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후폭풍

20여년 만에 통상임금의 정의가 잡혔다. 대법원은 ‘정기적ㆍ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당연히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감당해야 할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솟구칠 가능성이 커서다. 통상임금 판결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봤다.
대법원의 첫째 결론이다. “정기적ㆍ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둘째 결론이다.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생일축하금, 휴가비, 김장보너스 등의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 근로자 296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ㆍ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며 명칭이나 지급주기 등 형식적 기준에 의해 판단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함에 따라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인 160여건의 관련 소송도 유사한 판결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통상임금은 법률상 정의가 없었다. 1982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정의 규정이 도입됐을 때 현장에서는 산정 방식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고 정부는 1988년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만들었다. 행정지침은 1임금지급기(1개월)를 초과하거나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근로자에게 생활보조적ㆍ복리후생적으로 지급하는 통근수당ㆍ차량유지비ㆍ가족수당ㆍ급식비ㆍ교육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행정지침은 현장에서는 이미 사문화됐고 법원 판결도 근로자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유지돼 왔다. 노동계가 ‘행정지침을 변경하지 않아 불필요한 쟁송비용과 시간이 허비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재계는 이번 판결에 울상을 짓고 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번 판결로 당장 1년간 13조7509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대법 판결로 통상임금 정의 잡혀
경총은 “3년치 소급분과 퇴직금 누적액을 합쳐 29조6800억원, 매년 발생하는 통상임금 연동수당 8조8600억원 등 총 38조5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연간 40여만개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금액이다. 경총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기업이 떠안아야 할 추가비용이 막대하다”며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도 논평자료를 통해 “통상임금 산정범위 관련 대법원의 판결은 중견기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상당한 추가 임금을 부담하게 돼 중견기업계에서는 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추가 부담액은 자금유동성을 악화시켜 심각한 경영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며 “통상임금 산정범위 확대는 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인건비 부담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는 등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판결 결과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걱정이 앞선다”며 “수많은 기업은 심화되는 노사갈등과 임금청구소송에 휘말려 더 큰 경영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가 올해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 중소기업 51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가 “경영에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의 잡았지만 과제는 수두룩
재계에서 우려하는 더 큰 문제는 이번 판결이 외국기업의 한국 투자 기피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GM, 르노삼성, 대우타타상용차 등 소송을 진행 중인 주한 외국계 기업들은 “본사와 논의해 내년 한국 투자ㆍ생산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애커슨 제너럴모터스 회장은 지난 5월 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줬으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꼭 해결하겠다”고 화답했다. 대법원 판결이 사안별로 달라 개별 사업장마다 통상임금 산정 범위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연쇄적인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상여금은 각 회사마다 지급기준과 조건 등이 다르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회사별로 개별적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노사간 대립이 격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멍들게 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지불을 초래한다. 수십년 동안 정의조차 잡지 못했던 통상임금. 이번에 정의는 확실하게 규정했지만 풀어야 할 고리는 아직 많다.
김은경 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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