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딜레마
아베노믹스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장에 돈을 마구 풀어댔지만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더 큰 문제는 아베노믹스 이후의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행(BOJ)이 통화완화기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베가 푼 ‘돈’의 냄새를 봄바람이 아닌 냉기가 맡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엔저는 ‘마법’과 같았다. 일본기업의 수출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고, 일본경기 역시 개선될 조짐이 감지됐다. 일본기업의 늘어난 수출이 ‘생산증가’로 이어진다면 일본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침체를 탈출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일본 경제가 3분기에도 역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아베노믹스를 더 이상 지지해도 괜찮느냐는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일본의 경제체질이 개선되면 소비세 인상에서 기인하는 충격을 만회할 수 있다고 언급해 왔다. 하지만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경기침체를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가 역성장을 기록한 이유는 기업활동의 부진에 있다. 대내외 수요가 줄어들고, 소비세가 추가로 인상되자 일본기업이 생산ㆍ투자감소로 맞선 형국이다. 가계소비의 미진한 회복세도 역성장의 원인이다. 지난 2분기 전기 대비 5.2% 감소한 가계소비는 3분기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비세 인상과 엔화약세로 인한 물가부담이 소비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게다가 중의원 해산으로 일본 성장전략의 핵심인 법인세 인하가 실현될 지도 불확실해졌다. 일본 정부는 최고 35.64%인 법인세율을 수년 안에 20%대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총선으로 국회통과가 늦어질 공산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도 아베 총리가 의회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조기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2018년까지 장기집권을 할 수 있어서다. 취임 초기 70%대까지 상승했던 아베의 지지율은 40%대까지 하락했다.
아베 장기집권 전략 통할까
그나마 위안거리는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과반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중의원 480석 중 자민당은 294석을 보유하고 있어 공명당이 차지하고 있는 50석이 감소해도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야당의 정당별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중의원 해산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 경기 침체 재진입, 내각 각료의 연이은 사임 등으로 지지율이 더 하락하기 전에 조기 총선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민주당 등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일본경제의 정책방향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민주당은 경제성장보다 소득ㆍ고용ㆍ의료ㆍ양극화 해소 등 복지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통화정책 방향을 가장 먼저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통화정책과 엔저는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에는 기여하고 있지만 내수부진과 물가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를 일으켜 내수기업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통화완화정책으로 일부 가계는 부의 효과를 누렸지만 금융자산 보유 비중이 낮은 가계는 실질임금 하락으로 구매력이 크게 약화됐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아베노믹스의 추진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비롯되는 불확실성 확대는 일본 경기의 회복력을 더 옥죌 공산이 크다. 아베노믹스의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0월 금융정책위원회에서 통화완화 확대에 반대했던 통화정책위원들이 11월엔 찬성으로 선회, BOJ는 당분간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통화완화책 이후다. 풀 돈은 없어지는데 시장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의 딜레마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 hylee1107@daish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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