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 ‘15년의 발자취’
그동안 서민들은 금융권에서 소외받기 일쑤였다. 금융권 문턱이 매우 높아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2.00%로 낮아진 지금도 다르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1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적게는 0.2% 포인트, 많게는 0.8% 포인트까지 떨어져 서민의 대출도 쉬워졌을 것 같지만 아니다.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평균 5%대를 웃돌고 있다.
당연히 신용등급이 낮으면 금리는 더 뛴다. 1금융권 기준으로 5등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5.6%, 6등급은 연 6.85%, 7등급은 8.85%로 1등급에 약 1%씩 오른다. 특히 1금융권 10곳의 금리별 신용대출 취급 비중을 보면 78.4%가 연 금리 6% 미만이다. 신용등급이 5등급 이상은 돼야 1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더 높다. 최저 연 13.88%에서부터 최대 연 34.9%로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25% 수준이다. 일반 대부업체 금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서민 숨통 트는 곳, 사회적 금융
문제는 가난할수록 신용등급이 낮아 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탓에 높은 이자를 물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소득 5분위(연 소득 1억원 이상)의 경우 81.9%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4분위(연 소득 5000만원 수준)는 68.6%, 소득 3분위(연 소득 3000만원 수준)는 70.2%, 소득 2분위(연 소득 2000만원 수준)는 67.1%, 소득 1분위(연 소득 1000만원 이하)는 57.0%였다. 1금융권 문턱이 높은 탓에 연 소득이 낮을수록 1금융권보다 금리가 훨씬 높은 비은행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얘기다. 은행거래가 많지 않은 사람, 신용등급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 사업 실패로 신용등급이 뚝 떨어진 이들에게 1금융권의 신용대출은 ‘그림의 떡’이다. 담보대출 역시 사업에 실패했을 때 집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받기 어렵다.
빈민들의 자활을 돕는데 돈을 빌려줘 성공을 거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 ‘신나는 조합’을 보자.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신나는 조합은 지난해까지 900여명에게 약 110억원의 자금을 대출해줬다. 자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자금(96억5000만원), 후원금 등 기업의 민간자금(13억5000만원)으로 조달했다. 대출 용도는 주로 창업자금, 긴급생계자금, 사회적 기업 경영개선 자금 등이다. 대출 금리는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2~3%대를 유지하고 있다. 상환율은 90% 수준이다. 신나는 조합으로부터 대출받은 이들 대부분이 신용등급이 낮은 축에 속한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상환율이다. 신나는 조합 관계자는 “최근엔 5~6등급에 해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7등급 이하였다”고 설명했다.
정책자금 없이 순수 민간자금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2004년부터 한부모 여성가장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총 대출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지금까지 216개 점포에 약 80억원을 대출했다. 임차보증금은 7년간 무이자, 운영자금은 2000만원까지 연 2% 금리로 지원하고 있다. 돈을 빌리러 오는 이들은 여지없이 1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단 관계자는 “한부모 여성가장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경우가 많아서 1금융권 신용등급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경우 초창기엔 개점 이후 영업을 종료하는 비율이 높아 상환율이 낮았지만, 지금은 문 닫는 점포가 많지 않아 상환율은 87% (2014년 기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3월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겠다며 출범한 토닥토닥협동조합(토토협) 역시 순수 민간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원이 출자를 해서 2~3%의 낮은 금리로 조합원에게 20만~50만원까지 생계형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그동안 모인 출자금은 약 5500만원. 지난해 11월부터 81명의 조합원이 약 3400만원을 대출해갔다. 전문대출기관이 아닌 탓에 조합원이 돈을 갚지 않으면 떼일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신용등급도 별 볼일 없을 게 뻔했다. 조금득 토토협 대표는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환율을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워낙 소액대출이라 그런지 대부분 몇달 안에 갚는다”며 “11월이 딱 1년인 만큼 계산해봐야 알겠지만, 상환율은 대략 95%선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금융 15년, 우려보다 기대감 커
사회적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곳의 재무상태가 우려했던 것보다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재무적 건전성만을 따져 대출을 해주고, 상환기간이 도래하면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돈을 회수해가는 전통 금융권과 달라서다. 창업을 하려 하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재무관리 등을 지속적으로 컨설팅하고, 상환기간이 도래했을 때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기간을 연장해준다. 신나는 조합 관계자는 “은행처럼 채권추심을 하지 않으니까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은 창업을 성공적으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창업자금이 아닌 생계형 자금을 대출해주는 토토협 역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도록 재무관리나 일자리 알선 등 무형의 지원을 쏟는다.
사회적 금융의 지원을 받은 이들이 모두 A씨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실패도 한다. 주목할 점은 사회적 금융의 리스크가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 않을뿐더러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성과까지 거두고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금융이 ‘돈 빌려주고 돈 받는’ 대출의 관점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을 빌려주고,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후방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융의 가치가 더 조명돼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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