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지내고 나니 수길을 사랑하여 십인의 두목으로 올려준다. 십인의 두목도 두목인데 원숭이라는 조소적인 명호는 두목의 대우가 아니라 하여 이름을 중촌등길랑中村藤吉郞(나카무라 도키치로)이라 하였다. 차차로 대우가 올라 주인의 청지기가 되었다.

수길은 틈만 있으면 마을로 뛰어나가 아이들을 모아 장난을 했다. 수길이 아이들을 양편으로 갈라 편싸움을 하는 때면 밭의 곡식물이 짓밟혀 없어지는 날이다. “광명사의 상좌중놈 때문에 마을이 망한다”는 원성이 일어나서 수길은 절에서 쫓겨났다. 수길은 집으로 돌아와 중촌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 노릇을 했다. 12세 되던 해에는 미농美濃국(지금의 기후현 남부)땅의 옹기점에 들어가 그릇 만드는 일을 배우더니 그 뒤에 미장국으로 돌아와서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하지만 주인이 탐욕부리는 걸 보고 ‘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하고 나와 어느 벼슬아치의 집으로 들어가 고용살이를 하였다.
때마침 돌아다니며 굿하는 중들이 들어와 노는 것을 보고는 “에라, 머슴살이 그만두고 굿중패나 따라다니며 강산 구경이나 하여보자”하고 패를 따라나섰다. 5년 동안을 돌아다니며 원숭이 노릇을 흉내 내면 모든 사람이 웃느라 포복절도하였다. 그럭저럭 돌아다니다가 18세가 되던 해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여러 남매를 양육하기에 곤궁이 심하였다.
나갔던 자식이 장성하여 돌아온 것을 반겨서 맞이하나 수길은 빈손으로 돌아와 모친의 걱정만 끼치니 다시금 집을 떠나려 하였다. 그 어머니는 가산을 털어 내다 팔아 영락전(청동화폐) 열냥을 장만해 닷냥은 집에 떼어놓고 닷냥은 아들에게 건네준다. 어머니의 피 묻은 닷냥을 받아들고 집을 나올 때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가 어찌 하면 모친을 위하여 앞길을 개척하나”라고 생각한 수길은 닷냥을 자본 삼아 장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수길은 바늘장사를 시작하였다. 이 지방이 수년간 전쟁을 겪어 교통이 두절된 곳이 많아 바늘 수요가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바늘을 팔아보니 ‘독장수의 헛 구구’다. 며칠이 못 지나서 바늘도 없어지고 돈도 또한 떨어졌다.
낭패를 본 수길은 빈송濱松(하마마쓰)이라는 마을 밖에 앉아 옷의 이를 잡고 있었다. 빈송은 원강遠江(도토미ㆍ시즈오카현 서부)국의 영지다. 그 영주 금천今川(이마가와)씨와 수길의 고향인 미장국 영주 직전織田(오다)씨가 다년간 전쟁을 계속해왔다. 바늘장사를 시작한 수길이 실패를 당했을 무렵 빈송 마을 앞 큰길로 한 관리의 행차가 지나간다. 길가는 행인들이 나막신을 벗고 납작 엎드렸는데 수길은 머리를 들었다. 평민이 칼을 찬 무사를 만나면 땅에 납작 엎드리는 것은 그 시대의 풍속이었다. 그 관리를 수행하는 군사가 칼을 빼어 들고 쫓아와 “이놈, 가자!”하고 수길을 움켜쥐고, 그 관리의 교자 앞으로 나간다.
머슴살이하던 수길의 항명
그 관리는 금천씨의 신하인 송하가병위松下嘉兵衛(마쓰시타 가헤이)라는 무사였다. 병법이 고명하여 영주의 부하들에게 병법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수길을 잡아온 군사들은 관리의 명령만 떨어지면 목을 치려고 기다렸다. 수길은 원숭이 재주를 내어 보였다. 그 관리는 “사람은 어쩌고 원숭이를 잡아왔느냐? 털 없는 원숭이 좀 봐라!” 하는 말로 군사들과 떠들었다. 그 관리는 수길의 형용이 원숭이 같은 것을 이상히 여겨서 “나를 따라 집에 가서 드난(노비)할 터이냐”라고 의향을 물었다. 이는 그 용모가 괴이한 인물을 놀림감으로 집에 두려 함이었다.

갈 곳이 없는 수길은 송하가병위의 집에 따라가 있기를 승낙하였다. 수길은 주인 송하씨가 심심하면 원숭이라고 놀려도 성내지를 않아 환심을 얻었다. 모든 일도 민첩하게 거들어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게 됐다. 송하씨의 집에는 조석으로 병법을 배우러 오는 제자가 많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수길 역시 병법이 훌쩍 늘었다. 주야로 열심히 학습한 까닭이었다. 병법이 훌륭하게 된 뒤에 주인을 하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주인 송하씨는 영락전 300냥을 노잣돈으로 내어준다. 수길은 집으로 돌아와 모친과 동생들에게 병법을 배운 일을 말하였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병법을 배웠거든 우리 영주를 섬기도록 해라. 우리 영주 직전씨는 너하고 선대부터의 인연이 각별하다, 너의 부친이 영주를 섬기다가 전장에서 창을 맞고 절름발이가 됐으니 너는 충신의 자손이다. 그리고 요즈음 직전씨의 영토가 불일듯 늘어나는 판이다.” 그 지방에서 9대나 살아온 직전씨는 부친의 유지를 받아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중이었다. 수길은 그 모친의 권고대로 직전씨를 찾아가 하인 노릇을 하였다. 하인들 중의 우두머리 되는 천야위문淺野衛門(아사노 에몬)이 심부름을 시켜보니 입안이 혀처럼 민첩하기가 짝이 없었다. 천야위문이 주인 직전신장에게 수길을 천거하였다.
신장은 혈기 왕성한 소년장군이다. 무예가 훌륭하고 백전노장 부하들 앞에서 팔뚝을 뽐내며 천하사를 논평하기를 장기판에 훈수하듯 하였다. 그만치 활달한 성품이며 장난질도 좋아하여 시가지로 나가 말을 달리다가 민가의 과일나무를 보면 닥치는 대로 따먹는 것이 버릇으로, 보통 귀공자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수길은 비로소 직전신장을 대하였다. 신장은 수길을 보고 껄껄 웃으며 “그것 참 괴물이로구나. 사람도 저러한 얼굴이 있으니” 하였다. 그 후 주인의 짚신을 신기는 소임을 수길에게 맡겼다.
주인의 청지기 오른 풍신수길

장난치기 좋아하는 주인은 사나운 말을 타고 달리다가 고의로 신짝을 땅에 떨어뜨리고 “원숭아!” 하고 불렀다. 수길은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예!” 하고 발밑에 꿇어앉아 짚신짝을 신긴다.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제비와 같았다. 신장은 “빠르기는 해!” 하고 칭찬한다. 1년을 지내고 나니 수길을 사랑하여 십인의 두목으로 올려준다. 십인의 두목도 두목인데 원숭이라는 조소적인 명호는 두목의 대우가 아니라 하여 이름을 중촌등길랑中村藤吉郞(나카무라 도키치로)이라 하였다. 차차로 대우가 올라 주인의 청지기가 되었다. 등길랑의 착 달라붙는 성질과 영리한 행동이 신장의 눈에 든 까닭이었다. 1년에 쌀 30석의 녹을 받게 되니 모친을 봉양할 뿐만 아니라 송원松原(마쓰바라)씨의 딸에게 장가까지 들었다. 24세가 되던 해에는 주인이 칼을 차는 것을 허락하여 상당한 지위가 있는 무사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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