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송혜교가 립스틱을 발라서 예뻐진 건가, 아니면 워낙 예뻐서 모델이 된 건가. 답은 후자지만 사람들은 이를 가뿐히 무시한다. ‘아름다움’이 거래대상이 되면서 겉모습이 전부가 돼버려서다. 그러는 사이 ‘내적 미美’의 가치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랑과 관련된 많은 요소가 상업화되면서 ‘조건없는 사랑’은 이제 긍정적 선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초콜릿이나 커플링,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다. 이처럼 건강ㆍ가족ㆍ교육ㆍ예술ㆍ자연의 영역에서 많은 미덕과 가치가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사랑마저도 교환과 거래의 대상이 됐다. 신고전파학자인 데니스 로버트슨은 이를 ‘사랑의 경제화(economizing love)’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름다움’ 역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그 의미와 가치가 왜곡됐다.
지금껏 미美는 거래대상으로 적절한 가치가 아니었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서나 아름다움을 추구했지만 미美의 기준이 개인과 시대에 따라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은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소비자가 그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한다. 아름다움이 보다 분명한 기준으로 정의되고 미인대회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지면서 ‘아름다움’도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이 구체화된 아름다움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예쁜 옷과 화장품을 구입하고 성형수술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이나 주택, 자동차 심지어 냉장고를 살 때도 디자인을 따진다. 아름다움을 위한 직간접적 소비를 배제하면 우리나라 시장이라는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4개 다리 중 3개는 무너질 것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준은 외형적인 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묘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준으로 측정할 수도 없어서다.

바비인형처럼 작고 하얀 얼굴에 10등신 몸매, 쌍꺼풀이 있는 큰 눈과 풍만한 가슴은 동양인이 태생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표준이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시장의 기여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도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우리 사회가 지켜온 인간ㆍ자연ㆍ도덕적 가치가 왜곡되는 현상을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고민하자고 초대할 뿐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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