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를 꼽자면 자동차 연비 문제일 것이다. 소비자가 연비에 관심을 워낙 많이 쓰는데다 최근 발생한 ‘과장 연비’가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12년 현대차는 미국시장에서 자동차 연비를 과장했다는 이유로 4200억원을 소비자에게 보상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소비자단체는 국내에서도 소비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도 제기했다. 그러자 승용차 공인연비를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국내 자동차 공인 연비 측정방법을 개선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필자도 국회에서 연비개선책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했다.
현행 자동차 연비 규제를 보면, 산자부가 10여년 동안 승용차의 연비 관리ㆍ검증을 맡았다. 국토교통부는 트럭이나 버스 등 상용차의 연비 검증을 담당했다. 그러나 “실연비와 공인연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소비자 불만이 커지자 국토부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승용차 공인연비 측정에 나섰다. 그 결과, 국토부는 지난해 말 현행 오차 범위(5%)가 넘는 2개 차종을 확인했고, 연비 ‘부적합’ 차량으로 발표했다. 바로 현대차 ‘싼타페DM’과 쌍용차 ‘코란도 스포츠’다.
그러나 산자부는 이미 두 차량의 연비를 ‘적합하다’고 판정한 상황이었다. 이후 산자부와 국토부는 6개월 넘게 자동차 연비 측정 역할 분담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였다. 올 6월 두 부처는 최종 공동발표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비 문제가 있는 차종에 대해 또다시 엇갈린 판정을 냈다. 연비가 맞는지 틀린지 헷갈리는 소비자에게 혼란만 부채질한 셈이다. 두 부처 간 갈등 중재에 나선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정부의 자동차 관리ㆍ정책 시스템상의 문제도 찾을 수 있다. 산자부(산업 육성), 국토부(안전 규제), 환경부(환경 규제)가 각각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갈등을 겪을 때가 많다. 이번 연비 갈등은 물론, 튜닝산업 육성(산자부 vs 국토부), 저탄소차 협력금제도(산자부 vs 환경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자동차 산업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정부가 자동차 메이커에 정확한 연비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이번 연비 사건은 국내 완성차업체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정부 부처의 판결이 다르니 완성차업체가 과장 연비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도피처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소비자는 완성차업체에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리콜, 차량 가격 등 해외와의 차별대우로 불만이 가득하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 급증하고 있는 수입차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동차 메이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 판결이 다르다’는 핑계를 댈게 아니라 스스로 소비자 보호ㆍ보상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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