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를 대표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롯데그룹과 CJ그룹이 후계 자리를 놓고 엇갈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 회장이 장남을 경영에서 끌어내리고,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반면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이후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온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현해탄 경영’, 차남 이을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형의 부재에도 일본 롯데를 경영하지 않고 당분간 한국에 집중키로 했다. 1월 22일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회원과 주한 외교인사들이 모인 신년 행사에서 그는 “일본 롯데는 당분간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사장이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모두 맡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업계의 추론은 이렇다. 신격호 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을 전격 해임시킨 것에 대해 일본 언론은 ‘일본 롯데의 실적이 나빠서’라고 보도했다. 실적 악화가 해임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 롯데가 연 매출 80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할 동안 일본 롯데는 10분의 1 수준인 6조원에 그쳤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전문 경영인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의 갈등도 커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따라 신격호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내치고 쓰쿠다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재벌닷컴이 2013년 회계연도(3월 결산) 일본 롯데홀딩스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5조7572억엔으로 전년보다 3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롯데그룹의 성장률(11%)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혀 논란이 커졌다. 일본 롯데그룹 전반적인 실적이 좋아진 상황에서 실적 저하로 인해 밀려났다는 일본 보도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오히려 만 93세의 고령인 신격호 회장이 차남에게 롯데를 물려주기 위한 후계 구도를 만들기 위해 신 전 부회장을 해임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됐다. 신격호 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주기로 마음 먹었다면 자신이 평생 해온 ‘현해탄 경영’을 차남이 잇게 된다. 신동빈 회장의 대권 승계, 초읽기에 들어간 걸까.

구설 끝에 경영일선서 ‘후퇴’
CJ그룹은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이후 총수 부재에 따른 경영 차질이 심각한 가운데,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대 때부터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유전성 신경질환을 앓아 왔다. 이 병은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이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는 질환이다. 이재현 회장도 앓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병으로 앓아온 유전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서 장기 요양에 들어간 만큼 당분간 국내 경영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뗌에 따라 CJ그룹은 이채욱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그룹 측은 건강상의 이유에 의한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구설수와 오너 일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등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일선 후퇴가 현재 처한 그룹의 사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이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이 부회장은 엔터테인먼트, 문화 콘텐트 사업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식품그룹으로 출발한 CJ그룹을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공을 세우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많은 공을 들인 CJ그룹의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계열사 CJ E&M은 적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잡음이 커진 것도 입지를 약화시킨 원인이 됐다. 이 부회장이 2010년 영입했던 노희영 전 CJ그룹 고문이 지난해 9월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그 이후 CJ제일제당 부사장으로 발탁돼 논란을 일으켰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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