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웃나라 중국에도 여자 황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측천무후則天武后라는 여걸이 바로 그다. 당 태종은 절세의 미모를 뽐내는 그녀를 겨우 14살 때 궁중으로 불러들여서 측실側室로 삼았다.
2대 걸쳐 황후 오른 측천무후
하지만 당 태종은 그녀가 겨우 성생활이 가능할 만큼 성장했을 때 숨을 거뒀다. 상복을 입은 그녀는 머리를 깎고 불문에 출가해 조용하게 살았는데, 태종의 아들 고종高宗이 이 미모의 의붓어머니를 절로 찾아가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새롭게 가꿔서 궁궐로 데려와 후궁으로 삼았다.
고종은 그녀를 굉장히 총애해 측실로만 두지 않았다. 정식으로 정해진 황후를 폐위하고, 측천무후를 황후로 봉했다. 그러니까 태종과 고종 2대에 걸쳐 황후가 된 주인공이 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고종 역시 돌연 사망했다. 측천무후는 다음 황제인 중종中宗과 예종睿宗 때까지 섭정을 했다. 정치무대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다. 섭정이란 원래 한발 물러서서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호國號를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취임했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황제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그녀를 탕녀로 만들어 버렸다. 궁중에서 미소년을 선발해 다양한 섹스 테크닉을 가르친 뒤 숙련된 남자를 상대로 끊임없이 성의 쾌락을 즐기다가 싫증이 나면 궁정 뒤뜰에 마련된 연못에 던져 죽여버렸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파트너를 선정해 그전보다 훨씬 쾌락한 성행위를 즐기다가 그 역시 화장지처럼 연못에 내던졌다. 중국인의 화장실과 목욕탕은 칸막이가 없이 설계돼 있다. 측면에서 보면 벌거벗은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다. 이런 아이디어는 측천무후가 남근이 큰 사람을 고르기에 편하도록 고안된 은밀한 관람 장소였다.
그 많은 소년 장사 가운데 늙은 여우 측천무후가 아무리 혹사해도 끄떡없는 설회수薛懷羲 라는 스물 안팎의 잘생긴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총애를 받은 그는 궁전 출입을 자유롭게 할 만큼 특별한 존재가 됐다.
그는 궁중 안에 작은 사찰을 건축하고 어느 정도의 권력을 거머쥐었다. 집안에 가둬두고 성의 노리개로 삼는 여성을 ‘첩’ 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목적으로 구중궁궐에 갇힌 남성을 면수面首라고 불렀다. 여자 황제는 그런 면수에게도 권력을 나눠서 줄만큼 위세가 당당했다. 하지만 설회수 역시 즉천무후가 하수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권력 쥐었지만 성 노예 전락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녀 마르코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작은 독립국 나봐르의 왕비였던 여걸이다. 그녀는 소녀시절부터 색정에 눈을 떠서 세명의 오빠들하고 성희를 즐겼다. 당시는 근친상간이라는 죄목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근친상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행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근친상간이라는 금기가 탄생하기 이전의 탈선이었으므로 그들 가문에서 벌어진 근친상근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이므로 유야무야로 종결됐다.
곽대희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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