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윗선, 사건을 ‘쥐락펴락’
보이지 않는 윗선, 사건을 ‘쥐락펴락’
  • 김정덕 기자
  • 호수 85
  • 승인 2014.03.2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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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사건 왜 질질 늘어지나

▲ 서영교 의원은 “일반 중국인도 아는 위조문서를 두고 위조판정이 잘못됐다고 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해 1월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1년 만에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바뀌었다. 검찰의 증거들이 위조됐다는 판명이 나면서다. 하지만 검찰과 국정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서영교 민주당(법사위) 의원을 만났다.

올 3월 19일. 단 한명의 여당 의원도 참석하지 않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비공개 재판의 녹취파일 하나가 공개됐다. 지난해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검찰의 요구로 열린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 관련 증거보전재판 당시 기록이었다.

파일에는 검찰이 유우성씨가 제시하는 증거의 채택을 막고, 검찰 측 증인인 유가려씨(유우성씨 동생)와의 접촉을 방해하며, 회유를 통해 유가려씨에게 거짓 자백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유가려씨가 간첩혐의로 구속수감된 오빠의 소식을 모른 채 179일간 탈북자 합동신문센터에 갇혀 심문을 받은 내용도 있었다. 검찰과 국정원의 증거조작에 이어 유가려씨의 증언이 강압적인 조사와 회유압박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국정원 조사에서도 유가려씨는 “오빠는 간첩이 아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은 “간첩사건과 증거조작은 별개”라고 선을 그으며, 증거도 없이 공소를 유지하고 있다. 서영교 민주당(법사위) 의원은 “‘윗선’의 입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 이번 사건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일부 언론은 여전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표현을 쓴다. 핵심은 ‘서울시 공무원’이 아니라 검찰과 국정원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증거를 ‘위조’했다는 거다. 따라서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이나 ‘국정원과 검찰의 조직적 간첩조작사건’이라고 정리하는 게 맞다.”

▲ [더스쿠프 그래픽]
✚ 오늘(3월 19일) 법사위에선 어떤 논의를 할 예정이었나.
“지난해 열린 비공개 재판의 녹취기록 요약본을 공개했다. 유우성씨가 사진증거를 보이며 검찰에 반박하는 내용, 그런 증거를 검찰이 막는 과정, 검찰이 유가려씨를 회유해 자백을 받았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간첩조작 사건의 증거가 또 나온 거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에 책임을 물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 의원은 이번 검찰과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해 이번 ‘간첩조작사건’의 국면전환에 일조했다.

✚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의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게 된 배경이 뭔가.
“변호인 측에서 ‘검찰 자료가 이상하다’ ‘유가려씨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거짓자백을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국정감사 때 법무부 장관에게 검토해보라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듣지를 않았다. 결국 유우성씨는 지난해 8월 무죄를 받았고, 민변이 (우리쪽에) 관련 제보를 해줬다. 국회가 지적한 사항을 검찰이 점검했다면 이번 같은 국제적 망신은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다 아는데 검찰은 왜 모르나

✚ 조작 여부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알아봤나.
“보좌관의 부인이 중국인이다. 물어보니 중국은 공증을 해줄 때 우리처럼 ‘공증’이라 적힌 도장을 찍지 않고, 공증문서책자를 따로 발급한다고 하더라.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이라는 검찰의 문서엔 공증 도장이 찍혀 있다.”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검찰과 국정원이 지난해 확보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 두건에 찍힌 관인이 서로 달랐다. 문제의 출입경기록은 중국 허룽시和龍市 공안국이 지난해 9월 26일 발급한 것으로 한 문서에는 관인과 주선양영사관의 공증이, 다른 문서에는 관인만 찍혀 있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두 문서를 입수해 공증이 찍힌 문서는 증거로, 다른 문서는 참고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위조문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서 의원은 “공증문서엔 출입경기록과라고 돼 있지만, 중국엔 출입경기록대대라는 말을 쓴다”고 주장했다. 

✚ 중국이 검찰 측 자료를 ‘위조’라고 한 것에 대해 검찰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다.
“검찰은 중국 측이 중앙정부를 거치지 않고 지방정부를 통해 자료를 받아가서 괘씸죄를 적용했다고 주장하는데 말이 안 된다. 중국인이면 다 아는 위조문서를 두고, 중국이 외교적 항의 차원에서 그런 거라 치부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 증거자료가 조작됐다면 간첩사건도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간첩 정황과 증거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조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증거가 없질 않나. 검찰은 증거도 없이 유씨가 간첩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 [더스쿠프 그래픽]
✚ 검찰은 국정원으로 화살을 돌렸다.
“검찰도 증거조작을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검사가 공소를 유지하려면 증거를 제대로 채택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더구나 지난해 8월 무죄판결이 난 사건이다. 그 이후에도 몰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검찰과 국정원이 한몸이라는 뜻인가.
“정황상 그렇다. 이번에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직원에게 검찰은 ‘모해증거위조죄’라고 하는 형법을 적용했다. 잘못됐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으니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맞다.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 검찰은 증거도 없이 무죄판결이 난 1심 자료만을 추려서라도 결심까지 간다는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의 정황을 살펴보면 일개 검사와 국정원 직원이 증거를 조작하며 사건을 끌고 가긴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윗선’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윗선, 가장 높게 보면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국정원장 등이 이번 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또 다른 윗선의 눈치를 보는 거다.”

✚ 청와대가 나서면 금방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사건을 덮으려는 것 같다. 국정원이 정치중립성을 버리고 대선 기간에 댓글을 단 것도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냥 덮어 버린 게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오니까 무시하고 가는 거다. 하지만 이번은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사건 덮이지 않도록 특검해야

✚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어떤가.
“특검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 내부 수사로는 진상을 밝힐 수 없다. 이번을 계기로 국정원이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검찰 개혁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 검찰은 여전히 간첩사건과 조작사건을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국정원을 없애는 건 아니고, 남겨둬야 한다는 건가.
“국정원은 순기능을 갖고 있다. 산업스파이를 색출한다든지 남북대치 상황에서 북한의 동향을 살피는 일 등이다. 지금의 국정원은 김정일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김정은이 뭘 하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대선기간에 댓글이나 쓰고 있다. 이걸 바로 잡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영교 의원은 “국정원과 검찰에 항의방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입을 닫고 있으면 계속 위상만 떨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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