(2조2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54%) 증가했다.
기획재정부는 근로소득세가 증가한 이유는 취업자 수 증가와 임금 상승에 따른 자연증가와 2013년 세법개정 효과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1~2013년 41만2000명이었던 월평균 취업자 수는 지난해 53만명으로 증가했다. 근로소득자의 월평균 임금도 2013년 309만5000원에서 지난해 319만5000원으로 2.3% 올랐다. 여기에 근로소득세 최고세율(38%) 과세표준 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확대하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세 부담이 1조원가량 늘었다.
하지만 정부 세수가 펑크 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는 줄고 근로소득세만 늘고 있어 “월급쟁이에게만 증세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13년 8조5000억원을 기록했던 세수 결손은 지난해 10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법인세는 2013년 43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42조7000억원으로 2.7% 줄었다. 경기침체로 기업 실적이 줄면서 법인세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예산 편성시 전망한 경상성장률(GDP성장률+물가상승률) 6.5%도 실제 성장률(4.6%)에 못 미쳤다. 경상성장률이 1%포인트 줄면 세수도 약 2조원 감소한다. 이는 정부가 줄곧 주창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수 펑크 났지만 법인세 감소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 소득세는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법인세는 감소하고 있다”며 “개인과 법인으로 나눴을 때 한쪽 측면으로 치우친 조세정책은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와 소득세 두가지 측면에서 형평성에 맞는 증세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선 법인세를 살펴보자. 법인세는 증세논란이 일 때마다 항상 도마 위에 올라오는 주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법인세율을 올리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그래서 법인세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는 말도 나돈다. 기재부와 새누리당은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복잡한 법인세율 체계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행 법인세 과세표준은 3단계다. 순수익 기준으로 2억원 이하는 10%, 2억~200억원 이하는 20%, 200억원 초과 기업에는 2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법인세율을 하나로 묶는 거다. 거론되고 있는 단일화 법인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5%)보다 낮은 15~20% 수준이다. 하지만 이 세율을 적용하면 대기업 법인세는 줄고 중소기업 법인세는 높아진다. 중소기업들이 법인세 단일화를 ‘중기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일부에선 “OECD 국가 중엔 10%대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많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2011년 기준으로 스웨덴(15. 7%)ㆍ독일(18.9%)ㆍ프랑스(8.2%)ㆍ그리스(11%) 등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사회보장세가 높아 총 실효 세부담률이 적게는 44.6%(그리스), 많게는 65.7%(프랑스)에 달한다. 한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15.2%, 사회보장세는 13.2%로 총 실효 세부담률은 29.8%에 불과하다.

법인세를 내려도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기업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상위 10대 그룹의 2014년 3분기 기준 사내유보금은 537조8000억원에 달했다. 1분기(508조7000억원)에 비해 5.7% 증가했다.
이정희 교수는 “정부가 법인세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법인세 증가→기업 투자 감소→개인 소득ㆍ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며 “그러나 법인세를 낮춰도 ‘기업 투자 증가→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나타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은 지금껏 세금감면 혜택을 톡톡히 챙겼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감면세액의 93.4%를 매출액 상위 10% 기업(2011년 기준)이 받고 있다. 대기업은 공제혜택을 충분히 누리면서 현금을 쟁여놓고, 법인세는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증세를 논할 때 소득세를 빼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득세를 늘리는 방법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은 현재 세금을 안 내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면세자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로소득 면세자 비율은 2013년 기준 전체 납세자의 31%(512만명)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2012년 기준으로 일본(15.8%), 캐나다(22.6%), 독일(19.8%), 호주(23.1%) 등 주요 선진국의 면세자 비율은 20% 내외다.
또 자영업자나 임대소득자 등 근로소득 외에 다른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5명 중 1명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면세범위를 줄이고, 세원을 넓히기 위해 미국처럼 소득세 포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포괄주의는 법에 적혀있지 않는 소득도 정부 재량으로 과세하는 방식이다. 물론 당사자가 소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현재 한국의 소득세 체계는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소득을 하나하나 열거해 과세하는 열거주의다. 다만 이처럼 면세 범위를 줄이면 그동안 세금을 안 내던 저소득층이 세금을 내야 해 논란이 예상된다.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 탈루 조사해야
반대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초 고소득자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높은 세율을 부과해야 한다는게 주요 내용이다. 예를 들면 5억원이 넘는 초 고소득자의 세율을 현 최고세율(38%)보다 3~5%포인트 더 올리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부자 증세 움직임이 있는 만큼 소득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조세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다. OECD에 따르면 세금 부과 전후의 지니계수(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비교한 조세의 소득재분배 개선 효과는 우리나라가 10.1%로, OECD 평균 34%에 턱없이 못 미친다. 핀란드(46.3%), 오스트리아(43.3%), 독일(42%), 프랑스(39.6%), 스웨덴(37.1%)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일본(31.2%), 미국(23.2%)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유리지갑인 월급쟁이의 근로소득세를 더 걷기 전에,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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