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짧은 퍼트를 하든, 벙커에 빠졌을 때 가장 어리석은 자는 불안감부터 가지고 샷을 하는 자다. ‘이 퍼트 넣을 수 있을까’ 또는 ‘벙커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마음보다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이 중요하다.
필자의 젊은 시절 대한민국 해병의 슬로건은 ‘안되면 되게 하라’였다. 지금도 자주 만나는 소꿉친구는 대학에 떨어지자 해병에 지원했었다. 기본 훈련이 끝나자마자 해병 가운데에서도 최정예라는 수색대원으로 배치됐다. 제대할 때까지 그야말로 ‘박박’ 기었다. 대학졸업장이 없어 세일즈맨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다. 지금도 그저 그런대로 산다. 그 친구만 만나면 필자는 용기를 얻곤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게 그의 신조다. 그 친구에게 배우는 인생은 ‘희망’이다.

필자는 해병출신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딱 부러지게 “되게 하라”보다는 “안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쪽이다. 그래서 ‘해낸다’가 아니라 ‘해보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장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신제품을 개발했거나, 아이디어가 생겨났을 때 “이 제품은 대박입니다!”며 PT하거나, “내 아이디어는 틀림없이 즉효다!”고 단정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골프도 같다. 주말, 또는 매월 월례 라운드를 손꼽아 기다리는 골프마니아들은 “해 내겠다!”는 발상은 절망이요,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는 희망을 갖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최근 시중에 나도는 골프교습서나 인터넷 골프강의에서 곧잘 ‘3퍼트를 절대 안하는 요령’이라든가 ‘슬라이스 완전 퇴치!’란 자극적인 홍보문구를 본다. 해병수색대원처럼 딱 부러지는 레슨이라면 골프란 종목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주말 골퍼라면 아주 기초적인 스윙 지식만 갖추면 그 다음의 기량 향상은 거의가 마음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생각하는 골프가 중요하다
1.5m 거리의 퍼트가 있을 때 확률은 어떻게 될까. 이때 동반자의 한마디에 성공률은 천지차이가 된다. 컨시드(OK)를 받고 친다면 아마 90% 이상이다. 반대 경우는 30% 이하일 것이다. 컨시드를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의 차이는 최대 혈압차가 40 이상까지 난다는 보고도 있다. 퍼트 어드레스 중 졸도하는 사례도 흔하다. 한 레슨프로의 교습서에는 “퍼트할 때 컨시드를 받았다고 여겨라”는 레슨 대목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얘기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4월 현재 집계된 5피트(약 1.5m) 이하 퍼트 성공률 1위는 대니얼 서머헤이스이다. 54.9%, 즉 두 번에 한번은 2퍼트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린 온이 불안할 경우 아예 그린 앞 벙커로 쏜다’는 최경주는 PGA투어에서도 벙커플레이 최강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벙커에 빠졌을 때 팬들은 너끈히 파 세이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그의 파 성공률(sand-save)은 4월 현재 47.6%다. 프로라면 10m 미만의 어프로치 샷은 거의 핀에 붙이겠으나, 똑같은 거리라도 벙커는 혈압부터 차이가 난다. 짧은 퍼트든, 벙커든 가장 어리석은 자는 ‘이 퍼트 넣을 수 있을까’ 또는 ‘벙커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는 불안감부터 드는 자다. 필패다.
두 번째 바보같은 자세는 ‘꼭 넣어야 한다!’ ‘해낸다!’는 해병식 발상이다. 가장 현명한 주말골퍼는 ‘잘하면 파세이브도 할 수 있을 것이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골프의 중요 기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각하는 골프’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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