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다. 며칠전 경남 통도사에서 봄을 알리는 홍매화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간에게 봄은 소생,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봄소식은 이미 남해에서 시작됐지만, 수도권의 봄은 꽃샘추위가 끝난 이번 주에야 비로소 꿈틀대는 것 같다. 지난주 서울 근교에서 올해 첫 라운드를 했을 때 페어웨이에는 파란 색깔이 드문드문 감지됐다. 확실히 소생이 시작됐다는 징표다. 그러나 골퍼들에게 봄은 엔돌핀이 솟구치는 등 희망적이거나 관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실망과 좌절, 분노를 체험하는 경우가 많은 게 골퍼의 봄이다.
시즌을 염두에 두고 겨울철 기간 동안 스윙 연구 연습을 해왔거나, 체력보강 등 노력이 없었던 사람은 골퍼가 아니어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시즌이 시작하는 요즘 골퍼들이 갖는 가장 큰 착각은 “시즌 대비를 단단히 했으니 분명히 잘 맞을 것이다”는 기대다. 그러나 실제는 분명히 잘 맞지 않는다. 벤 호간은 “(골프 연습을) 3일을 쉬면 세상이 다 안다”고 했다. 우리나라 지역 특성상 골퍼는 보통 3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실전 라운드를 쉰다.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어도 전투경험이 없으면 오합지졸이나 다름 없는 것처럼 골프는 훈련이 잘됐다고 출전 첫날부터 최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에 찬 시즌 첫 라운드
대개의 경우 시즌 초반의 스윙은 연중 가장 빠르고, 모든 부위에 힘이 많이 들어간 파워 샷을 구사한다. 가장 느리고 부드러워지는 스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즌 막바지다. 주말골퍼가 매년 겪어야 하는 운명적인 사이클이다. 경륜이 짧은 골퍼일수록 시즌 초에 느끼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은 반비례한다. 시즌 시작 당시 골퍼는 내심 생애 최고의 샷과 스코어를 기대한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나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몇 홀도 못가 세계적 프로골퍼가 순식간에 무너져 혼수상태의 샷을 남발하는 것처럼 겨우내 훈련했던 스윙이 졸지에 망각증에 걸린 듯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다 라운드를 마치게 된다.
목욕탕 또는 귀가 중에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왜 이렇게 된거야? 바로 이게 골퍼들이 맞는 잔인한 봄이다. 아마도 요즘 시즌 첫 라운드를 마친 많은 골퍼가 이런 감정에 북받칠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없는 골프에 순간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 잔인한 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단 두세 라운드면 한겨울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를 보며 생명의 소생을 확신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희망의 꽃이 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게 또한 골프다.
찬찬히 복기해 보시라. ‘내 스윙이 너무 빠르지 않았는가’ ‘어프로치 샷 때의 뒤땅은 혹시 연습 때 매트와 이미 물러진 부드러운 땅과의 차이점을 순간 잊었던 건 아닌가’ ‘몇 개월 새에 변화된 나의 신체 부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활용했는가’ 등이다. 필자의 시즌 스타트 라운드 경우도 위와 다르지 않게 실망이 컸다. 하지만 수십 년째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나 배신감 보다는 반성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스윙 좋아져
필자의 경우 골프의 봄은 4월 봄 철쭉이 필 때야 비로소 시작되곤 했다. 다만 올해는 물론이고 매년 반복되고 있는 아쉬움은 왜 시즌 스타트 때 ‘마인드컨트롤’과 ‘생각하는 골프’에 충실하지 못했을까라는 점이었다. 아쉬울 뿐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후회한다 해도 다음해에 절대 고쳐질 리가 없다. 사계절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한 인간 주제에 자연의 섭리를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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