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ㆍ이통사 검은고리 “끊으면 싸진다”
제조사ㆍ이통사 검은고리 “끊으면 싸진다”
  • 김건희 기자
  • 호수 95
  • 승인 2014.06.05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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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유통구조 어떻게 풀까

가계통신비 인하가 통신업계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는 올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을 앞두고 있고, 야당은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제도 모두 효과와 한계를 갖고 있다. 얽히고설킨 단말기 유통구조 어떻게 풀어야 할까.

▲ 어떤 제도가 됐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통신요금 인하 이슈는 이명박 정부의 공약에서 시작한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가계통신비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동통신 3사가 기본요금 1000원을 할인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기본료 1000원 할인에 정부가 농락당했다” “정부의 굴욕”이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시 이동통신사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10초 기준으로 요금을 청구했던 휴대전화 요금기준을 초당 청구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동통신사는 수익성이 높은 휴대전화 요금을 할인하는 대신 유선전화나 초고속인터넷전화 등의 상품을 결합한 할인상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혜택을 본 소비자가 있긴 했지만 실질적인 통신요금 인하 효과는 미미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동통신사에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하자 통신사업자들이 통신요금을 인위적으로 인하하기보다는 시장경제 원칙에 맡겨야 한다며 반대논리를 펼쳤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가 미봉책으로 끝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계통신비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박근혜 정부다. 이전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계통신비 인상의 주범으로 통신요금이 아닌 유통구조를 꼽았다는 거다. 제조사가 단말기 출고가를 부풀린 뒤 판매장려금을 지급해 할인판매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것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단통법이 이동통신사를 겨냥한 듯하지만 사실은 제조사를 조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뼈아픈 경험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은 통신요금에서 유통구조로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단통법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째 단말기의 판매제도 개선이다. 단통법 3조에 따르면 이동통신사는 소비자의 가입유형, 요금제, 지역, 나이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통법 4조에 단말기별로 제조사의 출고가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공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예컨대 단말기 출고가가 90만원이고, 이동통신사 보조금이 27만원이라면 제조사 판매장려금이 20만원이고, 소비자 실제 구입 가격 43만원인 사실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단통법의 또 다른 핵심내용은 보조금 사후규제 보완책이다. 정부가 대리점과 판매점의 불법 영업을 적발하면 대리점과 판매점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에도 제재조치를 가한다. 제조사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제재조치는 과징금 부과다. 미래부에 따르면 불법 보조금 지급했을 경우 이동통신사와 제조사는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야 한다. 대리점과 판매점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규모 유통업체는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한편에선 단통법의 한계론을 지적한다. 현재 유통구조를 그대로 두고 일부분만 개선하는 단통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불법 보조금 근절에 초점을 맞춘 단통법으로는 단말기 유통구조를 해결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보조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법 보조금을 지급한 사업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해서 경쟁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역대 정권이 남긴 숙제 ‘가계통신비’

단통법에 부정적인 여론이 언급되는 사이 정치권에선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할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다. 올 2월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단말기 완전 자급제 추진을 예고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소비자가 제조사에서 단말기를 직접 구매하고, 원하는 이동통신사의 요금제에 가입하는 것이 골자다. 종전과 달리 제조사가 휴대전화 단말기를 판매하고, 유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이동통신사는 유통과 판매를 내려놓고 개통 업무만 맡는다.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유통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온 걸까.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 제조사는 단말기 제조만 할 뿐 단말기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은 이동통신사다. 이렇다 보니 새로운 단말기가 출시될 쯤이면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에 단말기의 사양, 가격 등을 공개한다. 이를 토대로 한해 단말기 라인업을 확정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는 새로운 단말기 출시가격, 구입물량, 구매조건, 판매장려금 등을 논의한다”며 “조건이 확정되면 KT와 LG유플러스는 직접 단말기를 구매해 대리점에 공급하고 SK텔레콤은 SK네트웍스를 통해 구매해 대리점에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가 유통망을 구축하고 제고까지 관리하는 까닭에 제조사는 광고와 판매촉진에만 힘쓰면 된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관계가 유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도입돼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팔고, 이동통신사는 요금 상품과 유심(USIM)을 판매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유통구조가 형성된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단말기를 구입한 뒤 원하는 이동통신사에서 단말기를 개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통사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싶다면 약정계약을 맺으면 되고, 제조사로부터 정가에 단말기를 구입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맞는 이동통신사와 요금제를 선택하면 된다.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를 만난다는 점에서 출고가 거품이 사라질 수 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의 또 다른 효과는 단말기 제조업체가 이동통신사의 주문에 따라 단말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단말기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이는 제조사들이 품질, 가격, 유통, 마케팅 등으로 경쟁할 수 있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이동통신사는 단말기 지배력이 약해지지만 대신 얻는 것이 크다. 우선 왜곡된 유통구조의 장본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조금을 지급하느라 쏟아 부었던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이동통신사 본연으로 돌아가 요금 상품과 통신서비스 품질로만 경쟁을 하는 것이다.

왜곡된 유통구조 바로잡아야

그렇다고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동통신 3사를 대체할 새로운 유통망이 없다는 게 한계다. 단말기 유통은 현금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현금창출 능력이 뛰어난 제조사가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도ㆍ소매를 관리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전국 4만여개의 대리점과 판매점이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통망이 무너지면 이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단통법은 소비자의 보조금 차별과 불법 보조금 차별을 근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임에 틀림없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단말기와 유통을 분리하고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본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필수적인 방안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가 됐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단말기 유통구조를 건전하게 개선할 수 있다는 거다.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로잡을 적기는 지금이다. 더 늦으면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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