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1794년 7월 17일 카르멜회 수도원의 16명 수녀들이 공포정치에 맞서 순교한 (교수형당한) 역사적인 실화 ‘콩피엔뉴의 순교(Le martir de Compiegne)’다. 블랑쉬는 어릴 적부터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려왔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하는 블랑쉬의 뜻에 따라 아버지 드 라 포르스 후작은 블랑쉬를 카르멜 수도원에 들어가도록 허락한다. 원장 수녀는 블랑쉬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나 죽음의 공포를 이유로 카르멜회를 선택한 목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블랑쉬가 평안히 수도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쾌활한 성격의 콩스탄스 수녀에게 그녀를 부탁한다. 콩스탄스는 블랑쉬에게 곧 다가올 것 같은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블랑쉬는 크게 놀라 다시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군이 수도원 가까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지병이 심한 원장 수녀는 동료 수녀들에게 다가올 순교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다. 원장 수녀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블랑쉬는 똑같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지만 콩스탄스는 수녀의 순교야말로 하느님을 향한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말한다.
원장 수녀는 죽기 전에 블랑쉬를 마리 수녀에게 부탁한다. 곧 온 나라가 혁명에 휩싸이고 수도원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 혁명군은 ‘수도원이 부패한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부를 축척하고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반혁명의 소굴’이라는 의심을 갖는다. 수도원이 완전히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수도원과 가톨릭교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수녀들은 마리 수녀와 함께 모두가 순교함으로써 희생할 의지를 보인다. 처음엔 굳은 의지를 보이던 블랑쉬는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하녀로 변장한 채 수도원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녀의 집 역시 모두 파괴됐고 아버지 또한 살해당했다. 그 사이 동료 수녀들은 모두 체포돼 교수형을 선고 받는다. 한명씩 단두대로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신앙을 노래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단두대에 올라가던 콩스탄스 수녀는 군중 속에서 나타나는 블랑쉬를 보게 된다. 블랑쉬는 ‘Veni Creator Spiritus(창조주 성신이시여 오소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린 채 자유롭게 신의 보살핌으로 다른 동료 수녀들과 함께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김현정 체칠리아 sny4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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