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는 수입車 가격의 비밀
떨어지지 않는 수입車 가격의 비밀
  • 박용선 기자
  • 호수 122
  • 승인 2014.12.24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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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관세 8%↓ BMW 502d 가격 2.4%↑

 
수입차는 국내 시장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경쟁을 통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적인 측면에선 예외다. 서로 경쟁하며 차량 가격을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올리기도 해야 하는데, 항상 올라간다. 수입차가 ‘고가’ 전략을 펼치며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다. 최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수입차에 붙는 관세(8%)가 철폐됐는데도, 수입차는 가격을 인하하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수입차 가격의 비밀을 파헤쳤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완성차업체가 수입차와의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맞는 얘기다. 실제로 수입차 점유율이 늘자 국내 완성차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수입차는 올 11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17만9239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4% 증가했다. 국산차는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품질을 개선하고, 다양한 신차를 출시하고 있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불고 있는 ‘디젤 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과거 디젤 차량은 국내 시장에서 별 인기가 없었다. 가솔린 차량에 비해 진동이 많고, 소음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는 안락하고 주행성능이 좋은 차량을 선호했다. 하지만 수입차가 연비 좋은 디젤 차량을 선보이며 분위기가 깨졌다. 국내 소비자가 차량 구매 시 연비를 중요한 요인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BMW코리아의 ‘502d’는 이런 디젤 붐의 중심에 있는 모델이다. 520d는 국내 시장에서 올 11월까지 5859대를 팔았다. 수입차 시장 판매 2위 모델이다. 여기에 힘입어 BMW코리아는 같은 기간 총 3만7098대를 판매하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BMW코리아만이 아니다. 디젤 차량 경쟁력이 높은 독일 브랜드 대부분의 판매 실적이 증가했다. 업계 2위인 벤츠코리아는 올 11월까지 3만2493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7% 증가했다. 폭스바겐코리아(3위)는 전년 대비 14.8% 증가한 2만7812대를 판매했다. 아우디코리아(4위)는 42.5% 증가한 2만5881대를 판매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체도 디젤 차량을 출시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제네시스’와 ‘그랜저’ 디젤 모델을 출시했고, 한국GMㆍ르노삼성 역시 디젤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수입차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유도한다.

수입차 고급ㆍ고가 전략 추구

그러나 ‘가격’ 측면에선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쟁은 이상하게 흐른다. 서로 경쟁하며 차량 가격을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올리기도 해야 하는데, 항상 올라간다. 수입차가 비싸기 때문에 국산차가 이를 맞추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한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 존재하는 이상한 법칙이다. 그 이유는 수입차의 ‘고가’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소비자는 수입차는 좋고,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가격이 비싸야 좋은 차라고 잘못 인식하는 이들도 많다. 이 때문에 수입차는 가격을 잘 내리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까다롭고 예민한 소비자가 모인 테스트 마켓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입차는 고급을 내세우며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고 있고, 소비자는 이런 수입차의 고가 전략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블라인드(Blind)’ 전략도 빠질 수 없다. 수입차는 소비자에게 차량과 추가되는 옵션 가격을 최대한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차의 가격은 이 정도이니, 그냥 따라 오라는 식이다.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입차는 가격을 최대한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문의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고, 추가되는 옵션의 가격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소비자가 차량을 구매할 때도 키는 수입차가 쥐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옵션을 선택해 구매하는 게 아니라 수입차가 정해 놓은 옵션이 들어간 차량을 사야 한다. 물론 ‘풀 옵션 차량’으로 가격이 비싸다. 옵션 가격도 모르고, 소비자에겐 선택권도 없다. 소비자가 필요한 옵션을 선택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옵션은 기본 차량에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별도로 선택해 부착하는 장치나 부품을 뜻한다. 그러나 수입차 업계에서 옵션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이제는 수입차의 판매ㆍ가격 정책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입차는 국내 시장에서 고급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부분을 가격 전략에 이용한다. 특히 불필요한 품목을 추가해 가격을 끌어올린다. 그렇다고 옵션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판매, 가격 전략은 한계가 존재한다. 이제는 소비자 중심의 판매ㆍ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수입차가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올리고 있지만 수입차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성장세가 한순간 멈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총 4차례에 걸쳐 완전히 철폐됐지만 독일 수입차 가격은 반대로 오르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2011년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1500㏄ 이상 수입차에 붙던 8%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완화했다. 2011년 7월 관세율 8%를 5.6%로 낮췄고, 2012년 7월에는 3.2%, 2013년 7월에는 1.6%로 떨어뜨렸다. 올 7월에는 관세를 완전히 철폐했다. 그러나 인기가 많은 독일 브랜드 차량의 가격은 FTA가 발효되기 전보다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BMW코리아의 디젤 세단 ‘520d’를 보자. 520d는 2010년 8월 국내 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가격은 6240만원. 520d는 관세가 떨어질 때 차량 가격을 내렸다. 하지만 인하 전후로 연식을 변경하거나 상품성을 강화한다며 다시 가격을 인상했다. 실제로 BMW코리아는 2011년 7월 관세가 2.4%포인트 떨어졌을 때, 520d 가격을 100만원에 못 미치는 선에서 인하했다. 그러나 2012년을 맞아 연식을 변경하며 가격을 올렸다. 당시 520d 연식 변경에 따른 가격 인상액은 150만~300만원이다. 2013년 관세가 3.2%에서 1.6%로 떨어졌을 때도 BMW코리아는 같은 전략을 펼쳤다. 그해 7월 50만원가량을 인하했지만 2개월 뒤 520d LCI(Life Cycle Impulse) 모델을 선보이며 약 90만원을 인상했다. LCI는 일종의 부분변경 모델(페이스 리프트)이다.

관세 떨어졌지만 여전히 가격↑

올 7월 관세 1.6%가 철폐됐을 때는 가격 인하조차 없었다. 한 BMW코리아 딜러는 “가격 인상 요인이 있었는데 관세 인하분을 반영해 판매가를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BMW코리아는 한 달 전인 6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520d의 가격을 약 150만원 인상했다. 이유는 상품성 강화차원이었다. 2014년 12월 현재 BMW코리아의 520d는 63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8% 관세가 붙던 2011년과 비교하면 150만원(2.4%) 올랐다. 수입차의 고가 전략에 따라 관세 완화라는 변수가 작용했는데도 가격이 잠깐 ‘주춤’할 뿐 결국 다시 인상된 것이다.

BMW코리아의 520d를 제치고 올 11월까지 판매 1위(7061대)를 기록한 폭스바겐코리아의 디젤 SUV ‘티구안 2.0 TDI’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코리아는 2011년 말 2012년형 티구안을 국내에 출시했다. 가격은 4450만원. 이후 폭스바겐코리아는 2012년 7월 관세 인하를 반영해 티구안 가격을 약 50만원 내렸다. 그러나 2013년 초 물가상승을 이유로 60만원가량 인상했다. 2013년 7월 관세가 1.6%포인트 떨어졌을 때도 가격 인하 후 이듬해 고스란히 가격을 올렸다.

2014년 12월 현재 티구안은 448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FTA로 인해 관세(5.6%)가 철폐됐지만 오히려 가격은 30만원(0.7%) 인상됐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FTA 혜택이 수입차의 이익만 부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차가 해외에서 자동차를 싼 가격으로 들여오고, 소비자에겐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수입차가 한-EU FTA 관세 인하분을 100% 판매가에 반영하면 가격을 수백만원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입원가가 약 3800만원으로 알려진 BMW코리아 520d가 관세 인하를 통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350만원가량으로 추정된다. BMW가 502d 가격을 90만원 인상했으니, 한 대를 팔 때마다 440만원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폭스바겐코리아의 티구안은 수입원가가 2700만원으로 전해진다. 폭스바겐코리아가 관세 인하로 얻을 수 있는 비용적인 혜택은 170만원. 폭스바겐은 티구안을 30만원을 인상했고, 결국 200만원의 이익을 얻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입차 가격 모니터링해야

가격 측면에서 봤을 때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이 떨어진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은 2011년 1유로당 1500원대에서 2014년 12월 현재 1300원대로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가 13%(약 200원) 하락했다는 것은 유럽에서 차를 구매해 오는 비용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가격 하락 요인을 반영하는 수입차는 찾아 볼 수 없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가 떨어지면 수입차는 가격을 인하하는 흉내를 내고, 이내 다시 올린다”고 꼬집었다. 김필수 교수는 “독일 브랜드의 경우 고가이기 때문에 관세 8%가 차지하는 비용이 상당히 크다”며 말을 이었다. “수입차의 고가 전략에 사로잡힌 소비자는 그러려니 생각한다.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 최소한 관세 인하가 어떻게 적용되고, 실제로 판매가격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입차가 국내 시장에서 보다 투명하게 판매하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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