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면…
패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면…
  •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 호수 117
  • 승인 2014.11.20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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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행의 재밌는 법테크

정당방위 인정범위 확대 내용의 형법개정안이 발의돼 화제다. 논란의 촉발은 도둑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트린 집주인 아들에게 실형이 선고되면서다. 하지만 정당방위 확대 주장은 찬반양론이 뜨겁다. ‘중용의 묘’가 필요하다.

▲ 정당방위의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사진은 정당방위적 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하모니'. [뉴시스]
최근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나 가족이 모인 거실에서 때 아닌 형법 공부가 한창이다. 화두는 ‘도둑뇌사’ 판결 이야기다. 법원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때린 20살 청년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도망치던 도둑의 머리를 발로 차고 알루미늄 빨래건조대 등으로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렸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누나의 방에서 괴한이 튀어나와 강간이나 살인범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도둑의 피해가 너무 중重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이 화두가 됐다. 그런데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곤 한다. 하지만 정당방위를 공부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정당방위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형법은 ‘자기 또는 다른 이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즉 부당한 침해를 당하는 경우 이를 방어하는 행위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행위가 사회적으로 볼 때 정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비록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만 위법성이 없다는 얘기다. 정당방위 성립요건 중 하나가 ‘현재의 침해’다. 이는 침해가 급박한 상태이거나 계속되고 있는 걸 말한다. 이에 따라 과거의 침해나 장래에 나타날 침해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할 수 없다. 또한 방위행위는 ‘상당’해야 한다.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ㆍ정도, 침해의 방법 등 구체적 사정을 참작했을 때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A씨는 B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A씨는 B씨로부터 계약기간이 지났으니 방을 비워 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받고서도 그때마다 행패를 부렸다. B씨는 A씨의 행패가 무서워 다른 집에 가서 잠을 자기도 했다. 범행 당일에도 B씨가 방세를 돌려줄 테니 방을 비워 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2000만원을 줘야 방을 비워준다고 억지를 쓰며 폭언을 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B씨의 며느리가 A씨의 방 창문을 쇠스랑으로 부숴 버렸다.

 
여기에 격분한 A씨는 공구인 배척(속칭 빠루)을 들고 나와 이 장면을 구경하던 마을주민 두명을 때려 상해를 입혔다. A씨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침해행위에서 벗어난 후 분을 풀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공격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의 정당방위 불인정 판결은 또 있다. C씨는 D씨와 주먹다툼을 했다. 그러던 중 D씨가 도망을 치자 C씨는 D씨가 소지한 식도를 빼앗아 찔렀다. 대법원은 이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의 침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방위행위가 있었고, 그 정도 역시 사회적으로 상당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둑뇌사’ 사건에서 도둑은 발각되자 달아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절도라는 침해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재의 침해가 없는 상황에서 공격을 했으므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거다. 세상만사에 중용을 지켜야 하듯이 자기 방어 또한 절제가 필요하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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