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 유령회사 차리고 알짜기업 M&A 시도
PC방에 유령회사 차리고 알짜기업 M&A 시도
  • 김정덕 기자
  • 호수 1
  • 승인 2012.07.09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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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확인] 참치명가 사조, 편법 M&A 꼬리 잡혔다

참치명가 사조그룹이 사실상 유령회사를 차리고 알짜 중소기업을 적대적 M&A(인수·합병)하려 했던 것으로 단독 확인됐다. 경비·청소용역 업체라던 그 유령회사는 폐업 처리된 PC방이었다.

 
“부도덕한 재벌 기업의 횡포를 막아 달라. 살고 싶은 중소기업의 산소호흡기를 떼려는 사조그룹을 막아 달라.”
올 6월 26일 오전 11시경, 서울 청계광장 일민미술관 앞 분위기가 술렁였다. 한 여인이 ‘대기업 사조의 횡포’를 규탄하는 호소문을 낭독한 뒤 곧바로 삭발을 했기 때문이다. 삭발을 한 여인은 화인코리아 최선 사장. 그는 이튿날 사조그룹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며 ‘1인 철야시위’에 돌입했다.

화인코리아는 삼계와 오리를 가공·판매하는 전문식품기업이다. 1965년 금성축산이라는 이름으로 축산업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오리사업을 시작했다. 1992년 최초로 삼계탕을 일본에 수출한 후 외국 각지로 판로를 넓혔다. 1994년 화인코리아로 상호를 변경한 후 삼계·오리 가공·판매 수출 분야에서 줄곧 1위를 달렸다. 2003년까지 연평균 40% 성장하며 연매출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화인코리아는 지금도 비슷한 매출액을 유지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하지만 2003년 조류인플루엔자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오리·닭 음식을 기피했고, 그 결과 매출이 급감했다. 2002년 1360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늘어난 수출을 감당하기 위해 단행한 35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가 당장 문제를 일으켰다.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2004년 화인코리아는 결국 화의를 신청했다. 부채를 정상적으로 갚는 조건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이 수그러들면서 부채 상환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매출도 안정화됐다. 2008년까지 화의인가 당시 제시했던 변제계획보다 많은 금액을 상환했을 정도다.

그러나 또 다시 일이 터졌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조류인플루엔자가 지속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터졌다. 시장·금융·수출이 마비상태가 됐다. 화인코리아는 다시 회생을 신청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상황은 2004년 첫 화의신청 때보다 나빴다. 회생 절차는 부결됐다.

사조 “도와주겠다” 먼저 접근

여기까진 여느 중소기업의 (회생)절차와 비슷하다. 제 아무리 탄탄한 중소기업이라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외부변수에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화인코리아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006~2008년 연평균 매출액은 900억원을 유지했다. 화의인가만 되면 계획대로 부채를 갚을 여력이 있었다. 사실 화인코리아가 화의에 실패한 건 경영사정 때문이 아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게 결정타였다. 최 사장이 삭발까지 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화인코리아는 2003년까지 연평균 40% 성장하며 연매출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지금도 비슷한 매출액을 유지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당시 위기에 처한 화인코리아를 돕겠다고 찾아온 대기업이 있었다. 참치명가 사조그룹이었다. 지난해 1월 사조 주진우 회장은 화인코리아의 담보채권을 매입해 자금압박을 풀어주고, 화의인가에 동의하겠다며 최선 사장에게 접근했다. 일정하게 사조의 사료를 사용하는 조건이었지만 최 사장으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실제로 사조는 그해 2월 계열사(사조바이오피드)를 통해 화의인가에 반대했던 동양종금의 채권을 매입했고, 회생인가 동의의향서에 날인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무서운 꼼수가 숨어있을지 최 사장은 몰랐다. 사조는 겉으로는 화의인가에 동의하는 척하면서 화인코리아의 채권을 몰래 사들이기 시작했다.

현행법상 기업이 화의인가를 받으려면 담보 채권자들로부터 75%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조는 2011년 1월부터 계열사를 통해 화인코리아 채권을 매입했다. 하지만 사조는 화의인가에 동의하던 우호적인 채권까지 건드렸다. 그래도 최 사장은 사조가 화의에 동의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다 ‘애드원플러스’라는 낯선 회사가 화의인가에 긍정적이던 농협중앙회 담보채권을 대량 구매하면서 최 사장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애드원플러스가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더구나 애드원플러스의 채권 매입 금액을 지원한 곳은 사조그룹이었다. 낮은 이자로 대여하는 방식이었다.

최 사장은 적대적 M&A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번쩍 났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사조는 본색을 드러내며 2011년 1~7월까지 총 73.5%(현재는 66.6%)의 담보채권을 매입했다. 표면적인 사조그룹 계열사(사조대림·사조바이오피드·사조인티그레이션)가 18.3%, 애드원플러스는 55.2%였다.

사조그룹측은 주요 채권자가 된 애드원플러스를 앞세워 “채권자의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며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에 화인코리아를 신속히 파산시켜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업장도 경매에 올렸다. 화의인가는커녕 회사를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당시 사조는 종합식품기업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해표(2004년)·대림수산(2006년)·오양수산(2007년)·남부햄(2010년)·옹가네(2010년)를 잇따라 인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계·오리 수출 1위의 가금류업체 화인코리아의 파산은 사조로선 기회였다. 알짜기업을 헐값에 살 수 있어서다. 화인코리아의 채권을 대량 매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편법 도피처로 활용된 유령회사


사조측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위장계열사인 애드원플러스를 세워 중소기업을 적대적 M&A하려 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도 “사업 확장과 관련된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손자(孫子)회사”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애드원플러스의 임원진에는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의 아들과 계열사 대표 등이 올라 있다. 주장대로라면 애드원플러스가 정상적인 기업이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사실일까.

▲ 사조의 위장계열사로 알려진 애드원플러스는 없었고, 2011년 3월까지 영업하다 폐업한 PC방 간판만 있었다.
애드원플러스의 주소지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사조시스템즈 명의의 5층짜리 사조로하이빌딩에 입주해 있다. 여기까진 손자회사가 맞는 듯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애드원플러스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입주자들은 “그런 회사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애드원플러스라는 회사의 실체를 알고 있는 이는 유일하게 건물을 관리하는 관계자뿐이었다. 그는 “애드원플러스가 3층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3층에도 애드원플러스는 없었다.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당구장뿐이었다. 반대편에 PC방 간판이 붙어 있었지만 개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부는 PC방으로 사용된 그대로였다. 사무실이 있었던 흔적은 없었다. 올해 7~8월 중에는 이곳으로 다른 PC방 사업자가 들어올 예정이다. 관할 구청에 확인한 결과 PC방은 2008년부터 2011년 3월까지 영업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애원플러스의 등기상 주소가 이 PC방과 같다는 점이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애드원플러스는 2011년 1월 이 PC방 자리에 입주했다. 공교롭게도 화인코리아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애드원플러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유령회사였던 셈이다. 이 사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결과와도 일치한다.

지난해 4월 최 사장은 사조그룹이 애드원플러스에 자금을 댄 것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부당 내부거래 등에 관한 조사를 요청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 내부거래나 불법 대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대신 최 사장 측에 의미 있는 답변을 전했다.

“자본금 1억5000만원에 설립한 애드원플러스는 2010년 매출액이 1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휴면상태다. 사조그룹이 애드원플러스에 출자한 대금은 화인코리아 채권 매입에 전액 사용됐다. 애드원플러스는 (사조그룹에) 명의를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

애드원플러스가 사조의 지원을 받아 매입한 채권 총액은 약 185억원이다.

▲ 최선 사장은 부정한 M&A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조그룹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애드원플러스의 유령회사 의혹에 대해 “현재 법적 분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수법은 M&A 과정 중 종종 일어난다. 정상적인 기업이 M&A를 하면 각종 수수료와 양도세·취득세 등 많은 비용이 들어서다. 일종의 편법이다. 최 사장은 “사조처럼 큰 기업에서 세금 몇 푼 아끼려고 편법을 쓰는 것도 화나는데, 그걸 이용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을 적대적 M&A 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 사장이 경영을 제쳐두고 사조그룹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사실상 유령회사를 세워 화인코리아를 M&A 하려 했던 사조그룹은 말이 없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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