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타이타닉 ①
타이타닉호. 1912년 4월 15일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던 호화여객선이다. 여객선 규모나 시설,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당대 최대ㆍ최고였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첫 항해 도중 침몰했다. 이 사고로 710명만 구조되고, 1514명은 차가운 북대서양에 수장됐다. 최고의 호화여객선이 단 한번의 항해와 동시에 침몰하면서 ‘타이타닉’은 대형참사의 상징처럼 됐다.
그러나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끝없이 회자되는 것은 단순히 희생의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침몰 과정에서 읽을 수 있는 정치ㆍ사회적 함의含意 때문이다. 우리에게 친근한 1997년판 타이타닉은 1912년 무성영화로 제작된 ‘타이타닉에서의 생환(Saved from the Titanic)’, 1953년 진 네글레스코 감독의 ‘타이타닉호의 최후(Titanic)’에 이어 세번째로 제작된 영화다.
세번째 타이타닉을 만든 감독은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이다. 국내에는 영화 ‘터미네이터’ ‘아바타’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할리우드의 몇 안되는 현실 비판적인 감독이자 좌파적 시각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소설 「타이타닉」의 집필에 나섰고, 이를 위해 타이타닉의 침몰에 관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타이타닉 침몰의 정치ㆍ사회적 해석에도 열정을 보였다.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좌파적 영화인의 작품답게 캐머런의 타이타닉은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곳곳에 계급(class)의 비정함,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와 조롱, 그리고 냉소를 배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갑판 아래의 초라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3등석(third class) 승객들의 파티와 우아하고 화려한 연회장에서 펼쳐지는 1등석(first class) 승객들의 만찬을 대비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1등석에 탄 승객들 혹은 상류사회를 조롱한다. 갑판 아래의 파티는 격의 없고 인간적이며 건강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파티로 묘사된다. 하지만 연회장의 만찬은 고리타분한 격식, 거추장스러운 의전(protocol), 저급한 대화들로 점철된다. 상류사회란 이렇듯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물근성에 찌든 우스꽝스러운 집단일 뿐이란 걸 보여준다.
3등석과 1등석 파티의 대비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일단 여주인공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어머니는 귀족 가문의 이름만 남았을 뿐 깡통을 차게 된 가문을 수습하고자 외동딸을 덜 떨어진 속물인 디트로이트의 철강재벌 칼 헉슬리(빌리 제인)와 정략 결혼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시큰둥한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칼이 자신만만하게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무지막지한 다이아몬드였다.
빈민 출신인 몰리 브라운 역시 광산으로 벼락부자가 돼 상류사회에 편입된 여자지만, 끊임없이 상류사회를 조롱하고 독설을 퍼부었던 인물이다. 캐머런 감독은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상류사회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긴 듯하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잭에게 우호적인 유일한 일등석 승객으로 그려진다. 생김새부터 좀 덜 떨어져 보이는 타이타닉의 선주 조셉 브루스 이스메이(조나단 하이드)는 1등석 사교클럽의 우아한 ‘티타임’ 테이블에서 로즈가 프로이트의 학설을 화제로 삼자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프로이트씨가 누구냐? 우리 승객이냐?”고 물어 좌중을 난감하게 하기도 한다.
상류사회를 향한 독설과 비판
이처럼 어찌어찌 운이 좋아 부자가 됐지만 상류사회의 인간들이란 대개 덜 떨어지고, 격식을 따지면서도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지 못한 속물이라는 걸 감독은 보여주려 한다. 잭과 로즈가 드디어 신분의 차이, 계급의 격차를 조롱하며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시작할 때쯤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한다. 배가 침몰할 때, 승무원들은 3등석 승객들이 구명보트가 있는 갑판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게이트에 자물쇠를 채우고 총으로 위협한다. 1등석 승객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기 위해서였다. 단 1척의 구명보트가 남았을 때 3등석 승객들은 철제 게이트를 부수고 갑판으로 난입한다.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승무원 윌리는 갑판으로 난입한 승객을 사살하고 곧바로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면서 혼란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 sahngwhe@kopo.ac.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