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 볼모로 목숨을 구걸하다
어린 아이들 볼모로 목숨을 구걸하다
  • 김은경 객원기자
  • 호수 89
  • 승인 2014.04.22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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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人災, 리더가 화근

세월호는 침몰하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난 지 무려 1시간20여분이 훌쩍 지난 후였다. 그제야 승객들은 공포를 느꼈고, 선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직전까지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방송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참사의 현장에 ‘선장’이 없었다. 리더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을 볼모로 생명을 구걸했다.

▲ 세월호 선장 이모씨가 전남 목포해양경찰서에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48분.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 항공기 자살테러 때문이었다. 일부 언론의 초점은 모건스탠리에 쏠렸다. 이곳 50층에 모건스탠리 직원 3500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재무부 채권ㆍ유가증권 등 금융자산도 있었다. 대부분 “모건스탠리는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테러 다음날인 9월 12일 모건스탠리의 각 지점은 정상 운영됐다. 업무 개시 30분 후 모건스탠리 필립 퍼셀 회장 겸 CEO(당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세상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비밀은 간단했다. 필립 퍼셀 회장이 ‘위기대응책’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 이후 비상상황에 대비한 플랜B를 꼼꼼하게 만들었다. 비상대피 등 훈련을 수시로 실시했고, 긴급상황지휘본부와 주요 지원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결과, 모건스탠리는 9ㆍ11 테러로 본사를 잃었지만 본업은 계속할 수 있었다. 재앙을 막는 기술이 CEO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지난해 4월 아이슬란드 화산 대폭발 때의 일이다. 승객 300여 명을 태운 대한항공 KE907편은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행 중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하면서 히스로 공항이 폐쇄된 것이었다. KE907편은 고육지책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했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승객을 런던에 보낼 방법이 쉽지 않았다.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공항 직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이 평소에 훈련시킨 ‘비상매뉴얼’ 대로 일을 처리했다. 발 빠르게 교통수단을 확보하고, 숙소를 마련했다. 도버해협을 건널 선박의 티켓도 재빨리 구했다. 대한항공의 ‘승객 런던 운송 작전’은 무려 15시간 만에 끝났다. 그러나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승객은 없었다. 화산 폭발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승객, 이를테면 2차 피해자도 없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당연히 리더다. 리더는 건전한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냉철한 통찰력으로 감춰진 위기을 꿰뚫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통곡’ 속으로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1호 탈출’은 선장이라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선장 이모씨는 가장 먼저 탈출행렬에 합류했다. 그는 최초 선박 좌초 신고가 접수된 지 40여분 뒤인 오전 9시30분께 배 밖으로 나와, 오전 9시50분께 해경 경비정에 의해 승객 50여명과 함께 구조됐다. 배의 리더는 선장이다. 선장 이씨가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상사태에 대한 명령 또는 지시를 빠르게 내렸다면 인명피해가 거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씨는 자격 없는 리더였다.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기 시작한 건 4월 16일 오전 8시40분께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승객들의 안전조치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안내방송을 통해 “안심하라” “움직이지 마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배가 완전히 기울어 가는 상황에서도 선장은 추가지시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쿵’ 소리가 난 후부터 30분 동안 “방안에 가만있어라”는 방송이 일곱 차례나 되풀이됐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나간 건 오전 10시께다. 정황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지 1시간20여분 만에 ‘행동조치’에 대한 지시가 내려진 셈이다. 문제는 구조를 총지휘해야 할 선장이 배를 빠져나간 상태였다는 점이다. 배 안에 남아 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물론 승무원까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앙을 막는 기술, 리더가 발휘해야

▲ 2009년 1월 US에어웨이 여객기는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했지만 기장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책임감으로 사고를 피했다. [사진=뉴시스]
2009년 1월 15일. US에어웨이 소속 1549편 여객기가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다. 이 여객기의 엔진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지 1분 만에 멈춰버렸다. 설렌버거 기장은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을 과감하게 빠져나와 허드슨강을 따라 남하를 시작했다. ‘긴급상황이기 때문에 강에 착륙하겠다’는 메시지를 승객들에게 계속 전달했다. 이륙 4분이 지난 뒤 이 여객기는 허드슨강 위에 무사히 착륙했다. 승객들은 비행기를 빠져나와 비행기 날개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설렌버거 기장은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이 구조된 후 두 번이나 객실을 둘러봤다. 리더가 재앙을 막은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장 이 씨에겐, 아니 우리에겐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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