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엔저 리스크

‘마이너스 1.6%(연율 기준)’. 일본의 3분기 경제성장률(GDP)이다. 시장 예상치(2.2%)를 크게 밑돌았다. 2분기가 마이너스 7.3%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경기침체에 빠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부진한 원인은 민간 재고 감소에 있다. 기업설비투자 부진, 미약한 가계소비 지출개선이 부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현상이 여전하고, 기업의 보수적 투자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물론 2분기에 재고가 대규모로 누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3분기 재고 감소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후 생산증가도 기대할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 정부는 ‘엔화약세’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임금상승을 통해 내수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엔화약세를 이끌어 ‘수출기업 실적 향상→임금상승→내수회복’을 꾀한다는 거다. 과거 엔ㆍ달러 환율과 임금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밀접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인상하려면 일종의 유인책이 필요한데, 그 수단의 하나로 엔화약세를 이용하는 거다.
일본 3분기 GDP 마이너스 1.6%
실제로 일본 수출 대기업의 엔 환산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올 초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상승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은 미약한 상황이다. 더구나 내년 초 일본의 춘투春鬪가 기다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를 통한 실적개선을 유도하고, 임금상승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가능성은 벌써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엔화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경기부진 우려, 소비세 인상 지연 가능성을 반영해 엔ㆍ달러 환율이 117엔까지 상승했다. 다만 아베정부는 엔화약세를 추진하면서도 속도조절을 할 것이다. 엔화약세가 지나치게 가파르게 진행되면 내수회복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물가가 급격하게 오를 수 있다.

엔화약세로 인한 원ㆍ엔 환율 하락이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화 가치는 최근 엔ㆍ달러 환율과의 동조화가 높아지고 있고, 한국 정책당국의 원ㆍ엔 환율 하락 경계감을 고려하면 달러 대비 약세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국내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를 고려하면 원ㆍ달러 환율이 계속해서 급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원ㆍ엔 환율의 점진적인 하락 추세는 유효해 보인다. 11월 21일 현재 원ㆍ엔 환율은 100엔당 945.25원이다.
일반적으로 엔저가 지속되면 국내 수출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인해 수출 부진을 겪는 부정적 요인을 지적한다. 대외수요가 미약하고, 엔저에 따른 일본 기업의 수출 가격하락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중반은 중국의 수요가 강하게 이어지며 세계 경제 호조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원ㆍ엔 환율의 부정적 효과보다 크게 나타났다. 이를 통해 수출이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가 회복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나 아직 유럽의 수요는 불안정하다. 중국은 무역 구조 변화로 인해 수입 수요가 약해 대외수요를 통해 환율 하락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올해 국내 수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화 약세, 속도 조절은 있을 듯
특히 일본과 경쟁이 치열한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이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ㆍ일 수출경합도는 2013년 기준 0.501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0.5선을 넘어섰다. 수출경합도는 수출상품을 놓고 외국시장에서 국가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양국간 유사한 수출 구조로 인해 우리나라 수출의 가격 경쟁력이 엔화 환율 변동에 민감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장비, 자동차와 부품, 산업기계 등에서 대부분 한ㆍ일 수출경합도가 평균을 웃돌았다. 만약 일본 수출기업이 엔저를 통해 설비 투자나 수출단가 인하를 단행할 경우, 경쟁하는 한국 수출 품목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 helloym@ha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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