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영웅이 똬리를 풀다
위기의 순간, 영웅이 똬리를 풀다
  • 이남석 대표
  • 호수 106
  • 승인 2014.09.01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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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㉙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정면에 좌정하고 관하 제장이 계급에 따라 좌우로 앉았다. 출병회의를 개최한 건 경상우수사 원균이 도와달라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부산 동래가 함락됐다는 경보를 들은 후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영웅이 똬리를 풀고 있었다. 

수사 이순신이 정면에 좌정하고 관하 제장이 계급에 따라 좌우로 앉았다. 이 회의를 개최한 건 경상우수사 원균이 도와달라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부산 동래가 함락됐다는 경보를 들은 후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조정은 당혹스런 상태였다. 믿었던 신립과 이일이 모두 대패했기 때문이다. 이일이 상주에서 패주하고 신립이 충주에서 전사하니 조정으로선 한성을 버리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조정은 차마 수군水軍에 출전명령을 내릴 생각조차 못했다. 이순신이 장계를 수차례 올려 출전하기를 자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그럴 때 원균이 ‘청병’을 요구한 것인데, 사실 그 배경이 조금 달랐다. 사실인즉 청병을 한 게 아니라 패주했다는 보고서와 다를 바 없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자기 관하에 속한 가덕ㆍ천성ㆍ제포(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던 포구)ㆍ안골포(안골동 포구)ㆍ영등포(경남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ㆍ옥포 등에 명하여 쳐들어오는 일본수군을 막으라 하였다. 그래서 일본수군의 선봉 등당고호 관야정영의 함대와 고성固城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앞바다에서 싸우다가 대패해 수군 700여인을 잃었다.

신립만 믿던 조정, 결국은…

패전 소식을 전달받은 원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다에 뜬 우리나라 어선의 야화夜火를 보고 적의 병선이 쳐들어온다고 착각해 전선 70여척과 많은 군량ㆍ군기를 바닷물 속에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수군 6000여인을 강제해산하고 자신은 작은 배 한척을 잡아타고 박홍, 이일, 김명원의 무리와 같이 남해도南海島로 달아났다. 원균의 부하인 옥포만호 이운룡, 영등포만호 우치적禹致績, 율포만호 이영남 등 몇몇 사람은 상당한 무장으로 조정에서 선발하여 남변南邊에 배치한 인물들이었다.
 

▲ 이순신은 동래(부산)이 함락됐다는 경보를 들은 후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들은 원균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그 뒤를 쫓아 남해도 앞바다에서 만났다. 그중 이운룡, 이영남은 함경도 녹둔도 싸움에서 이순신과 힘을 합해 오랑캐를 격파한 일이 있어 순신의 용기와 지략을 잘 알고 있었다.  원균이 육지로 올라 도망하려 하는 것을 본 이운룡은 이렇게 말했다. “달아나다니 안 될 말이오. 사또가 나라의 중한 임무를 받았으니 죽더라도 내 지역 안에서 죽을 것이지 육지로 올라 도망을 하다니 될 말이오.

이곳 노량露梁은 전라ㆍ충청으로 가는 중요한 목이오. 이곳을 한번 잃으면 전라ㆍ충청이 위태할 것이오. 이제 경상우도의 수군을 사또가 해산시켰다 할지라도 아직은 다시 모을 수 있을 것이오. 또한 전라좌도 이순신의 수군을 청병하면 세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순신은 족히 믿을 만한 당대 명장이오.”  오도 가도 못하던 원균은 이운룡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물었다. “과연 순신의 수군을 청해 올 수 있겠느냐.” 이운룡은 “죽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면 어찌 못 가겠소만 율포만호 이영남이 이순신과 더 친분이 있으니 그를 율포로 보내는 게 나을 것이오”라고 답했다.  이영남을 보낸 이운룡은 순신에게 글을 써서 꼭 와야 된다는 뜻을 고했다. 이영남은 따로 불러 속내를 밝혔다. “내가 여기에 남지 않으면 원균은 필시 달아날 것이오. 원균이 없으면 영남 해상은 주장主將을 잃어버려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니 내가 같이 가지를 못하오.”

이영남은 전라좌수영에 득달같이 달려가 순신을 만나고 원균의 청병 관문과 이운룡이 쓴 서간을 함께 올렸다. 순신이 군사회의를 소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가 싸워야 한다’는 순신의 호령 한번이면 출정할 수 있었지만 순신은 ‘이젠 싸워야 한다’는 여론이 제장 사이에서 형성되기를 바랐다. 좌석에 모인 제장들은 얼굴에 긴장한 색채를 띠었다. 순신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공을 이렇게 모은 것은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청병을 요청하는 관문이 왔기 때문이오. 경상우도 수군은 상실된 군사가 700여명이요, 흩어진 군사가 6000명이라 하오. 원균은 병선 70~80척을 적군에게 빼앗길까 두려워서 바닷물 밑에 침몰시켜 버리고 배 1척만 갖고 남해 노량 근처에 피신해 있는 모양이오. 부산과 남해간의 수백리 해역이 일본군이 횡행하는 장소가 됐다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제공과 난상협의하여 최선책을 만들어 실행하기를 바라오.” 순신은 눈을 들어 사람들을 둘러본 뒤에 조용하게 착석하였다. 

 

전라좌수영에 엄습한 전운

순신의 엄숙한 방침의 설명을 들은 제장들은 숨까지도 막힌 듯하였다. 한동안 서로 돌아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전란이 가까워 오는 줄은 알았지만 큰 강적이 발부리에 와닿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던 것이었다. 이때 “사또께 아뢰오” 말하고 일어선 장수. 신장은 7척이 넘고 목소리가 우렁차고 얼굴빛 검은 장수는 녹도만호 정운이었다.

그는 “적이 문안에 들어왔거든 치지 않을 수 있소? 국은을 입은 무신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소?  지금 다행히 서남풍이 부니 오늘 밤으로 조수를 따라 본영에 있는 병선을 몰고 달려가 원수사를 구원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뢰오”라고 언성을 높였다. 정운의 그 어조는 강개하고 장렬하였다. “정운의 말이 옳은 줄로 아오.” 체격과 용모가 당당하고 준수한 광양현감 어영담이 동의하고 나섰다. 좌석은 긴장미를 더하였다. 이때 “아니오. 그렇지 아니하오”라며 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순천부사 권준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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