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급히 먹으면 체하게 마련인데…”
“밥도 급히 먹으면 체하게 마련인데…”
  • 김정덕 기자
  • 호수 86
  • 승인 2014.03.31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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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기 두리원 에프앤에프 대표

▲ 배영기 대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기준을 제대로 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국토교통부는 일주일도 안 돼 푸드트럭 개조 관련 규제를 푸는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푸드트럭 개조를 합법화해 달라고 주장한 배영기 두리원 에프앤에프 대표로선 이보다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이슈 중 하나가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개혁이다. 논란은 다양했다. “노점은 놔두고 푸드트럭만 합법화하는가” “불량식품 없앤다더니 푸드트럭 키우나” “차량 개조업자만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등 비판적인 주장이 나왔다. 이런 논란은 푸드트럭의 개조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한 자동차 개조업체 두리원 에프앤에프 의 배영기 대표를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마치 형평성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지저분한 불량식품을 합법화하자는 꼰대처럼 비친 거다.

하지만 인천남동공단에 있는 허름한 작업장에서 만난 배영기 대표가 말한 내용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국토교통부가 푸드트럭 개조를 일부 허용하는 입장을 발표하던 3월 25일 배 대표는 되레 “갑자기 시속 100㎞로 달려가고 있는 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 [더스쿠프 그래픽]
✚ 푸드트럭 개조를 법으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한 배경이 뭔가.
“푸드트럭 개조를 무조건 합법화해 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다. 푸드트럭 개조차량의 안전기준, 푸드트럭 영업의 식품위생기준, 영업가능장소의 기준 등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거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데, 불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을 수는 없지 않나. 먹고 살려고 하는 건 죄가 아니다. 정부가 기준을 제시하면 거기에 맞추면 그만이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푸드트럭이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법개조 트럭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복지단체가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밥차나 방송사에서 촬영장에 지원하는 밥차도 일종의 푸드트럭인데, 현행법상 불법이다. 법이 허용하는 푸드트럭은 자동차 제조능력이 있는 업체에서 푸드트럭 용도로 제조해 정식 등록한 차량에 한정된다. 당연히 주문제작인 만큼 합법한 푸드트럭은 그리 많지 않다. 등록 이후 구조변경된 것은 모두 불법이며, 우리가 흔히 보는 푸드트럭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실상이 이런데 법 때문에 개조를 못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배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푸드트럭 개조를 의뢰해 직접 제작해 준 것도 숱하게 많다”고 말했다.

✚ 푸드트럭 개조가 현행법상 불법인데, 공공기관에서도 의뢰를 했다는 건가.
“서울시, 경기도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가 주문을 의뢰했다. 공공업무 목적으로 이런 차량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단속을 해야 하는 공무원도 이런 차량은 공공단속을 못한다. 현 법령에 따르면 지자체가 불법행위에 돈을 대는 셈이다. 그러니 푸드트럭을 양지로 끌어올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합법화보다 기준 마련이 중요

✚ 푸드트럭 개조차량들이 모두 불법이라면 자동차검사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야 맞다. 하지만 검사대행업체에 맡기면 다 통과할 수 있다. 공무원이 재량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웃돈만 얹어주면 가능해진다. 푸드트럭 개조의 합법화는 음성적인 거래를 없애고, 투명한 자동차 검사를 가능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 푸드트럭 개조만 합법화하면 다른 노점과 비교해 형평성이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애초부터 길거리 푸드트럭 합법화를 논의한 게 아니다. 전국 355곳에 이르는 유원시설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한 거다. 하지만 이건 시험무대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푸드트럭 음식은 불량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전국의 유원지에서 푸드트럭이 충분히 깨끗하고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 고정관념이 바뀔 거다. 그러면 길거리 푸드트럭의 기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때는 노점의 기준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거다. 나도 노점을 해봤고, 푸드트럭을 개조하러 오는 이들도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형평성이 어긋나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밟아가는 거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7년 노점을 합법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생계형 빈곤층이냐 탈세상인이냐는 논란, 강제철거 논란 등으로 유야무야됐다. 이를 푸드트럭의 정착을 통해 자연스럽게 논의를 부각시킬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 기준을 만들면 그것을 지키면 된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
“위생과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일 것 같다. 일례로 위생의 경우, 푸드트럭 내에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소형 싱크대와 냉장시설이 있는지, 음식물로 인한 오염을 막는 스테인리스 설비가 있는지 등이다. 푸드트럭 내부에 음식물 때가 끼어 있지는 않은지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매월 한번씩 기준 충족 여부를 검사하면 제도적 힘이 생긴다. 차량은 등록제로, 사업자는 면허제로 묶어 관리할 수 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경고를 주고, 면허를 취소하는 등 페널티를 부가할 수도 있다.”

✚ 오랫동안 푸드트럭 개조를 막던 규제가 규제개혁장관회의 10분 만에 풀렸다는 말이 나온다.
“오해가 있다. 올해 1월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서 이 문제로 문의를 해왔다. 그래서 9년 전 푸드트럭을 개조하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느꼈던 규제들에 대해 얘기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추진단 담당자는 수요가 있는 만큼 기준을 만들어주면 될텐데 왜 이게 불법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관련 규제들을 알아봤다. 그 결과, 식품위생법ㆍ자동차관리법ㆍ도로교통법에 막혀 있다는 걸 알았다. 담당자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약처와 국토교통부 등에 공문을 보내 규제개선 가능성을 검토했다. 10분 만에 내려진 결정이 아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정부는 국민과 소통해야

✚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있은 후 일주일도 안 돼 국토교통부에서 푸드트럭 규제를 푸는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너무 빠르다고 생각지 않나.
“말도 안 되는 규제가 없어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 옆을 보고 가야 한다. 밥을 급히 먹으면 체하지 않겠나. 제대로 검토하지 않으면 애초 목적과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속도를 보면 너무 빠르다. 갑자기 시속 100㎞로 달리는 것 같다. 멀리 내다봐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노점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질서를 만드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우려에도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를 한지 이틀 만에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최소 적재공간을 확보하면 소형트럭을 푸드트럭으로 변경하는 걸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어느 정도 구조 변경을 한 것을 푸드트럭으로 볼 것인지 정의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구조변경부터 허용한 거다. 과세기준도 잡히지 않았다. 배 대표의 우려가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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