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아 화살촉 빼낸 관우처럼…
뼈를 깎아 화살촉 빼낸 관우처럼…
  • 이남석 대표
  • 호수 113
  • 승인 2014.10.2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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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㊱

순신은 모자랑포에서 출발해 남해도ㆍ창선도 두 섬 근처에 터를 잡았다. 이상하리만큼 물이 맑고 파도가 일지 않는 요지였다. 하지만 ‘적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순신은 이 요지를 쉽게 내주고 도망을 쳤다. 천하의 순신이 도망치는 걸 본 적군들이 기세등등해졌지만 순신의 계략은 따로 있었다.

▲ 순신은 전투 중 왼팔을 다쳤지만 승리를 위해 부상을 숨겼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은 손수 승전고를 울렸다. 날은 이미 저물어 황혼이 되었다. 순신은 전 함대를 몰고 모자랑포(경남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로 이동, 밤을 지내기로 했다. 뱃머리를 돌려 배질을 하는데, 장수들은 승전의 기쁨에 의기충천하였다. 다만 군관 나대용과 이설이 적의 탄환을 맞은 게 안타까웠다. 상처가 급소가 아니어서 대단치 않은 게 다행이었다. 순신은 나대용과 이설을 자기가 탄 상선으로 옮겨와 손수 금창약(지혈 등 외상치료에 좋은 약)을 붙여주었다. 우후 이몽구, 순천부사 권준 이외에 광양ㆍ녹도ㆍ방답ㆍ낙안 등 제장이 전승을 축하하기 위해 순신의 기함에 모였다. 원균, 기효근, 이운룡 등의 영남 제장도 찾아왔다.

순신이 입었던 갑옷을 벗으니 피가 흐른 것이 보였다. “사또 이게 웬일이오?”라며 모인 장수들이 놀랐다. 순신은 “왼편 어깨에 철환을 맞은 모양이야”라며 피 묻은 적삼을 벗었다. 피가 많이 흘러서 버선목에까지 가득하였다. 순신은 “칼끝으로 살 속에 박힌 철환을 파내어 보오”라며 제장들 앞에 등을 돌려 밀었다. 녹도만호 정운이 꿇어 앉아 칼끝으로 순신의 왼편 어깨에 박힌 철환을 파내고, 고약을 붙였다. 제장들은 “들어가 장막 안에 누우시오”라고 권했지만 순신은 제장들과 술을 나누며 전승을 축하했다. 또한 미리 준비한 철방패를 각선에 나눠준 후 향후 전투에선 철환을 막는 데 사용하라고 명했다.

순신이 철환을 맞고도 넘어지지 않은 건 워낙 건강했기 때문이다. 사기가 꺾이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싸움이 붙은 때에 자신이 총을 맞았다는 게 알려지면 전세가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신은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독전한 것이었다. 관우가 뼈를 깎아 화살촉을 뽑아낸 이야기는 병가兵家의 미담이다. 이순신이 등을 갈라 철환을 꺼내면서도 태연자약한 것 역시 미담으로 남으리라. 천고 이래로 볼 수 없던 영웅호걸의 풍모라.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구나.

▲ 승첩 이후 순신은 전 함대에 휴식령을 내렸다. 장수들은 승전의 기쁨에 의기충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튿날 6월 1일 새벽, 원균이 순신에겐 아무 통지도 하지 않고 제 배를 타고 어디로 가려고 하였다. 같은 함대에 있으면서 말도 없이 먼저 행선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순신은 이 소문을 군중 야경대장에게 듣고는 군관을 시켜서 원균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원균은 몰래 가려다 들킨 게 당황스러웠던지 뱃머리를 돌려 순신을 찾아왔다. “영감, 어깨에 상처가 밤새 과히 아프지 아니하십니까”라며 아침 문안을 온 거였다.

순신은 “고맙소. 상처는 대단치 않지만 영감은 이 이른 새벽에 어디를 가시오”라며 반문했다. 원균은 이렇게 답했다. “어제 싸움에 적선 2척을 남겨 놓으신 것이 있지 아니하오? 지금 그 2척을 처리하러 가려 하오. 적의 수급은 영감께 바치오리다. 전 패군지장인데, 영감의 덕택이 아니면 있을 곳조차 없지 않습니까?”

순신, 부상 숨긴 채 전투 독려

순신은 답했다. “그러하시거든 가보시오. 우리가 국가의 중대한 임무를 받고 적과 싸우는 처지인데, 피차가 어찌 있겠소. 수급이 뉘 것이며 공이 뉘 것인 것을 말할 것이 있소? 혼자 가시기 고단하거든 전선 몇척을 드릴 테니 데리고 가시오.” 순신은 얼마 전 옥포싸움 끝에 전리품을 빼앗으려는 원균이 자신의 군사들에게 화살을 쏜 기억이 선명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나라가 위급존망한 때에 그 기억을 되새길 필요가 없었다. 쓸 장수가 귀한 판이니, 원균 같은 자라도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포용한 것이었다.

순신의 승낙을 얻은 원균은 배를 급히 몰아 전날 밤 싸우던 사천항 앞바다로 갔다. 거기는 순신이 적선을 남겨둔 곳이다. 원균은 육지로 도망갔던 이들이 자신들의 배를 도로 찾으러 올 것으로 예측하고, 이를 공격하러 간 거였다. 그런데 아직 빈 배만 있었다. 원균은 선중에 있는 전리품을 빼앗은 뒤 배를 불사르고, 적이 진을 쳤던 곳을 찾아내 적의 시체 3구의 목을 베어 본진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큰 공이나 세운 듯 나라에 장계를 올렸다. 순신의 제장들은 원균의 제멋대로 행동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순신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忠誠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고, 공을 세워 상을 받자는 사욕私慾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소. 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공을 주어야 잘 싸우는 것이오. 지금 국가의 일이 위급하고 싸울 사람이 귀하니 부득불 공을 주어 싸울 마음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하오.”

순신은 모자랑포에서 출발해 남해도ㆍ창선도 두 섬 근처에서 터를 잡고 진을 쳤다. 그런데 그곳은 이상하리만큼 물이 맑고 파도가 일지 않았다. 그때 사방으로 보냈던 탐보선이 돌아와 이렇게 보고했다. “곤양 앞 광지光支 바다로부터 적선 15척이 검은 돛을 달고 우리 진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 탐보를 들은 순신은 “거짓으로 도망가는 척하면서 뒤로 물러나 다른 곳에 진을 다시 치라”고 하명했다. 제장들은 “지리를 선점하는 게 가장 긴요하거늘 사또는 왜 좋은 진지를 버리고 물러가려 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순신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답했다. “낸들 어찌 지리의 형세를 몰라보고 진을 옮기겠는가? 제장들이 깨닫지 못하지만 오래지 않아 알게 될 터이니, 장령을 어기지 마라!” 제장들은 내심에 순신의 고집을 원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선 대소 80여척이 북과 나팔을 울리며 진을 옮기기 시작했다[※도망가면서 북과 나팔을 울린 이유는 뒤에 나온다]. 조선 함대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는 걸 본 일본군은 기세를 얻어 순신이 진을 쳤던 자리를 점령했다.

순신의 지략에 제장들 감탄사

적군들은 당연히 의기충천해 고함을 치고 조총을 쏘면서 싸움을 돋우었다. 바로 그때 청천벽력이 일어나고 풍랑이 솟아오르며 검은 안개가 일어 하늘을 덮었다. 물결은 바다를 뒤집어 일본 병선 15척이 태산 같은 파도 속으로 파묻혀 몰사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던 조선의 제장들은 그제야 순신의 선견지명을 탄복하며 물었다.

순신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생은 시적 취미를 가졌으니, 옛 성인도 노래와 춤을 가르쳤소. 그러니깐 그대들은 고시를 잘 읽으오. 고시는 또 일종의 병서요. ‘독룡잠처수편청毒龍潛處水偏淸(당나라 중당中唐 때 시인 노륜盧綸의 시구)’이라. 독룡이 잠긴 곳에는 물이 맑다 하였다. 우리가 진을 쳤던 그곳은 물빛이 극히 맑기 때문에 반드시 사나운 이무기가 있을 것이오. 그때는 이무기가 잠들어 있을 때라 우리의 함대가 이동하면서 북ㆍ나팔ㆍ함성으로 이무기의 잠을 깨운 것이오. 우리가 떠난 뒤 사나운 물결이 일어난 연유가 여기에 있소.”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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