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리더의 강한 행보 ‘큰 울림’
소리 없는 리더의 강한 행보 ‘큰 울림’
  • 박용선 기자
  • 호수 120
  • 승인 2014.12.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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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변화ㆍ혁신’

▲ 지난 1일 서울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24회 한‧일재계회의’에서 허창수 회장(오른쪽)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롄 회장 등 참석자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변화와 혁신’. 허창수(66) GS그룹 회장의 올해 경영 행보는 이 두 단어로 요약될 것 같다. 전경련 회장이기도 한 그는 최근 ‘제24회 한ㆍ일 재계회의’를 서울에서 열리게 해 단연 주목을 받았다. 중단 7년 만에 열렸기 때문이다. 57년간 동업했던 LG에서 GS로 분리한 지 10년을 맞아 100년 장수기업을 향한 여러 가지 변화도 모색했다. GS는 자산기준 국내 재계 8위 기업그룹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기업가로서 요즘이 한창인 것 같다. GS그룹 선장 역할에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 역할까지 더해 농익은 경영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열린 ‘제24회 한ㆍ일 재계회의’도 허 회장의 숨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대표적 작품쯤으로 여겨진다. 재계도 이번 회의 재개의 한국 측 주역으로 허 회장을 주저 없이 꼽는다. 사실 그는 끊어진 양국 재계회의를 살려낼 궁리를 상반기부터 계속했다. 애초엔 연내 회의 재개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올해도 양국의 역사ㆍ정치적 이슈로 인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만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허 회장과 일본 게이단롄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이 적극적으로 일을 도모한 덕분에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7년 중단됐던 한ㆍ일 재계회의 이끌어내

실제로 일본 게이단롄 회장에 지한파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회장(도레이 회장) 취임을 계기로 허 회장은 회의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고 나섰다. 지난 5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ㆍ일경제인회의를 기회로 삼았다. 기조연설자로 초대받은 허 회장은 사카키바라 회장을 만나 한ㆍ일재계회의 연내 재개를 역설했다. 사카키바라 회장이 동의하면서 회의 재개의 단초가 마련됐고 실무협의 끝에 회의가 열리게 됐다는 것. 도레이그룹 회장이기도 한 사카키바라 회장은 1960년대 코오롱 등 국내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은 이래 한국을 250차례 넘게 방문한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제24회 한ㆍ일 재계회의’가 열린 지난 1일 서울에는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이날 초속 7m 안팎의 강풍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8도까지 뚝 떨어졌다. 월력 상 겨울이 시작된다는 12월의 첫날 날씨치고는 무척 매서웠다. 이런 날씨 속에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중단 7년 만의 한ㆍ일 재계회의가 열린 것. 정치적으로 콱 막혀 있는 한ㆍ일 관계를 민간 경제 쪽에서 한번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회의였다. 직전 제23회 회의는 2007년 11월 13일 도쿄 게이단롄 회관에서 열렸었다. 모처럼 기대를 갖고 회의장을 찾았던 양국 재계 대표들에게 이날 눈은 어땠을까. 서설瑞雪로 느껴졌을까, 아니면 길고 추운 겨울을 예고하는 한바탕의 눈보라쯤으로 여겨졌을까.

이날 눈발을 뚫고 도착한 양국 인사들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회의 분위기는 다소 긴장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양측에서 45명의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허 회장을 비롯해 김윤 삼양그룹 회장(한ㆍ일경제협회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23명이, 일본에서는 사카키바라 회장, 고지마 요리히코 미쓰비시상사 회장 등 22명이 함께했다. 특히 일본 게이단롄 회장단 19명중 14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2시간30분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에 ▲한ㆍ일 양국 경제정세 ▲아시아 경제통합 ▲한ㆍ일 산업협력(환경ㆍ에너지, 서비스산업, 미래 산업, 제3국 협력, 안전ㆍ방재) 등 3개 세션에 걸쳐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는 공동성명서 발표를 하고 마무리됐다. 공동성명에는 한ㆍ일 정상회담 조기 개최가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과거 50년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재구축하자,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경제협력 심포지엄과 차세대 리더 포럼을 공동 개최하자는 안도 들어있다. 다음 회의를 내년 중 일본 도쿄에서 갖자는 데도 합의했다. 양측 대표들은 청와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 재계 인사를 접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회의가 기대만큼 관심을 끌지 못해 ‘찻잔 속의 태풍’ 쯤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지만 눈길을 끄는 대목도 있었다. 양측이 산업협력에서 ‘제4세대 협력’을 추진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한ㆍ일간 제1세대 협력은 일본의 대한對韓 기술이전을, 제2세대 협력은 부품소재 부문에서의 협력을, 제3세대 협력은 양국 기업간 경쟁 단계를 의미한다. 제4세대 협력이란 경쟁을 넘어 양국기업이 공통 관심사인 차세대 에너지와 신흥시장 경쟁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시계視界 제로 수준의 경영 환경을 보인 올해 내내 허 회장은 부쩍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다녔다. 평소 ‘소리 없지만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그도 요즘 같은 때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낸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지난 9월 19~20일 이틀간 춘천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에서 열린 ‘GS 최고경영자 전략회의’에서도 그는 유난히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GS그룹 출범 10년을 기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전경련 회장 3연임 미지수

최고위급 임원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는 “올해는 GS 출범 10년째 되는 뜻 깊은 해이지만 아직까지 노력한 만큼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인식하고, 100년 이상 장수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방법을 찾자”고 당부했다. 세계 유명 장수기업인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최장수 CEO였던 다니엘 바셀라 회장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재계는 GS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와 GS건설 등이 침체에 빠져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봤다. 석유화학 업종의 GS칼텍스는 그룹 전체 매출의 65%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중국의 도전 등으로 지난 2ㆍ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내는 최악의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GS건설 역시 수년째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9월 1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열린‘제9차 한중재계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허창수 회장.[사진=뉴시스]

한달 후인 10월 22일 서울 강남 GS타워에서 열린 4분기 임원모임에서도 “불확실성 속에 숨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국제유가의 급격한 변동, 외환시장의 불안정, 주요 국가의 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같이 말했다. 12월 초엔 분위기 쇄신용 임원 인사도 단행했다. 10년 만에 지주사 대표를 정택근 GS글로벌 사장으로 교체하고, 3개 계열사 수장도 바꿨다. 허 회장의 막내동생인 허태수(57) GS홈쇼핑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조치도 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허 회장이 내년 2월 임기 만료되는 전경련 회장직을 3연임하는가 여부다. 지난해 2월 한차례 연임해 총 4년간 재직했다. 전경련 안팎에선 ‘포스트 허창수’에 대해 관측이 분분하다. 현재로선 그가 3연임에 나설지 미지수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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