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관리 못하면 오너도 못 배긴다
CEO 관리 못하면 오너도 못 배긴다
  • 김건희 기자
  • 호수 63
  • 승인 2013.10.16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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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설씨 시대 막 내리나

대한전선의 오너 3세인 설윤석 사장이 자진해서 물러났다. 재무위기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대한전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건 전문경영인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모럴 해저드에 있었다. CEO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오너라도 물러날 수 있다는 걸 대한전선이 보여주고 있다.

▲ 대한전선의 오너 3세인 설윤석 사장이 자진해서 경영권을 포기했다. 재무위기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내년부터는 재무구조 개선 효과와 해외 수주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전선명가名家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 지난해 11월, 설윤석 대한전선 사장이 유상증자를 앞두고 한 말이다.

시장은 설윤석 사장의 발언에 기대감을 보였다. 재무구조 개선작업도 제법 순조로웠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말 3500억원대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차입금 수준을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줄였다. 전선사업 성과도 괜찮았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호조를 보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브루나이에서 총 1400만 달러 규모의 산업전선과 초고압케이블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재무위기에 가리긴 했지만 영업이익 부분에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CEO의 무리한 사업 확대가 毒

대한전선은 지난해 3월 매출액 4983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으로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분기(86억원) 대비 3배 넘게 늘어난 수치였다.

이 때문인지 33살의 젊은 총수인 설윤석 사장의 얼굴엔 웃음기가 감돌았다. 재무위기 개선작업이 지속된다면 전선사업에서 터닝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불과 1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한 이는 없었다. 올 10월 7일 설윤석 사장은 자진해서 경영권을 포기했다.
설윤석 사장이 사퇴한 이유는 대한전선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전선이 2008년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재무구조 개선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1955년 설립 이후 54년 동안 적자 한번 내지 않았던 국내 최고 대한전선이 흔들린 이유는 뭘까.

대한전선은 1955년 선대회장인 설경동 창업주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전산회사다. 1950년대 삼성•LG•현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설경동 선대회장은 대한전선을 3남인 설원량 회장에게 물려줬다. 설원량 회장은 대한전선을 국내 굴지 전선명가로 키웠다.

불운은 비보悲報와 함께 날아왔다. 2004년 3월 18일 설원량 회장이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향년 63세.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설원량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대한전선은 위기에 내몰렸다. 설 회장이 후계자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돌연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3세 체제를 구축하든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주든 설원량 회장의 판단이 필요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설원량 회장은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당시 장남인 설윤석 대한전선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고, 차남 설윤성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와튼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누구도 당장 회사를 이끌 상황이 아니었다.

대한선전은 전문경영인체제를 결정했다. 2002년 대한전선 대표이사로 선임된 임종욱 사장이 계속해서 회사경영을 맡았다. 임종욱 사장은 설원량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설윤석 사장 역시 미국유학을 포기하고 2004년 대한전선 기획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 회사 창립 59년 만에 대한전선과 창업주 설씨 가문의 인연은 막을 내렸다.
대한전선은 임종욱 사장 체제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전선사업의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임종욱 사장은 설원량 회장 생전에 인수ㆍ합병(M&A)한 쌍방울과 무주리조트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선인상가•이탈리아 프리즈미안ㆍ남광토건 등을 잇따라 M&A했다. 남부터미널 부지까지 매입했다. 대한전선이 2008년까지 M&A로 투자한 금액은 약 2조원에 달했다.

그 사이 대한전선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설원량 회장이 타개한 이듬해(2005)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1759억원, 642억원 줄어든 1조5873억원, 211억원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가 터진 이후엔 경영사정이 더 악화됐다. 부동산과 증권 등에 투자해 몸집을 불렸던 대한전선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지분법적용투자주식(지분법) 손실규모가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대한전선은 2009년 277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차입액은 2조5000억원에 달했다. 54년간 흑자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년 전만 해도 700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던 전선명가의 굴욕이었다.

세간에 입에 오르내린 일도 있었다. 임종욱 사장의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진 것이다. 2008~2009년 사이 4차례에 걸쳐 약 497억원의 손해를 회사에 입힌 혐의가 인정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회사를 구하고자 오너가 나섰다. 설윤석 사장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었다. 곧바로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대한TSㆍ한국렌탈ㆍ트라이브랜즈ㆍ노벨리스코리아 등 지분을 매각해 1조원가량 유동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제값을 받지 못했고, 대부분 자산 매각이어서 재무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설씨家, 이대로 대한전선과 헤어지나

급기야 설윤석 사장이 지난해 배수진을 쳤다. 최대주주 자리를 걸고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대한전선의 최대주주는 대한시스템에서 대한광통신으로 변경됐다. 대한광통신이 최대주주로 보유한 대한전선의 지분은 11.4%다. 대한시스템즈와 오너가의 지분율은 7%대로 줄었다. 회사 설립 이래 최대주주 자리가 바뀐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얘기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대한전선의 올 상반기 부채비율은 8328.6%(연결기준). 차입금 의존도는 70.6%, 자본잠식은 84.0%에 달했다. 시장은 연말이면 대한전선이 완전자본잠식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는 설윤석 사장의 사퇴를 대한전선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설씨 가문이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느냐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적다. 설윤석 사장이 보유한 대한전선을 비롯한 관계자 지분이 모두 채권단의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설윤석 사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진 10월 7일, 채권단은 대한전선에 약 6700억원 규모로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대한전선은 지금과 같이 전문경영인 손관호 회장과 강희전 사장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관호 회장은 2004년 SK건설 대표를 역임했다. 2010년 대한전선으로 옮겨 전문경영인으로서 대표직을 맡고 있다. 강희전 사장은 1982년 대한전선에 입사해 국내 처음으로 국산 광케이블 시제품을 만든 인물이다. 2010년 대한전선 대표에 올랐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향후 재무구조 개선작업과 구조조정 등 경영사안은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오너 3세인 설윤석 사장의 경영권 포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업주인 오너십이라도 전문경영인을 관리하지 못하면 회사의 존속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총수와 전문경영인이 견제와 조화를 이룰 때 회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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