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은 인산인해였다. 롯데백화점이 8월 6일~9일 개최한 ‘해외명품대전’ 때문이었다. 200여개의 브랜드가 참여해 30~70% 제품을 할인 판매했다. 매대 앞은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명품백을 사기 위한 소비자들로 북적였고, 계산대 앞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롯데백화점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도 9월 말까지 명품세일을 진행한다. 롯데백화점ㆍ현대백화점ㆍ신세계백화점 3개 백화점은 총 2100억원어치의 물량을 푼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갤러리아백화점도 8월 13일까지 200개 명품 브랜드 상품을 최대 80% 할인하는 ‘클리어런스 세일’을 연다 주목할 점은 여름 정기세일이 끝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명품세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백화점 업계의 세일 기간은 무려 100일이 넘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80일 정도였는데 20일가량 늘었다. 소비자들도 이젠 ‘백화점 세일’에 무뎌지는 분위기다.
여준상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저성장 불황에 따른 합리적 소비에 따라 백화점 업계도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할인 전략을 택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장기화된 세일은 백화점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특히 잦은 세일은 수요예측 등에 혼동을 줘 재고가 쌓이는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명품세일대전을 두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밀어내기식 세일’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6월 주요 유통매출 동향을 보면, 백화점 업계의 성적은 최악에 가까웠다. 세일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업계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 전월 대비 14.1% 줄어들었다. 올 2분기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6월 27일 시작한 정기세일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1% 수준의 총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며 “식품ㆍ명품 매출이 플러스 성장을 했음에도 캐주얼 등 의류매출이 5% 이상 하락하며 실적부진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현대증권은 이 회사의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 18.2% 하락으로 예상했다. 이상구 현대증권 연구원은 “세월호 여파와 소비경기 위축으로 의류 부문 매출이 부진했다”고 원인을 밝혔다.

벼랑에 몰린 ‘유통 꽃’ 백화점
실제로 백화점 업계와 달리 아울렛과 SPA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실적자료와 업계 자료에 따르면 유니클로ㆍ자라(ZARA)ㆍH&M 등 해외 SPA 브랜드 ‘빅3’의 2013년 매출이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해외직구를 비롯한 새로운 유통채널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배송업체 몰테일의 지난 6월 17일~7월 14일 한달간 배송대행건수는 약 10만건으로, 전년 대비 2배가 됐다. 최근 목록통관까지 확대 시행돼 핸드백ㆍ선글라스 등 상품을 200달러까지 관부가세 없이 구매 할 수도 있다.
이런 유통채널이 성장할수록 백화점의 먹을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백화점이 예년과 다르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 3월 영플라자를 리뉴얼하고 온라인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다른 유통채널에서 찾아보기 힘든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원스톱 쇼핑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9월 패션전문관 4N5(포앤파이브)를 오픈했는데 여기에는 30여개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입점했다.

롯데백화점(롯데쇼핑)은 파주ㆍ이천ㆍ김해 지역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한 데 이어 올해 부산지역과 2016년 경기도 양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추가로 완공할 계획이다. 신세계도 여주ㆍ파주ㆍ부산에 이어 의정부 지역에 프리미엄아울렛을 만들고 있다. 가장 뒤늦게 프리미엄아울렛 사업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은 내년 김포ㆍ송도 지역에 순차적으로 프리미엄아울렛 오픈을 앞두고 있다. 도심형아울렛과 복합쇼핑몰도 속속 오픈하고 있다.

오세조 교수는 “치열해진 경쟁 속 백화점이 살아남는 방법은 차별화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기능ㆍ감성ㆍ엔터테인먼트 등 그만의 가치를 개발해 내는 백화점이 결국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통시장을 호령하던 유통공룡 백화점이 ‘벼랑’에 서있다. 세일은 소비자를 지치게 만들고, 변신은 다른 유통채널과의 차별성을 없앤다. 유통공룡이 ‘좌고우면’에 처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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