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人災, 리더가 화근
세월호는 침몰하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난 지 무려 1시간20여분이 훌쩍 지난 후였다. 그제야 승객들은 공포를 느꼈고, 선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직전까지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방송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참사의 현장에 ‘선장’이 없었다. 리더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을 볼모로 생명을 구걸했다.

세상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비밀은 간단했다. 필립 퍼셀 회장이 ‘위기대응책’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 이후 비상상황에 대비한 플랜B를 꼼꼼하게 만들었다. 비상대피 등 훈련을 수시로 실시했고, 긴급상황지휘본부와 주요 지원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결과, 모건스탠리는 9ㆍ11 테러로 본사를 잃었지만 본업은 계속할 수 있었다. 재앙을 막는 기술이 CEO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을 ‘통곡’ 속으로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1호 탈출’은 선장이라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선장 이모씨는 가장 먼저 탈출행렬에 합류했다. 그는 최초 선박 좌초 신고가 접수된 지 40여분 뒤인 오전 9시30분께 배 밖으로 나와, 오전 9시50분께 해경 경비정에 의해 승객 50여명과 함께 구조됐다. 배의 리더는 선장이다. 선장 이씨가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상사태에 대한 명령 또는 지시를 빠르게 내렸다면 인명피해가 거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씨는 자격 없는 리더였다.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기 시작한 건 4월 16일 오전 8시40분께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승객들의 안전조치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안내방송을 통해 “안심하라” “움직이지 마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배가 완전히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도 선장은 추가지시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쿵’ 소리가 난 후부터 30분 동안 “방안에 가만있어라”는 방송이 일곱 차례나 되풀이됐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나간 건 오전 10시께다. 정황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지 1시간20여분 만에 ‘행동조치’에 대한 지시가 내려진 셈이다. 문제는 구조를 총지휘해야 할 선장이 배를 빠져나간 상태였다는 점이다. 배 안에 남아 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물론 승무원까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앙을 막는 기술, 리더가 발휘해야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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