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우치지 않는 사람의 죄는 용서할 수가 없다.”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의 명언이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예언자인 단테는 불멸의 거작 ‘신곡’을 남겼다. 중세의 정신을 통합한 문예부흥의 선구자였다.
그의 말처럼 자기 성찰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개인•기업•국가 모두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는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성은 상대방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을 위한 긍정적인 행동이다. 사실 반성은 용기고, 능력이며, 창조행위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반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일본은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신들의 범죄인 침략행위를 대대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쓰라린 과거사를 덮고 있는 것이다. 떼 지어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고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어떤가. 패전 후 폐허 위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동•서독의 통일도 달성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흔들리는 유럽연합(EU)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의 이런 성과는 철저히 뉘우쳤고 용서받았기에 가능했다.
서독 건국의 아버지인 아데나워 총리는 나치부역자들을 강력하게 청산했다. 그래서 깨끗하고 새롭고 부강한 국가발전의 토대를 완수했다. 4대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구사회주의 국가들과 화해와 협력관계를 추진했고, 나치의 폭정에 희생된 이들 앞에서 용서를 빌었다. 1970년 12월 9일 독일 대다수 언론은 이런 내용을 실었다. “무릎을 꿇어야 할 사람들 전체를 대신해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유대인의 희생 장소의 대명사인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여도 하지 않았고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될 인물이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
이 행위는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됐다. 그는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번엔 반대로 점령당했던 국가의 예를 들어보겠다. 반역자를 강력히 처단하고 매장한 프랑스의 사례다. 나치에 의해 점령됐던 프랑스도 나치협력자들을 철저히 응징했다. 프랑스의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의 강력한 의지로 반역자들을 광범위하게 숙청했다. 프랑스의 나치 점령기간은 4년에 불과했지만 숙청작업은 상당히 강력했다. 일본 강점기 시절을 35년이나 겪은 한국이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언론인 출신인 주섭일씨의 저서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한국판 나치 협력자’라고 말할 수 있는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것이다. 드골은 배반자들을 ‘외세와 내통한 이적죄’와 ‘간첩죄’로 가혹하게 심판하고 처벌했다. 그리고 반나치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던 애국시민들만으로 새로운 주체세력을 형성했다. 드골은 이념문제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좌파든 우파든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세력을 총체적으로 통합했다.

한국에선 반성이 없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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