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이 붉어지자 돛을 세우다
동쪽이 붉어지자 돛을 세우다
  • 이남석 대표
  • 호수 107
  • 승인 2014.09.12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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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㉚

제장들의 격론을 듣고만 있던 순신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말엔 힘이 실려 있었다. “우리 모두 국은을 입었소. 난세에 처한 국가의 무신으로 어찌 싸우길 두려워하겠소. 장령이 한번 내리면 부탕도화(뜨거운 불을 밟고 건넌다는 뜻으로, 힘들과 괴로운 일을 말함)라도 할 것이오. 5월초 좌수영 앞바다로 모이시오. 시기를 어기는 자에게는 군법이 엄할 것이오.”

▲ 1592년 5월 1일부터 각처의 병선이 좌수영 앞바다로 몰려들었다.[사진=뉴시스]
출정에 반대한 권준은 키가 크고 잔나비 팔과 곰의 허리에 무예가 대단한 인걸이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경상좌우도의 수군은 조선 8도 중 가장 많소. 그런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도주하였소. 그렇거든 우리 전라좌도의 외롭고 약한 수군 형세로는 출병한다 하더라도 승승장구하는 강적 앞에서 승산이 만무하오. 승산 없는 진전을 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겐 맡은 경계가 있소. 내 구역을 버리고 남이 맡은 구역으로 구원을 나갔다가 만일에 불행한 일으면 조정의 죄를 면할 수 있겠소.” 조리있고 유창하게 도도한 강물이 흐르듯 대꾸했다.  하지만 이 말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으니, 좌수영 대솔군관 전 지도智島만호 송희립이었다. 우렁찬 목소리에 신장은 8척이며 이마와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범상치 아니한 모습이었다. 장사의 기운이 당당하여 정운과 어영담 두사람을 방불케 한 인걸이었다.

“여보, 순천영감! 영감의 말씀은 청종할 수 없소. 영남이거나 호남이거나 한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니, 우리가 우리 영토를 지키는 무신으로서 수수방관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소? 영남과 호남이 실낱 같은 섬진강 하나로 접경하여 순치脣齒의 관계인데, 영남을 지켜내지 못한 요즘 호남만을 지키려 함은 ‘적이 문안에 들어왔거든 나는 방안만을 지키려 함’이나 다름이 없소. 조정의 명령이 없다는 점도 그렇소. 지금은 이일과 신립 등 육지 장수들이 모두 전멸하는 바람에 모든 통로가 끊어졌소. 그럼에도 조정에 찬 무리들은 당파싸움에 매몰돼 있소. 우리 수군을 알기를 없는 듯이 생각하고 있으니, 설사 조정의 분부가 없더라도 선참후계先斬後啓(군율을 어긴 사람을 먼저 처형하고 나중에 임금에게 보고함)하는 것이 당당한 일이오. 사또(이순신)께서는 정운의 말대로 출정하시도록 분부하시기를 바라오!” 송희립의 말을 들은 여러 장수는 나라에 대한 충의가 불 타올랐다.

그러나 좌중에 앉은 수령ㆍ변장들 중에 는 일본군이 무섭다는 생각에 겁을 집어먹어 형세만을 관망하고 있었다. 대장인 수사 이순신은 양편의 논쟁만 들을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순천부사 권준, 우후 이몽구를 중심으로 지키자는 파와 녹도만호 정운, 군관 송희립 등 나아가 싸우자는 파가 대립해 격렬한 논쟁을 몇시간째 계속했다. 그러던 중 정운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또! 소인은 물러가오. 소인은 녹도로 돌아가오. 적병이 문전에 온 이때에 밤이 새도록 논쟁만 하는 이런 자리에 소인 같은 성급한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소. 소인 물러가오!”

좌수영 격론의 결과는…

좌수사 이순신이 호상에서 벌떡 일어나 그 팔척장신의 건장한 몸에 긴 팔뚝을 내밀어 정운의 손을 잡았다. “여보, 녹도! 이리 앉으오. 내가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런 장렬한 말을 들으려고 하던 것이오. 국가의 존망이 우리 무신에게 달렸으니깐.” 우후 이몽구, 순천부사 권준 이하로 모든 사람은 이순신의 행동을 긴장한 채 주시하였다. 순신은 허리에 찼던 큰 칼을 쭉 빼어 들었다. 서릿발 같은 무지개 한줄기가 일어났다.

 
이 칼은 중량이 보통 환도와는 다르다. 보통 군관의 환도는 12근 이상이 별로 없었다. 이 칼의 중량은 20근이나 되는 7척 대도였다.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떠는도다)이라는 여덟 자를 새긴 명도였다. 순신의 두 눈에는 형형한 광채가 일어나 사람을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국록을 받고 국은을 입었소. 난세에 처한 국가의 무신이 되어 나라를 위하여 어찌 싸우러 나가지 아니하리오! 장령이 한번 내리면 비록 부탕도화(뜨거운 불을 밟고 건넌다는 뜻으로, 힘들과 괴로운 일을 말함)라도 할 것인즉 장령을 어기는 사람은 이 칼로 베리라! 5월 초 3일의 밤 조수가 들기까지 병선ㆍ군사ㆍ병기 군량을 단속하여 좌수영 앞바다로 모여서 명령을 듣게 하오. 시기를 어기는 자에게는 군법이 엄할 것이오.”

이순신이 용기가 있는 무신이라는 걸 제장들은 잘 알고 두려워한다. 범 같은 울지내와 니탕개 등도 한칼에 벤 명장이다. 조정에서 특별히 추천하여 일방의 대장인 좌수사에 오른 것까지 잘 알고 있다. 그 힘차고도 엄숙한 명령에 좌중은 고요해졌다. 제장들의 몸에는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은 하늘을 가리켰다. 제장 일동은 일어나 각기 칼을 빼어 들어 맹세하고 군령판軍令版에 이름을 적어 표시하였다.  순신은 미리 준비하여 둔 술과 안주를 올리라 명하였다.

그리고 손수 술잔을 들어 제장에게 권하며 마음을 합하고 죽기로 싸워 사직과 창생을 붙들자고 했다. 처음에는 나아가 싸우기를 원치 아니하던 사람들도 순신의 성의에 감동을 받아 죽기로 싸우기를 자원하였다. 임진1592년 5월 1일부터 관하 각처의 병선이 좌수영 앞바다로 모여든다. 순신이 진해루鎭海樓에 올라 앉아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 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 병기를 강론하였다. 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 장수들의 이름을 기록하고는 ‘분격하여 자신을 잊는 것을 보니 천하의 의사들이라 할 만하다’고 하였다.

순신, 드디어 전장에 나서다

2일에 군관 송한련이 경상도의 남해도를 염탐하고 돌아와 그 정황을 알렸다. 그날의 일기다.  “군관 송한련이 남해로부터 돌아와 보고하되 남해현령, 미조항(경남 남해군 미조리) 첨사, 상주포(남해군 상주리) 만호, 곡포(남해군 용소리) 대장(대신 출전한 장수), 평산포(남해군 평산리) 권관 등이 적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달아나 병장기 등이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한즉 경상도 연안의 상황은 놀랍고 놀랍다.”

3일에 중위장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을 불러 내일 새벽에는 영남 바다로 출전하기로 약속을 정하였다. 이날에 여도진 수군 황옥천黃玉千이 도망가 제 집에 가 숨은 것을 잡아다가 목을 베어 효시했다. 군법은 참 엄숙하여 용서가 없었다. 5월 4일 이른 새벽 이순신이 수군함대를 통솔하고 출발하였다. 동쪽 하늘이 붉어질 때 3발의 대포 소리를 군호로 하여 86척의 병선이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으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기고가 당당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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