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백’ 수길, 열도를 사냥하다
‘관백’ 수길, 열도를 사냥하다
  • 이남석 대표
  • 호수 95
  • 승인 2014.06.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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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⑱

천황의 황실인 궁내부는 수길을 종4위 우근위소장에 봉직하고, 황실의 호위를 맡겼다. 수길은 이때부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종2위 대납언을 거친 그는 종1위 관백關白까지 올랐다. 관백이란 벼슬은 천황의 밑에서 모든 업무를 총찰하는 ‘승상대장군丞相大將軍’이라는 직위였다.

▲ 풍신이라는 성을 얻은 수길은 천하를 통일할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직전씨의 집 새 주인은 겨우 2살 되는 유아였다. 수길이 어린 주군을 품에 안고 전각 위에 앉아 유신들의 하례를 받은 다음 유산을 공평하게 제신들에게 갈라줬다. 제신들은 각기 본령으로, 수길은 희로로 돌아갔다.
유신들이 전 주인 신장의 망령을 위안하는 법회를 시야柴野(시바노) 대덕사大德寺(다이토쿠지)에서 거행하자는 통문을 돌렸다. 수길은 이렇게 답했다. “대장군 주인공의 망령을 위안할 법회를 어찌 남의 절을 빌려서 하리요? 새로 큰 서원을 세우고 명장의 손으로 공의 우상을 새겨 앉히고 그 상 앞에서 법회를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래서 경도에 터를 잡아 총견원總見院(소켄인)이라는 사당을 이룩하고 신장의 목상을 앉힌 뒤에 법회 일자를 택해 각처 유신에게 통지했다. 법회 날짜가 임박해 시전승가는 3000기를 인솔하고 그 밖의 유신들도 군위를 차리고 들어오는데 정작 수길이 오지를 않았다. 가뜩이나 수길이 3만기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문이 돌았던 터. 신변에 위협을 느낀 유신들이 법회참석을 그만두고 야반도주를 했다. 3000기를 인솔하고 위풍당당하게 법회에 왔던 시전승가도 마찬가지였다.

수길은 법회날 아침에 경도에 들어와 유주를 품에 안고 총견원으로 왔다. 전 주인 직전신장의 초상 앞에서 법회를 거행하니 3만기의 군용이 정숙해 일월을 희롱하였다. 이후로 신장의 뒷일은 수길이 도맡아 처리했다. 결과적으로 직전신장의 일생 사업이 수길의 앞길을 닦아준 셈이었다. 전 주인의 영령 앞에서 법회 참석까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 시전승가는 수길을 절치 증오하였다. 곧 군사를 일으켜 수길을 치려고 별렀지만 북방에 있던 월전국을 쉽게 가기 어려웠다. 겨울이면 눈 때문에 길이 막히는 까닭이었다. 시전승가가 수길을 치려 한다는 것은 수길도 잘 알고 있었다.

내년 봄이면 승가가 출병할 것을 짐작한 수길은 기선을 빼앗기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동에도 5만 군사를 일으켜 시전승가와 그의 휘하 장수가 지키는 강주의 장빈長浜(나가하마)으로 쳐들어간다. 시전승가의 장수들은 수길을 대적할 수 없었다. 병법이 귀신같다던 시전승가마저도 연전연패하였다. 수길이 승승 진격하자 시전승가는 불맞은 맹호처럼 초라한 신세가 됐다. 승가는 그 처와 함께 자결했다. 승가의 근시들은 주인 부부가 죽은 뒤 200여명의 무사와 함께 불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엄동설한에 적진 정면 돌파

월전 일대를 평정한 수길은 근거지를 오사카大阪으로 정했다. 3년 동안 6만 인부를 사역하게 하고, 28개국 목석을 운반해서 내외성을 쌓으니, 주위가 60리에 달한다. 성내에는 화려한 누각을 지었고, 복판에 천주각을 높이 쌓아 올렸다. 천주각에서 사면을 둘러보면 경도 부근의 복견伏見(후시미)과 조우鳥羽(도바) 지방에서 흘러내리는 정천淀川(요도가와)이 성을 돌아나간다.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오는 돛배는 성밖에 몰려든다.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병풍 치듯 한 건 대판성의 장관이었다. 참으로 난공불락의 성곽이요 사통팔달의 관문 도시였다.

하지만 직전신장의 아들 직전신웅織田信雄(오다 노부카쓰)은 덕천가강을 찾아가 수길의 행동이 냉박함을 호소한다. 신웅을 동정한 가강은 의병을 일으켜 수길의 죄를 성토하는 격문을 천하에 공포하고 견산犬山(이누야마)성을 공락하고 소목小牧(고마키) 산성을 점거하였다. 수길의 선봉은 나가는 대로 싸움에 지고 사방 제후는 직전신웅을 응원했다. 진심으로 바랐다. 제후의 연합군을 대항하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수길은 신웅에게 강화하기를 청하였다. 신웅은 수길이 자신을 낮추고 후한 예물을 바치자 마음이 풀어져 강화를 허락했다. 직전신웅이 수길을 치려고 했던 건 미천한 출신인 그가 제 집안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게 괘씸했기 때문이다.

▲ 풍신수길은 여러 제후를 차례차례 무릎 끓리면서 세력을 넓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후 신웅을 만난 수길은 말에서 내려 배례를 했다. 자기 부친 때 하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직전신웅이 수길에게로 마음을 돌리니 신웅을 이용해 패업을 꿈꾸던 덕천가강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고, 회군해 버렸다. 수길은 가강에게 사자를 보내어 두 사람이 이전보다 더 친절하게 지내자고 말하고, 가강의 아들 하나를 수길의 양자로 달라고 조른다. 가강은 수길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12세 되는 아들을 보냈다. 수길은 그 양자의 이름을 수강秀康(히데야스)이라고 지었다. 수길과 가강 두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즉 아이 성명은 우시수강羽柴秀康(하시바 히데야스)이었다. 각별히 총애하면서 양육하였다.

천황의 황실인 궁내부宮內府는 직전신장이 죽은 뒤 황실호위 업무를 수길에게 맡겼고, 수길은 종4위 우근위소장右近衛少將에 봉직됐다. 이후 차차로 승품이 된 수길은 종2위 대납언代納言을 거쳐 종1위 관백關白까지 올랐다. 관백이란 벼슬은 천황의 밑에서 모든 업무를 총찰하는 ‘승상대장군丞相大將軍’이라는 직위였다. 이뿐만 아니라 황실은 수길의 성을 고쳐 ‘풍신豊臣(도요토미)’이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관백의 자리에 앉은 풍신수길은 조총을 사용하는 기주紀州(기슈)의 근래根來(네고로)씨를 토벌하고, 사국의 장종아부씨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또한 월중越中(엣츄)의 좌좌성정佐佐成政(삿사 나리마사)을 굴복시키고 하였다. 풍신수길은 덕천가강을 경도로 불렀다. 가강은 명에 따라 경도로 올라와 수길을 찾아보는데 관백에게 배알하는 예를 보였다.

경쟁자를 심복으로 만들어

그날 밤에 풍신수길이 미복으로 가강의 숙소에 찾아가 인사 끝에 이렇게 말했다. “미천한 사람인 내가 천하제후에게 존대를 받는 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하자면 이 지위를 갖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다. 귀하는 내 뒤를 거들어 주오.” 가강은 수길의 활달한 도량에 탄복하여 “전하, 전하”를 부르며 심복이 되고 말았다.

 
풍신수길은 덕천가강을 회유하여 굴복시킨 뒤 다시 관팔주와 오우奧羽, 그리고 구주를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구주로 출병하였다. 구주에서는 도진씨의 집이 제일 강하다. 도진의구島津義久(시마즈 요시히사)와 도진의홍島津義弘(시마즈 요시히로) 두 형제였다. 수길의 군사가 좌우로 갈라 흑전효고黑田孝高(구로다 요시타카)는 풍전豊前(부젠)으로, 장종아부원친은 풍후豊後(분고)로 쳐들어 가다가 그중 장종아부원친은 참패를 당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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