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7월 4일 KRX금시장.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미국 독립기념일이지만 투자자들의 촉각이 곤두선다. 행여 ‘호재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기대는 한낱 공염불에 그쳤다. 그날 최저가는 4만2990원, 최고가는 4만3100원을 기록했다. 종가는 4만3000원으로 하루 변동폭은 110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4만2920원에서 매수, 4만3060원에서 매도가 가장 많았다. 만약 1g을 최저가에 사서 최고가에 팔았다면 수익은 140원. 여기서 0.4~0.5%의 거래수수료를 제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물론 거래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손익을 거머쥘 수도 있다. 1㎏을 거래 최저가에 사서 최고가에 팔면 14만원의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1회 호가한도인 5㎏의 금을 거래했다면 7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우선 필요한 투자금으로 2억1460만원이 필요하다. 물론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5㎏의 거래량이 KRX금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 3.7㎏보다 1.3㎏ 더 많다는 데 있다. 70만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 개인인 금시장 전체 거래량보다 더 많은 금을 사고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KRX금시장은 올 3월 24일 개장했다. 한국거래소가 운영전반을 담당하고, 한국예탁결제원ㆍ한국조폐공사ㆍ한국증권금융을 비롯한 유관기관이 금의 보관ㆍ인출ㆍ품질인증ㆍ예치업무를 맡았다. 거래방식은 주식과 같은 경쟁매매방식을 택했다. 개인투자자는 대신증권ㆍ삼성증권ㆍ신한투자증권ㆍ우리투자증권ㆍ한국투자증권ㆍ현대증권ㆍKDB대우증권 등 8개의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거래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계좌를 개설하고 예수금을 입금하면 주식거래와 같은 방식인 증권사의 트레이딩시스템(HTS)ㆍ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ㆍ지점방문ㆍ전화 등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다. 거래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금시장은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시장은 정상거래 시장과 음성거래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부가 추산한 국내 금 유통규모는 연간 100t~110t 가량이다. 정부는 이 중 60~70%(50t~70t)가 음성화된 밀수ㆍ정련금(기존의 금을 다시 녹여 사용하는 금)으로 보고 있다. 금액으로 따지면 2조2000억~3조3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금시장에서 음성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을 피할 수 있고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음성거래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 탈세규모가 연간 2200억~3300억원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금 유통관리기구의 부재’에서 찾았다.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제도가 금시장의 음성화를 부추겼다는 얘기다. 공식적인 금 유통관리기구인 금시장이 개설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개장 이유가 어찌 됐든 많은 투자자의 관심이 금시장에 쏠렸다. 저금리ㆍ저성장 기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의 저축성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금융기관 평균금리’에 따르면 5월 신규 저축성 예금금리는 2.59% 기록했다. 199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론 1년 만기 정기예금과 정기적금의 금리는 각각 2.69%, 2.79%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자 소득세와 주민세를 제하면 실제 금리는 2.2~2.3%대로 떨어진다.
증시 성적표도 신통치 않았다. 어닝쇼크ㆍ엔저ㆍ원고 등 악재가 쏟아지면서 국내 증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 결과 박스권 장세가 형성됐고, 주가의 역동성은 줄어들었다. 이런 달갑지 않은 투자환경이 금시장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거다. 금이라는 특수성도 매력적이었다. 금은 화폐자산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 금 보유량의 60%가량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준비자산으로 금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의 가치는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비교적 크게 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금가격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유로존 재정위기까지 터진 2011년 금가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KRX금시장이 개장할 무렵엔 상황이 달랐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의 경기가 회복세를 띠면서 유동성이 안전자산에서 투기성 자산으로 이동할 조짐이 감지되고 있었다. 저물가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금가격 상승세를 막아서는 요인이었다. 더구나 금융당국의 목표인 ‘지하경제 양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부유층이 보유하고 있는 일명 ‘장롱금’의 양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지영 대신경제연구소 서지영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금시장 개장이 부의 은닉이나 증여세ㆍ상속세 탈세를 막기기는 역부족이라는 한계점이 있다”며 “금은 부유층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면서 증여나 상속에 이용하는 재산인 만큼 이를 차단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오른 날보다 내린 날이 많아
이렇게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KRX금시장. 7월 2일 개장 100일을 맞은 이 시장에도 환호와 탄식이 함께 흐른다. 개장에 맞춰 금시장에 발을 담근 기자도 마찬가지다. 금시장이 개장한지 2일 후인 3월 26일, 기자는 증권사에서 금시장 거래계좌를 개설하고 2g의 금을 9만2100원에 구입했다. 나름 역사적인 첫 투자였지만 금가격은 바로 다음날부터 하향곡선을 그렸다. 3월 27일과 28일 각각 520원, 590원이 하락했다. 투자 2일만에 마이너스 2.38%의 손해를 입은 셈이다. 이후에도 금 가격의 하락세는 계속됐고 투자 한달 만에 마이너스 5.32%의 손실을 입었다.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거래량과 거래대금도 계속 감소했다.

추가투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만 그랬던 건 아닌 듯하다. KRX금시장의 거래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3월 24일 개장 이후 68거래일 동안 금시장에서 거래된 금의 총량은 253.9㎏으로 하루 평균 거래량은 3.73㎏에 불과했다. 특히 일평균 평균 거래량을 초과한 거래일은 27일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19일에는 516g이라는 굴욕적인 거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민간대형업체의 하루 평균 거래량인 30~40㎏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실적이다.
인플레이션 오면 회복세 탈 전망
금시장 거래가 부진한 까닭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투자자가 다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원고가 진행되고 있어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관투자자는 참여할 수 있는 펀드 상품이 없어 시장 참여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실질적인 투자자는 개인투자자와 실물사업자만 남는다. 실제로 금시장에서의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50%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 시장에 나선 개인투자자에게 활발한 거래를 기대하긴 힘들다. 거래 횟수가 많지 않고 고액을 투자하지 않는 한 시세차익을 노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금시장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금융당국은 활성화 정책을 꺼내들었다. 먼저 수입금의 관세율을 0% 수준으로 감면했다. 장내에서 거래하는 경우 부가세가 비과세되고,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거래수수료와 보관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실물사업자의 시장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협의 대량 매매제도’도 도입했다. ‘적격 수입금 리스트도’ 추가로 확대하기로 했다. 협의 대량 매매제도는 금을 대량으로 매매할 때 매수자와 매도자의 협의를 통해 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활성화 정책이 금시장을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시장에 참여하는 증권사 관계자는 “다른 금시장을 이용하면 KRX금시장 이용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금을 구할 수 있어 실물사업자의 참여를 기대하긴 힘들다”며 “최근 KRX금시장 금 가격과 국제 금 가격의 차이는 조금씩 축소되고 있지만 금 가격 하락세의 영향으로 거래가 부진하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위험자산선호 현상으로 금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금리인상이 이뤄지고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상승해야 금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금투자 성적표는 마이너스 6.62%. 금활성화 정책이 통한다면 실적을 회복하고 추가투자를 하거나 매도를 할 수도 있다. 금가격이 상승하기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거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져야 한다. 실제로 글로벌 경기 상승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이 예상되고 있어 금가격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것 또한 인플레이션이다. 금투자로 알찬 실적을 거둘 수 있지만 치솟는 물가를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는 역시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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