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㉛

1592년 5월 4일 이른 새벽. 드디어 이순신의 수군함대가 움직였다. 86척의 병선이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東으로 향하여 출발한 것이다. 물길을 잘 알고 용감한 광양현감 어영담을 지로선봉장指路先鋒將, 방답첨사 이순신과 가리포첨사 구사직을 중위장, 낙안군수 신호와 보성군수 김득광을 좌우부장, 흥양현감 배흥립과 녹도만호 정운을 전후부장, 사도 첨사 김완을 우척후장, 여도 권관 김인영을 좌척후장, 군관 급제 최대성을 한후장(후미를 지키는 역할을 맡은 장수), 군관 급제 배흥록을 참퇴장(후퇴하는 군사를 처벌하는 역할을 맡은 장수), 군관 이언량을 돌격장, 군관 신여량을 귀선장, 우후 이몽구는 본영을 지키게 했다. 병선의 종별과 수효는 아래와 같다.
판옥대맹선 24척 3130여명
협판중맹선 15척 730여명
포작소맹선 46척 1380여명
총계 85척 5400여명
이 무렵, 일본 병선 500여척은 부산ㆍ김해ㆍ양산ㆍ명지도ㆍ가덕도ㆍ거제도에 정박해 있었다. 경상도 연안의 각 관포와 좌ㆍ우 수영은 적선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달아나기만 일삼았다. 모든 장수들 중 항거해 싸우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원균, 박홍, 이각, 이일, 김명원, 이양원 할 것 없이 다 도망하고 말았다. 싸우는 게 무서웠던지 일본군만 온다 하면 달아나기 바빴던 거다.
이순신의 함대는 80여척이었지만 병선이라고 할 만한 건 30척이 채 안 됐다. 이런 약한 부대로 일본의 대함대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믿을 건 이순신의 하늘같은 담략뿐이었다. 이순신은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무겁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며 전 함대를 몰고 평산포 상주포를 지나 미조항 창선도(경남 남해군)를 거쳐 고성의 사량도(경남 통영시) 앞바다에 다다랐다. 하지만 영남 연안 일대는 ‘일본군의 천지’였다. 일본군을 두려워한 남해현령 기효근奇孝謹, 평산포만호 김축金軸, 미조항첨사 김승룡金勝龍이 깊은 산골짜기에 잠복하고 병선과 군기는 모두 바닷물 속에 버렸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령, “무겁게 움직여라”
5월 6일 노량 근처에 숨어 있던 원균이 작은 배 한척을 타고 순신의 함대로 돌아왔다. 어부옷을 입고 있던 원균은 그 형용이 초췌하여 중병이 든 사람처럼 보였다. 원균은 “소인은 전후 조처가 잘못되어 속죄할 수 없는 죄인이오”라며 순신의 앞에서 울었다. 순신이 원균을 위로하면서 군복 일습과 병선 1척을 줬다. 원균이 순신의 군복을 얻어 입으니, 그 꼴이 비 맞은 장닭이 꼬리를 끄는 것처럼 보였다. 순신의 옷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제장들은 그 모양을 보고 입을 막고 몰래 웃었지만 원균은 군복 자락을 걷어들고 순신의 후의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원균은 눈으로 적을 보지도 못했을뿐더러 바람 부는 가지에 앉은 새와 같은 모양으로 언제든 도망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계속 어물어물하다가 이랬다저랬다 하다 말았다. 그러던 중 원균처럼 도망쳐 숨어 있던 남해현령 기효근, 미조항첨사 김승룡, 평산포만호 김축 등이 이순신 부대의 위세를 보고 나타났다. 사량만호 이여념李汝恬, 소비포(경남 고성군)권관 이영남도도 협판선挾板船 1척씩을 타고 오고, 영등포만호 우치적, 지세포(경남 거제시)만호 한백록韓百祿, 옥포만호 이운룡도 판옥선 2척을 타고 찾아왔다. 이렇게 이순신의 날개 밑으로 의탁하여 모여 들었다. 경상도 병선 수량은 다음과 같다.
판옥대맹선 1척 이운룡
판옥대맹선 1척 우치적 한백록 2인 병승
판옥대맹선 1척 기효근 김승룡 김축 3인 병승
협판중맹선 1척 이영남
협판중맹선 1척 이여념 이상 합 5척
기습당한 일본군의 ‘일자진’
순신은 도망을 쳤던 경상도 제장을 미워하지 않고 자신의 부하와 똑같이 대우했다. 그리고 적선이 있다는 천성 가덕을 향했다. 옥포만호 이운룡과 영등포만호 우치적이 향도장을 맡아 길을 인도했다. 옥포 앞바다에 도착하자 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여도권관 김인영의 배가 마황기麻黃旗를 들고 신기포를 쐈다. 적선이 보인다는 것을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척후선의 신호를 들은 이순신이 초요기(대장이 장수를 지휘하던 기)를 높이 달아 제장을 불렀다. 제장선들이 모두 노를 저어 주장의 명령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영남 제장들도 순신의 명령을 따라 함께 모여들었다. 제장을 자신의 배에 모은 순신은 이렇게 명령했다. “우리는 국가의 무신이다. 나아가 싸우는 데 충용을 다하라. 겁내어 물러나는 자가 있으면 군법이 용서치 못하리라. 전투에서 용기 없음은 무신의 일이 아니다. 이것이 무신의 본분이며 대의이다.”

어찌됐건 일본군 대부분은 배에서 내려 재물과 부녀를 노략하고 있었다. 이순신 함대를 보고는 그제야 창황히 배에 올랐다. 그후 바다 복판으로 나오지 않고 바닷가에서 일자 모양으로 진을 펼쳤다. 그중 선봉 여섯척이 앞서 나오는 걸 본 이순신이 북을 올려 치기를 명했다. 싸움이 시작됐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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