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중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한국은 제조대국 중국이 필요로 하는 중간재를 공급하면서 중국의 톱(TOP) 3의 교역국이 됐다. 거꾸로 말하면 중국의 기침 한번에 한국은 바로 몸살이 날 수도 있는 구조라는 거다. 그래서 한국은 제조업 측면에서 보면 ‘준準중국’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중국의 수요에 울고 웃는 상황이 돼 버렸다.
올해 초 중국이 경제성장률을 7%대로 낮추자 중국발 금융위기설이 시장을 떠돌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 터질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동산 실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돈 벌 욕심에 자기 돈의 30~60배의 레버리지를 걸어 부동산 상품을 서로 사고팔다가 부동산 가격이 원래 가격까지 떨어지자 바로 원금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의 상황과는 다르다.
일단 중국은행들은 예금한 돈의 75%내에서만 대출을 한다. 게다가 중국의 모든 은행은 국유은행이다. 중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부동산 파생상품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은행의 예금지급불능사태가 올 가능성이 적다. 중국의 집값은 매년 1000만채의 집을 지어도 인구가 워낙 많아 실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다. 중국의 금융위기가 온다면 맨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금리다. 서방의 중국 금융위기설에도 최근 중국의 금리는 하향추세다. 따라서 중국에 금융위기가 온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중국발 금융위기설의 진위여부는 3월에 끝난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 중국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위안화 환율변동폭을 상하 1%에서 2%로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고 철강ㆍ화학ㆍ시멘트ㆍ유리ㆍ태양광 같은 19개 공급과잉된 산업 설비를 2014년 말까지 폐기하도록 했다. 2014년 수출목표는 사상 처음으로 GDP와 같은 수준인 7.5% 내외로 정했다. 향후 2년 내에 예금금리를 자유화하기로 했다.

제조업에서 한국 우위 사라져
2014년 양회 이후 중국정부는 다양하고 파격적인 정책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간재 수출로 재미를 보던 한국의 전통제조업에 중국 특수는 더이상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GDP를 2013년과 비슷한 수준인 7.5%선으로 잡은 이유로 ‘19개 전통제조업은 대대적인 과잉설비 축소와 구조조정’ ‘IT를 중심으로 하는 신성장 소비산업은 육성’ ‘금융산업은 내부 구조조정’을 꼽을 수 있다. 총 수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금융위기보다는 19개 전통제조업의 구조조정이 더 무서운 상황이다. 구조조정 이후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아 한국기업과 경쟁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수출 호조는 이들 전통제조업에 대한 중간재수출 덕분이었는데, 이젠 구조조정으로 그 수요가 줄어들게 생겼다. 중간재 수출 호황이 끝난 셈이다. 이제 한국은 중국 제조업의 구조조정 후에 등장할 기업과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 들어온 서방기업과의 경쟁도 고민해야 한다. 물고기는 호적戶籍이 없다. 한국 어부에 잡히면 한국산, 일본 어부에게 잡히면 일본산, 중국 어부에 잡히면 중국산이다. 기술도 물고기처럼 돈다.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첨단기술의 출생지는 선진국이지만 지금 현주소는 중국이다. 기업들도 대거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이 있는 곳에 기술이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금 전세계 신기술은 중국에서 만들어져서 중국에서 떠돌다가 중국과 전세계로 팔린다. 한국 제조업의 강점도 전세계 기업의 신기술과 만나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기술은 낙후돼 있지만 한국보다 높은 수준의 세계적인 기술이 중국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중국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이젠 중국기업과 경쟁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기업과도 경쟁인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변하고 있다. 인터넷이 중국을 바꾸고, 중국인을 바꾸며, 중국의 소비를 바꾸고 있다. 한국은 제조강국으로 폼 잡고 있지만 폭발하는 중국 내수시장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관시關係’로 맺어진 유통강국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투자해서 돈을 벌려면 중국의 ‘China-MBA’들이 필요한데 한국은 중국어 전공자들을 주재원으로 대거 내보냈다. 투자분석, 시장분석, 상권분석, 마케팅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중문과 출신만 보내면 승부는 뻔하다. 중문과 출신이 아닌 중국어가 능통한 중국인들로 전력을 새로 짜야 한다. 역관譯官이 아닌 거상巨商을 키워야 한국이 대중국 손익계산서에서 흑자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폰이 중국을 바꿔 놓았다. 신장의 유혈사태도, 음식점의 불량식품도, 여성들과 부적절한 행위나 부적절한 거래를 하는 고관들의 행태도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가 관찰자와 고발자가 되고 있다. 숨겨놓은 CCTV보다 손에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전송이 가능한 ‘이동 CCTV’인 휴대전화가 중국을 바꿔 놓은 것이다. 요우쿠(동영상 사이트), 위쳇(SNS) 등에 무조건 찍어서 올리고 유통시킨다. 애플이 70만명의 푸스캉(애플의 생산하도급 전자업체) 종업원의 손으로 아이폰을 만들게 하면서 중국인에게 노동환경이 무엇이고, 대량생산이 무엇이며, 생산이 아닌 개발과 유통이 진정한 권력이란 걸 이미 알려 줬다.
중국서 돈 벌 거상 키워야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bsj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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