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업체, 폭발물질 취급 사실도 몰라”
“도급업체, 폭발물질 취급 사실도 몰라”
  • 김건희ㆍ박병표 기자
  • 호수 81
  • 승인 2014.02.2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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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PSM보고서 228쪽 살펴보니…

국내 26곳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평가(약칭 PSM평가)’ 보고서 228쪽을 정밀분석한 결과, 1068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내용은 심각했다. PSM평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자신들이 폭발성 물질을 취급하는 것조차 모르는 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수두룩했다.

▲ 정부의 공정안전관리제도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68건.’ 국내 26개 화력발전소가 정부로부터 받은 지적 건수다. 더스쿠프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의뢰해 입수한 26개 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평가(이하 PSM평가)’를 분석한 결과, 14개 항목에서 1068건의 지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목별로 평균 76.28건의 지적을 받은 셈이다.

PSM 평가항목은 ▲안전경영자 근로자참여 ▲공정안전자료 ▲공정위험성평가 ▲안전운전지침과 절차 ▲설비의 점검ㆍ검사ㆍ보수계획, 유지계획 및 지침 ▲안전작업허가 및 절차 ▲도급업체 안전관리 ▲공정운전에 대한 교육ㆍ훈련 ▲가동전 점검지침 ▲변경요소 관리계획 ▲자체감사 ▲공정사고 조사지침 ▲비상조치계획 ▲현장확인 등 총 14개다. 각 사업장은 평가항목에 대한 공정안전관리 보고서(이하 PSM보고서)를 직접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는 이 보고서의 이행상태를 평가한다. 이게 PSM평가다.

“현장근로자, PSM이 뭐야?”

PSM 평가결과, 지적사항이 가장 많은 항목은 ‘안전경영과 근로자 참여’였다. 공장장부터 도급업체 작업자까지 발전소의 관계자를 면담해 평가하는 이 항목의 지적사항은 406건에 달했다. ‘안전작업허가 및 절차’ 항목은 128건의 지적을 받았다. 발전소에서 취급하는 물질과 설비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하는 ‘공정위험성평가’ 항목에선 101건의 지적이 나왔다. 현장에서 제대로 공정안전시스템이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현장평가’는 99건,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설비의 자료를 점검하는 ‘공정안전자료’는 89건, 발전소의 공정과 설비, 화학물질에 대한 운전지침과 절차를 평가하는 ‘안전운전지침과 절차’의 지적사항은 87건이었다.

발전소의 공정ㆍ설비ㆍ화학물질 등 변경사항을 기록ㆍ관리하는 ‘변경요소관리계획’은 66건, 발전소의 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계획과 비상대책을 강구하는 ‘비상조치계획’에선 52건의 지적이 나왔다. ‘도급업체안전관리’와 ‘가동전점검지침’ 항목에선 각각 39건, 1건의 지적을 받았다.

▲ [더스쿠프 그래픽]
▲ [더스쿠프 그래픽]
그렇다면 26개 화력발전소는 어떤 문제를 지적받았을까. 무엇보다 발전소를 책임지는 관리자부터 현장근로자까지 PSM보고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PSM보고서는 공정안전관리제도의 근간이다. 사업장이 PSM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으면 이행상태평가(PSM평가) 역시 별 의미가 없다. 현장감독자와 근로자들이 PSM보고서를 모른다는 건 ‘정부의 공정안전관리제도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실제로 현장 근로자들은 PSM보고서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설사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PSM보고서에 실려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일부 근로자는 본인이 담당하는 시설의 위험성조차 모르고 있었다.

공정위험성 평가를 할 때 정기적으로 하지 않고, 전문인력이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위험성 평가를 했지만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요인을 전혀 도출하지 않은 발전소도 많았다. 심지어 ‘위험성 평가내용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거나 위험성 평가 후 안전조치를 단 하나만 기재해 놓는’ 발전소까지 있었다. 당연히 PSM평가 결과를 통해 도출된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현장에서 수정하거나 이행하지 않는 경우는 많았다. 이는 정부의 공정안전관리제도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설비ㆍ장비ㆍ화학물질의 자료관리도 부실했다. 특히 사용물질의 유해위험성, 누출예방조치, 보호구착용법, 노출 시 조치요령 등이 PSM보고서에 누락된 경우가 많았다. 비상상황에 대한 대책도 미흡했다. 대부분의 발전소는 폭발사고 시 행동요령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 비상상황에 대한 정보를 도급ㆍ협력업체와 공유하지 않는 발전소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일부 도급ㆍ협력업체 근로자들은 발전소에서 취급하는 독성ㆍ인화성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런 사례도 있었다. A발전소는 밀폐공간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유증기 질식위험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환기시설만 설치했다. 유증기는 기름이 타면서 생기는 연기로,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는 근로자에게 안전장비를 전혀 제공하지 않은 건 발전소의 안전의식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도급업체 인권침해 규정까지 나와

이뿐만이 아니다. B발전소는 폭발성 물질인 에탄올과 에틸렌글리콜의 혼합물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도급업체 근로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C발전소는 도급업체의 재해발생통계를 매월 파악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재해경위ㆍ원인은 확인하지 않았고, 사고방지대책 또한 수립하지 않았다. 이 발전소는 ‘도급업체 근로자에게 발전소 내 화재ㆍ폭발 위험구역이나 폭발사고시 피해예상 범위 등을 정리해 자료로 만들어 제공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이 부실한 경우도 많았다. D발전소의 협력업체 인원은 500명에 달했지만 현장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위험장소나 주지사항 등을 교육자료로 만들어 전달하거나 교육하지 않았다.

도급업체 근로자의 인권침해 정황도 있었다. E발전소는 도급업체 관련 규정에 ‘채용자의 건강진단 후 질병자인 경우 취업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넣었다가 ‘삭제 또는 개정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PSM 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F발전소는 ‘안전관리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안전인력을 보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김건희ㆍ박병표 기자 kkh4792@thescoop.co.kr

▲ [더스쿠프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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