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그 오해와 진실

중견기업 임원을 끝으로 지난해 가을 명예퇴직한 베이비부머 A(57)씨. 만족스럽진 않지만 제법 짭짤한 퇴직금을 챙겼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탓에 재취업은 애당초 포기. A씨의 관심은 그나마 노후에 ‘믿을 만한 언덕’이라는 프랜차이즈에 쏠렸다. 먼저 퇴직한 사람들의 조언을 십분 받아들여 ‘유명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외식업 프랜차이즈와 가맹계약을 맺었다. 소문대로였다. 본사의 몸집은 상당했고, 가맹점은 수없이 많았다. 본사 영업팀 직원은 “조리교육만은 제대로 시킨다”며 흥을 돋웠다. A씨로선 확실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처음부터 삐걱댔다. 조기교육의 수준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성에 차지 않아 “다시 가르쳐 달라”며 거듭 요구했지만 영업맨은 안면을 싹 바꿨다. 조리경험이 전혀 없는 A씨가 제대로 된 맛을 낼 리 만무했다. 끙끙 앓던 그는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결과는 승리. 배상금 명목으로 4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불쾌하다. “손해는 손해대로 봤는데 400만원이라니…. 퇴직자가 창업을 하면 일순간 바보가 된다더니 내가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매장을 연 지 2년여, 마진율은 20%를 넘은 적이 없다. 비싼 돈을 투입해 인테리어를 뜯어고쳤지만 손님은 날로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진짜 위기가 지금부터라는 거다. 고만고만한 고기뷔페 전문점이 곳곳에 오픈해 ‘희소가치’까지 바닥에 떨어졌다. 처음엔 큰소리 떵떵 쳤던 본사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지 오래다. “내 잘못인가, 아니면 본사 잘못인가. 남들은 준비 없이 창업했다고 비아냥거리겠지. 그런데 아니다. 본사 조언을 잘 따라서 창업했는데….”
너도나도 창업, 치열한 전쟁터로 변해
누군가 말했다. “퇴직하면 창업하면 되지.” 누군가는 지금도 말할 게다. “퇴직하면 창업할 거다.”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한 1998년. 그때만 해도 이 얘기는 정설에 가까웠다. 목돈을 손에 쥔 퇴직자 가운데 72%는 실제로 창업을 택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재취업이 여의치 않았다. 대기업에 다녔던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직장도 부족했다. 더구나 창업시장은 당시 블루칩으로 떠오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창업시장은 더 이상 블루칩이 아니었다. 작은 파이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살벌한 곳으로 돌변했다. 동네 골목길에 비디오방ㆍ인터넷방 등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가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을 정도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 소장은 “외환위기 당시 적지 않은 퇴직금을 들고 자영업 판에 뛰어든 퇴직자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의 단점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약한 게 가장 큰 흠이다. 프랜차이즈 본사 자본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평균 존속 기간은 5년 남짓이다. 전문 인력이 부족해 가맹점 지원능력도 떨어진다. 태생적으로 영세한 탓에 R&D(연구개발)에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러니 짝퉁 상호ㆍ브랜드가 판치고, 과장ㆍ허위광고 등 편법이 난무하는 거다. 앞서 언급한 A씨, K씨의 예처럼 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를 둘러싼 각종 분쟁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2008년부터 프랜차이즈 본사의 정보공개서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맹점 창업 희망자에게 본사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정보공개서엔 본사 재무현황ㆍ매장 수ㆍ영업조건 등이 담겨 있다.
프랜차이즈 믿었다간 발등 찍혀
하지만 이 정책은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내고 있다. 분쟁이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다.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본사ㆍ가맹점의 분쟁 건수는 2008년 357건, 2010년 479건, 2013년 554건으로 증가했다. 창업시장은 이제 만만한 곳이 아니다. 프랜차이즈도 믿었다간 발등을 찍히고 만다. 성공적인 창업은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창업방정식은 틀렸다고 보는 게 되레 안전하다. 전 재산과 남은 인생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은퇴 후 창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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