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진짜 싸졌습니까?”
“스마트폰, 진짜 싸졌습니까?”
  • 김건희 기자
  • 호수 95
  • 승인 2014.06.04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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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출고가 인하 꼼수

제조사의 단말기 출고가 인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40만원까지 가격을 인하했다. 이런 현상은 제조사가 지급하던 판매장려금을 없애는 대신 단말기 출고가를 내린 것과 관련이 있다. 결국 소비자의 실제 구매가는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다. 한편에선 이동통신사 영업정지 기간에 쌓인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조치란 지적이 나온다.

▲ 단말기 출고가가 인하됐더라도 소비자가 지급하는 실제 구매가는 별 차이가 없다. [사진=뉴시스]
2012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동통신업체 3사(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와 제조업체 3사(삼성전자ㆍLG전자ㆍ팬택)가 휴대전화 출고가를 부풀려 판매했다”며 과징금 453억30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을 지급해 휴대전화를 할인판매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60%가 넘는 삼성전자에는 142억80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출고가를 턱없이 부풀렸다는 공정위의 발표 이후 제조사에 비난이 쏟아지자 삼성전자는 2012년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과 시정명령을 취소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올 4월 재판부가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휴대전화 출고가 거품 논란’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됐다. 보조금을 지원받아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입했던 이들은 이 판결을 보고 허탈했을지 모른다. 휴대전화를 할인가격에 구매한 게 아니라서다. 반면 제값을 주고 휴대전화를 구입한 소비자는 기가 막힐 노릇일 게다. 실제 가격에 ‘웃돈’까지 얹어 산 격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한 이유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걸까. 답은 왜곡된 ‘단말기 유통과정’에 있다. 국내 제조사들은 이동통신사에 단말기를 납품하고, 이동통신사가 대리점을 통해 소비자에게 되판다. 소비자가 제조사로부터 직접 단말기를 사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제조사는 눈속임을 할 수 있다. 먼저 출고가를 제멋대로 부풀린 뒤 그만큼을 이통사에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지급한다. 판매점은 단말기를 팔 때마다 제조사의 판매장려금과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지원받는데, 실상은 리베이트다. 일부는 판매점 직원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나머지 일부는 소비자의 단말기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약정계약을 맺고 고가의 요금제에 가입하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소비자는 보조금을 지원받은 덕분에 고가의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단말기 유통구조의 현주소다.

 
최근 제조사가 출시한 단말기 출고가는 얼마일까.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국내 제조사가 출시한 6개 스마트폰의 평균 출고가는 94만8100원이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노트3가 106만7000원으로 가장 높았고, 애플 아이폰5S가 81만4000원으로 가격이 가장 낮았다. 스마트폰 한대 값이 100만원을 웃도는 셈인데, 이는 양문형냉장고나 프리미엄 드럼세탁기의 가격과 맞먹는다. 소비자들은 “보조금을 지원받아도 워낙 단말기 값이 고가여서 이동통신사와 약정계약을 맺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가계통신비 경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 정부가 고가의 스마트폰 출고가를 통신비용 주범으로 지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소비자들이 우려를 표명할 만큼 고가 전략을 내세웠던 제조사들이 최근 단말기 출고가 인하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는 96만1400원이던 갤럭시S3의 출고가를 60만원으로 내렸다. 최초 출고가보다 38%가량 인하했다. 주목할 것은 갤럭시S3의 출고가 인하가 1년 동안 3차에 걸쳐 이뤄졌다는 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 89만원대로 가격을 1차 인하했고, 갤럭시S4 출시를 앞둔 지난해 4월 79만원으로 출고가를 추가로 내렸다. 이런 흐름은 올해 들어 더 뚜렷해지고 있다. 구형 단말기뿐만 아니라 신규 단말기의 출고가를 내리는 것이다. 올 4월 삼성전자는 갤럭시S5를 출시하면서 출고가를 86만6800원으로 책정했다. 앞서 출시한 갤럭시S4의 출고가가 99만4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12만원가량 인하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유지해오던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려놨다”고 평가했다.

“출고가 거품 스스로 인정한 꼴”

이를 의식한 듯 LG전자와 팬택도 단말기 출고가를 인하했다. 전략 스마트폰인 옵티머스G와 베가R3를 각각 99만9900원에서 59만9500원으로 내렸다. LG전자는 보급형 단말기 LG L70까지 출시했다. LG L70은 국내와 해외의 출고가가 비슷한 단말기다. 그동안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가 해외에서는 중저가 라인업을 내세우고, 국내에서는 프리미엄 스마트폰만 출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LG전자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중저가 스마트폰의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조사가 단말기 출고가를 내리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인하주기가 짧아졌고, 업체 간 눈치작전이 치열해졌다는 점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조금(판매장려금) 단속과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제조사들은 이동통신사나 판매점에 판매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단통법을 통해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을 공시할 것을 요구했다. 고심하던 제조사들은 영업기밀이 유출된다는 이유로 판매장려금을 줄이고 단말기 출고가를 낮췄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조사가 판매장려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출고가를 인하한 것은 단통법에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사의 이런 행보엔 정부의 방침에 동참한다는 뜻을 보여줘야 한다는 기류가 흐른다. 제조사들은 “가계통신비를 줄이는데 동참하는 차원에서 단말기 출고가를 내린 것이지 가격 거품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단말기 출고가를 내린 제조사에 비난여론이 쏟아진다. 소비자들은 “단말기 출고가 인하는 제조사들이 실제로 적정 가격보다 값을 부풀려 놓고 할인해 판매하는 것처럼 영업해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까지 제조사가 단말기 가격을 낮춰 파는 것을 보면 애초에 출고가를 더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소비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스마트폰의 가격이 진짜 저렴해진 걸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단말기 출고가의 이전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단말기 출고가는 일반적으로 ‘직접재료비+제조경비+인건비+마진+판매장려금’ 등으로 구성된다. 주목할 것은 판매장려금이다. 제조사는 판매장려금의 규모를 이동통신사와 협의해 결정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A제조사는 신규 스마트폰 출시하기 전 이동통신 3사와 협의를 통해 판매장려금을 20만원으로 책정한다. 단말기 출고가가 70만원이라고 한다면 신규 스마트폰의 최종 출고가는 90만원이다. 이동통신사 판매점은 90만원의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1대씩 판매할 때마다 제조사의 판매장려금(20만원)과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만약 A제조사가 현금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신규 스마트폰의 판매장려금을 5만원으로 책정했다면 단말기 출고가는 75만원이다.

결과적으로 제조사가 판매장려금을 줄이면 출고가는 낮아지고, 판매장려금을 늘리면 출고가는 올라간다. 단말기 출고가가 낮아졌다는 것은 그동안 판매점에 지불한 판매장려금을 축소하고, 출고가를 인하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출시한 단말기 출고가를 인하하는 것은 그만큼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규모가 축소된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구매하는 실제 구매가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다 단말기 출고가 인하는 대부분 구형 단말기이거나 보급형 단말기다. 관건은 구형 단말기의 출고가 인하가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득이 되느냐다. 업계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구형 단말기라고 해도 스마트폰 가격의 탄력성이 줄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소비자가 어디에서든 동일한 가격을 주고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어서다. 그동안 정보의 차이 때문에 스마트폰 가격을 차별적으로 구매해야 했던 행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출고가 인하, 꼼수인가

반면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단말기 출고가를 인하한 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통신 3사가 45일간 영업정지에 들어가는 바람에 악성 재고 위험이 있는 단말기를 처분하기 위한 조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편에선 제조사가 재고품인 단말기를 소진하면서 선심 쓰듯 생색을 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는 단말기 출고가 인하가 제조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한다. 제조사에는 단기적으로 악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전략을 고수하던 제조사들이 20만원대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니 고가의 스마트폰을 출시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90만~100만원대 가격을 책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유통망과의 협상력이 약화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판매장려금이 줄었으니 이동통신사와 협력관계를 강화하거나 협상을 주도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칼날을 겨누고, 소비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이동통신사와의 공조는 약해진다. 제조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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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이란?

제조사가 이동통신사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은 3가지로 구분된다. ▲단말기 출고가와 대리점에게 제조사가 직접 지불하는 장려금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매칭펀드로 구성해 사용하는 판매촉진비용 ▲신제품이 출시될 때 구형 단말기를 판매하기 위해 지불하는 재고보상금이다.판매장려금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제조사의 단말기를 판매하면 제조사가 판매장려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여기엔 착시효과가 있다. 이동통신사는 판매장려금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한 것처럼 여긴다.

판매장려금을 모두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다. 그중 일부 금액은 대리점이나 이동통신사의 수익금으로 활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은 단말기 그레이드(등급)별, 기기별, 시점별, 판매조건별로 다르다”며 “판매장려금의 비중은 유동적이지만 이동통신사에 지급되는 보조금의 10~5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판매촉진비용은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공동 프로모션 비용으로 활용한다. 매칭펀드와 같이 혼합기금을 사전에 설정하고,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객 사은행사나 판촉물, 기타 경품 등의 비용으로 사용한다. 재고보상비용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구형 단말기의 재고를 단기간에 판매할 목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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