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 방송을 보니 ‘지지’ 또는 ‘찬성’이란 단어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개정안을 지지하는가.
“기본 방향에서, 큰 틀에선 지지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평가한다면.
“급진적인 안이다. 현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기존 수급자의 연금도 줄이는 걸로 돼 있어서다. 2007년 국민연금처럼 공무원연금을 개혁했다면 기존 수급권자의 권리는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지 모른다.”
✚ 새누리당의 개정안이 효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는가.
“재정적 부담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안보다 더 강력한 것은 나오기 어려울 정도다.”
✚ 새누리당의 개정안에서 더 손볼 수 있는 부분은 없나.
“하위직 공무원이 손해를 좀 많이 보는 것 같다. 고위직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깎이지만 하위직은 기본급도 낮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형평성을 따져서 입법 과정에서는 논의해봐야 한다.”
✚ 유 전 장관의 말을 들으면 공무원노조가 크게 반발할 것 같다.
“큰 틀에서 볼 때 재정안정화로 가는 게 맞고, 그렇게 가야 한다. 물론 국민 여론이 공무원노조측 주장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공무원이 헌법상 기본권을 유보당하는 것, 급여체계가 민간기업과 달라 손해를 보는 것 등은 주장할 수 있다. 정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연금 적립금을 다른 곳에 썼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요구는 공무원연금 개혁과는 별개다. 차후 법개정 등을 통해 수용할 것은 그렇게 해주는 게 옳다.”
“공감한다. 정부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거다. 정부가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이해당사자는 물론 전문가와 학계, 시민단체 등의 얘기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는 입법예고 절차를 거치면서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또 밟아야 한다. 이런 절차가 전혀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에서 진행하는 공청회와 토론회뿐이다. 정기국회는 두달밖에 남지 않았고, 예산안 심의와 세월호 관련법 처리 등 산적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 연말까지 끝내라고 하는 건 국회를 민의수렴기관이 아닌 일종의 거수기로 보는 거다.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처사다. 어디 이번뿐인가. 모든 정책을 수립할 때 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의견 수렴 없으면 민주주의 아니야
✚그럼에도 공무원을 바라보는 여론이 좋지 않은 듯하다.
“각종 수치를 들이대면서 반감을 부추기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정부 여당은 할 말이 없다고 본다.”
✚ ‘제 밥그릇 지키기’라는 지적도 있지 않은가.
“법개정 이후 공직을 선택한 공무원은 공무원연금 개정 사실을 알고도 들어온 거니까 문제가 없다. 다만 기존 공무원은 옛 공무원연금법이 공무원 지원의 환경 내지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땐 이해당사자인 기존 공무원의 양해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정부의 방침이고, 옳은 거니까 무조건 따라오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는 공무원들에게 미안하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공무원연금 개혁은 속도전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니 협의체 만드는 걸 좋아할 리 없다.”
유 전 장관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측의 주장을 대체로 공감했다. 다른 게 있다면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공적연금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게 전공노의 주장이라면 유 전 장관은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공노 측은 “유 전 장관이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주장했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실상은 조금 다르다.
✚ 공무원연금의 개혁 방향이 재정안정화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구조를 보면,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 하나는 공적연금의 낮은 보험료와 낮은 지급률, 플러스알파로 사적연금이 붙는 패키지다. 또 하나는 공적연금의 높은 보험료와 높은 지급률, 그리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사적연금 패키지다. 국민은 어떤 이유에서든 전자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공적연금의 개혁방안이 재정건전화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 국민의 여론에 맞춰 개혁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2006년도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나올 당시 애초 정부안은 보험료를 15.9%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내리는 거였다. 그런데 결국 국회에서는 9%로 올리고 40%까지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안으로 통과됐다. 보험료는 당장 내는 거고, 연금은 나중에 받는 거니까 국민이 싫어한 결과였다. 여론도 그랬다.”
“그렇다. 그게 국민 선택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기로 한 오바마케어는 우리 건강보험보다 못한 C급이다. 그런 의료보험을 하는데도 국민의 반대가 어마어마하게 거셌다. 미국 국민의 의식구조와 여론이 그 방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책도 거기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공적연금이 수익률도 훨씬 높고, 정부가 운영하니까 안정성도 있다. 안정적인 노후보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공적연금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그런 역할을 잘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불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그냥 가는 거다.”
제도 좋아도 국민이 싫으면 그만
유 전 장관이 재정건전성에 초점을 맞춘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공노가 아무리 공적연금 운운해봐야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당연히 국민들도 세금이 들어가는 걸 좋아할 리 없다.
✚ 국민 의식이 바뀔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경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수혜자는 이미 많다. 그들은 이 제도가 좋다는 걸 잘 안다. 반면 국민연금은 20년간 불입한 수급자가 2008년도에 처음 나왔다. 수급자도 적다. 아직까지 혜택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국민은 돈을 내기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게 좋다’며 정책을 밀어달라고 하면 통하겠는가. 그래서 공무원노조 측이 공적연금을 함께 논의하자고 해도 안 되는 거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걸 들고 와서 논의하자는 건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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