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나팔 불고 싶은가? “가시밭길 야무지게 밟아라”
승리 나팔 불고 싶은가? “가시밭길 야무지게 밟아라”
  • 김미선 기자
  • 호수 120
  • 승인 2014.12.10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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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중 흐노니 대표

인생살이는 쉬운 게 아니다. 인생의 파도 앞에선 제아무리 잘난 이도 무릎을 꿇게 마련이라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역경을 뚫고 ‘승리의 나팔’을 분다. 작지만 알찬 여행업체를 운영하는 이재중 흐노니 대표도 그랬다. 누구보다 거센 풍랑에 휩싸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되레 거센 풍랑 속으로 의도적으로 몸을 던질 때도 있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다.

▲ 이재중 흐노니 대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일날 그에게 명품지갑과 손편지를 선물 받은 직원도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어머니는 아들만 보면 눈물부터 흘렸다. 30년간 대구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애지중지 키운 그를 보며 ‘왜 힘든 길을 걷느냐’며 눈물을 흩뿌렸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고집하는 아들을 향한 안타까움 탓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행업체 흐노니의 이재중(44) 대표는 쉬운 길을 두고 매번 어려운 길을 택했다. 중학교 때 학교가 끝나면 저녁마다 연탄배달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가 끝나면 일본 이어폰 회사 공장에서 일을 했다.

대학 시절에는 ‘버스운전’ ‘택시운전’까지 가리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유독 강했던 자립심이 그를 가시밭길로 인도했다. 그가 남다른 현실 감각을 갖게 된 건 국내에 ‘빼빼로’가 처음 나온 1983년이다.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빼빼로를 사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했어요. 그때 처음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그랬어요. 여자친구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 줄래도 돈이 필요하더라구요.”

어려서부터 빼빼로가 먹고 싶어 돈을 벌기 시작한 소년. 이 소년은 26년 후 여행사 대표가 됐다. 직함만 바뀌었을 뿐 ‘가시밭길’을 걷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공항에 직접 나가 손님을 배웅하고 여행지에선 가이드 역할도 마다치 않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손님 중 한명이 일본의 특정 호텔에서 반드시 묵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에선 해당 호텔의 객실을 예약할 수 없었다. 이 대표는 곧장 일본행 비행기를 탔고, 호텔 예약을 성사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겸손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저 내 일을 하는 것뿐이죠. 사장은 움직여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지사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직접 발품을 팔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장의 성격 탓일까. 흐노니여행사의 여행상품은 달라도 정말 다르다. 2명이든 4명이든 손님 니즈에 맞춰 여행상품을 판다. 3박4일간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간다고 치자. 여행사는 1일차에 스노클링, 2일차에 시내관광, 3일차에 골프 등 큰 스케줄만 정한다. 세부 스케줄은 고객이 현지에서 결정할 수 있다.  그야말로 DIY(Do-It-Yourself)식 여행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일정을 곧바로 변경해준다. 손님이 원하면 당일이라도 저녁에 맥주 한잔 마실 수 있는 호프집을 안내해준다. 시간이 남으면 현지 직원이 추가 일정을 잡아주고 동행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바지사장

이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한 사람이 ‘평생고객’으로 남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한 고객이 자신의 지인을 총동원해 추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내년 8월 여행상품을 벌써 예약한 고객까지 있다. 다양한 고객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연히 실적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하나투어 전문판매점으로 등록했는데 6개월 만에 전국 1200여개 판매점 중 판매순위 상위 10%에 들었다. 월 매출은 적게는 3억원, 많게는 10억원가량이다.

▲ 이재중 대표는 경기도 양평에 다다미를 둔 독특한 양식의 흐노니펜션을 운영 중이다. [사진=흐노니 제공]
그렇다고 이 대표가 승승장구만 거듭한 건 아니다. 다른 창업자들처럼 그 역시 몇번의 실패를 겪었다. 시계추를 1997년 외환위기 직전으로 돌려보자. 1995년 이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모아왔던 1억8000만원의 종잣돈으로 ‘대동유리’라는 시공회사를 설립했다. 고층건물 외벽에 유리를 시공하는 회사로 잘나갈 때는 직원이 140명, 연 매출은 수백억원이나 됐다. 하지만 1998년 IMF가 터지고 회사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5년 만에 회사 문을 닫았다.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재기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운전일부터 시작해 안해 본 일이 없었다. 정수기 회사에도 취직했다. 한순간 대표에서 영업사원이 된 거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을지언정 희망이란 끊을 놓지 않았다. 힘들었던 만큼 죽도록 일했다. 이 대표는 두달 만에 전국 판매왕 자리에 올랐다. 1년여 만에 몇억원이 금세 모였다. 쓰러졌던 회사를 다시 오뚝이처럼 일으켰다.

2009년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죽을 힘에 다시 살려 10년 가까이 운영하던 회사 문을 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건설경기가 어려워진 경기 탓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유학사업에 뛰어들었다. 반응은 예상보다 폭발적이었다. 입학문의가 쇄도했을 정도다. 하지만 승리의 나팔소리는 얼마 가지 않아 조용해졌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시仙臺市 앞바다 발생한 9.0 강도의 지진, 그리고 쓰나미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대학들과 협정을 맺고 유학사업을 하던 이 대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입학식을 하기 불과 한달 전에 사고가 터진 탓이었다. 등록금ㆍ입학금을 합쳐 1000만원 정도를 지불한 68명의 예비학생이 모두 입학을 취소했다. 위기에 빠진 그는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그는 우연히 필리핀에서 운영하던 여행사 사무소를 떠올렸다. 2009년 8월 진출해 조그맣게 운영하던 거였다. 이 대표는 ‘필리핀 인프라’ 등을 활용해 여행사업에 뛰어들었고, 극적으로 손해를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여행객이 필리핀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담다

이 대표의 경영철학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이다. “일 욕심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뛰어든 게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유학사업을 하던 시절, 여행사무소를 덤으로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높은 파도가 우리 인생에 언제 덮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핵심은 무너졌을 때 일어설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놓는 것이죠. 유리시공회사를 운영하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가 ‘한참 잘나가는’ 여행사 외에 유아상품 전용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9년 5월 론칭한 흐노니쇼핑몰의 인기는 좋다. 옥션에선 탑셀러, 지마켓에선 파워딜러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연 매출은 5억원에 달한다. 펜션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의 펜션(흐노니 펜션)을 인수해 일본의 전통주택 양식인 다다미를 두고 독특하게 운영한다. 지금도 그는 크고 작은 파도를 넘나들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아들만 보면 가슴이 철렁인다. 어떤 파도가 언제 또 그를 덮칠지 몰라서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오뚝이처럼 일어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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