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그들은 ‘붐’을 타고난 세대다. 출산 붐과 함께 태어났고, 경제성장의 붐, 구조조정의 붐, 명예퇴직의 붐을 거쳤다. 그런 베이비부머의 대규모 은퇴가 임박하고 있다. 이미 은퇴한 이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은퇴한 베이비부머의 ‘인생 2모작’은 힘겨울 듯하다. 일자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진 돈도 많지 않아서다. 베이비부머, 그들의 눈물겨운 직장 찾기를 취재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씨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수천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중학생인 딸을 생각하면 최소 10년은 일해야 한다. 박씨는 5년 전까지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에 다녔다. 휴대전화 개발 부서에서 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연봉 1억 정도를 받았지만 직책이 오른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명예퇴직했다. 명예퇴직의 보상으로 1억여원의 격려금과 추가지원금이 제공됐지만 이것만으론 ‘제2의 인생’을 살기 어려웠다. 그래서 박씨는 중소기업에 재입사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나이에 중소기업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그에겐 대기업에서 익힌 ‘휴대전화 기술’이 있었다. 박씨는 “제2의 인생에서도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간은 박씨의 편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녹록치 않은 현실이 밀려왔다. 2008년 리먼사태 후 박씨가 다니는 중소기업에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박씨의 남다른 이력과 높은 연봉은 그를 구조조정 1순위에 올려놨다. ‘실업자’ 위기에 처한 박씨. 하루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더 쉽지 않다.

부행장 시절 그는 주식에 빠졌다.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그가 사들인 주식은 대부분 ‘휴지조각’이 됐다. 할 수 없이 그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선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퇴직금도 바닥날 지경이다. 대출 이자를 매월 800만원씩 갚아야 하는데, 퇴직금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재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 반응도 냉담해졌다. 빚ㆍ이자 독촉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내는 “막노동이라도 하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처음에는 ‘명색이 부행장이었는데’라며 발을 뺐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는 지금 막노동판을 전전한다. 그러면서도 취업시장을 유심히 살핀다. 혹시 자신에게 기회를 줄만한 기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얼마 전 취업박람회에 다녀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행장 시절 친구들이 제2의 인생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들렸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직장에서 나오니 정말 할 일이 없어요. 더 무서운 건 일을 시켜줄 기업이 없다는 점이죠.” 그는 오늘도 ‘사선死線’에 서있다. 아무런 버팀목도 없이….
부행장 출신 퇴직자의 안타까운 사연
1955년생부터 1963년(52세~59세)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위기를 겪고 있다. 정년은 임박했는데 은퇴 이후 딱히 할 일이 많지 않아서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월 225만원이 필요하다. 그것도 자녀결혼 비용 등을 모두 제외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 정도 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은퇴한 베이비부머는 전체의 12~13%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베이비부머의 지상과제는 자기 집을 사는 거였다. 소득 대부분을 집 사는 데 썼다. 더구나 위로는 부모를, 아래로는 자식을 부양해야 했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는 이런 이유로 저축할 여력이 없었다. 도리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모실 수도, 자식을 가르칠 수도 없었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후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늘고 있다.

금융결제원의 당좌거래 정지 내역 2년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1~8월까지 부도난 개인사업자 237명 중 104명(43.9%)가 베이비 붐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취업이다. 하지만 재취업은 더 어렵다. 무엇보다 나이가 많다.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에게 이들은 탐탁찮은 존재다. 정부와 기업이 이들의 재취업을 돕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게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올 9월 12일에는 고용노동부와 전경련이 공동으로 개최한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 역시 장단점이 공존했다. 그날의 이야기다.

# 9월 12일, 일산 킨텍스 전시장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안. 버스에는 40~50대쯤 돼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정장을 차려 입고 손에는 서류봉투를 든 채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버스에서 만난 것으로 보이는 두 남성은 “반갑다”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한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볼 줄이야. 자네도 사전 면접 신청했나?” “네, 이력서만 20장 출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형님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동두천쪽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이나 걸렸어. 그나저나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 이들이 향한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서구에 위치한 킨텍스(KINTEX) 2홀.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도착한 박람회에는 이들과 비슷해 보이는 베이비부머 구직자가 엄청난 규모로 모여 있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모인 구직자만 4000여명. 베이비부머의 구직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박람회 시작은 오전 10시. 하지만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행사장 입구에 구직자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경련 홈페이지에 사전 등록한 참가자만 1800명에 달했다. 2시30분쯤에는 행사 개요와 참가기업목록이 담겨 있는 디텍토리 북은 모두 동이 났다.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는 고용노동부ㆍ전경련ㆍ중소기업중앙회ㆍ한국무역협회ㆍ노사발전 재단이 공동 주최해 전경련 주관으로 치러졌다. 삼성ㆍ현대차ㆍ기아차ㆍSK•KT 등의 대기업 협력업체 100곳과 중소기업 42곳 총 142개 업체가 베이비부머 인재채용을 위해 모였다. 이들은 박람회가 열리기 전부터 공식 웹페이지에 구인 정보를 올리고 사전면접 접수를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 접수를 통한 상담과 면접도 이뤄졌다. 박람회에서 1차 면접을 진행한 구직자는 업체의 추가 면접을 통해 채용이 최종 결정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전면접에 200명 몰린 회사도 있어
박람회 참가자는 베이비부머의 남성이 대다수를 이뤘다. 여성 구직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들은 정장 차림으로 손에는 노란 서류 봉투를 들고 게시판에 빼곡히 붙어 있는 구인공고를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그 중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60~70대 노인도 보였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한 인사 담당자는 “1944년생 노인이 찾아와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했다”며 “정말 절실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업체 부스 한쪽에는 이력서 출력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출력 코너에 있던 한 직원은 “2시밖에 안됐는데 A4용지 4박스가 모두 동이 났다”고 말했다. 박람회가 열린 지 약 네 시간이 지나 이들이 사용한 A4용지는 1만장에 달했다. 해당 직원은 “이력서를 몇 십장씩 뽑아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야말로 불꽃 튀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 구직자는 면접대기실에 마련된 메이크업 코너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어울리는 색상에 대한 조언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주최 측에서 마련한 무료 서비스로 진행됐다.
통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업체 부스에는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넣은 봉투를 손에 꼭 쥔 채 줄을 서 있었다. 업체에 따라 편차는 있었다. 행사 내내 5명 정도 면접을 본 것에 그친 기업도 있었고, 사전 면접신청자만으로도 구직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업체도 꽤 있었다. 발전소ㆍ플랜트 공사 등을 진행하는 삼영기업에는 사전면접에만 200명 가까이 몰렸다. 삼영기업은 종업원수 500여명에 연 매출액 1조원 규모의 회사다.
삼영기업에 지원한다던 한 구직자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놀랐다”며 “경력도 다들 화려해 뽑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당 업체 면접관은 “우리 회사를 꼭 와야겠다는 절실한 의지가 느껴졌다”며 “채용 조건을 1~3년 경력으로 내걸었는데 20년 경력에 열정까지 넘쳐 뽑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솔루션 업체의 인사담당자는 “미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업체인 퀄컴에서 근무했던 사람도 지원했다”며 “경력 20년차에 대기업 출신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보수와 상관없이 일자리만 얻으면 좋겠다’는 베이비부머도 많았다. 이날 박람회에 참여한 한 구직자는 “나이 많은 구직자들은 아무리 취업 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내도 나이만 보고 이력서를 열람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장에서 자신이 보유한 기술을 직접 담당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메리트”라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구직 전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현장에 나왔던 대다수 인사담당자들도 “구직자들에게 절실함 느껴졌다” “나 역시 전에 없던 위기를 느껴 미리 공부를 하는 등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통신장비ㆍ전자기기 업체의 인사담당자로 참여한 개발 담당 이사는 “부서 팀원이 필요해 직접 면접을 보러 왔는데 대기업 경력은 기본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늦은 나이에도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선배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광전송 장비개발을 총괄한다는 그는 “전문잡지를 사보면서 신기술을 최대한 익히려고 하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며 “지금부터 자기계발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박람회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전에도 비슷한 박람회가 몇번 있었는데 베이비부머라는 브랜드를 달고 진행한 박람회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박람회를 꾸준히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이벤트라는 비판도 많았다. 실제로 이번 박람회는 단 하루, 그것도 8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급인력을 위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참여업체 대부분은 대기업에 납품을 하거나 종업원수가 100명 이상인 곳이 많았지만 이들이 뽑는 직급이나 하는 업무는 대리급이나 신입사원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직위나 급여수준 등을 자세히 명시하지 않은 기업도 대다수였다. 한 구직자는 “140개가 넘는 업체가 참여했다는 데 직위를 제대로 명시한 기업이 얼마 없다”며 “10년 이상 경력직을 뽑으면서 직위는 ‘협의’ ‘당사규정’으로 써놨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기업 출신의 50대 초반 구직자는 “대리급이나 사원을 뽑는다고 써놓은 기업이 많다”며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능력주의 사회도 아닌데 50세가 넘어서까지 대리 직급을 달고 ‘실무’에 나선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베이비부머 고급인력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과 노하우로 후배를 양성하는 업무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도 나와
애초부터 채용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업체도 있었다. 한 중소기업의 부스 담당자는 “납품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나오라고 해서 나오긴 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임원진과 상의한 후 사람을 뽑을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그들은 ‘붐’과 함께 인생을 살았다. 그들이 태어났을 땐 ‘출산붐’이 일었다. 1970~80년대는 경제성장의 ‘붐’을 탔고, 1990년대 들어선 부동산 붐과 사교육 붐을 촉발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기업 구조조정과 해고 붐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평생을 ‘붐’과 함께 살아온 이들이 세상에 홀로 섰다. 기업에선 쫓겨날 위기고, 가정에선 설 자리가 없다. 그들이 힘을 잃은 빈자리, 한국경제는 과연 메울 수 있을까.
Issue in Issue
베이비부머 박람회 가보니…
상조업체 ‘폭풍인기’
9월 12일 열린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는 국내 유명 상조업체들이 참여했다. 대규모 상조업체에서는 상조상품개발사, 장례행사스텝, 관리자(지점장)를 각각 20명씩 모집했는데, 많은 베이비부머가 관심을 가졌다. 한 상조업체의 인사담당자는 “대기업 임원을 지냈던 사람은 물론 외국계 CEO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베이비부머 구직자들이 지점장직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점장의 경우 월 500만~600만원의 높은 수익과 직책이 보장돼 많은 베이비부머가 몰린 것 같다”며 “지점장 직을 수행하려면 상조와 관련된 전반적인 분야를 모두 습득하고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직책과 급여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상조업체 인사담당자도 “베이비부머 가운데에는 일만 할 수 있어도 감사히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자신의 과거를 운운하며 턱없이 높은 연봉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한국 베이비부머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 기준으로 약 900만명에 이르는데 이는 전체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규모다. 지금까지 사회 중심에서 활동해 왔지만 2010년부터 본격적인 은퇴시기를 맞이하며 격동기를 겪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혹독한 시련을 맛보며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겪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자녀 부양과 부모 봉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 團塊世代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의미한다. 단카이라는 말은 일본말로 덩어리를 뜻한다. 단카이 세대는 대량생산형 조직사회에 순응적이면서 동세대끼리 잘 뭉치는 성향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들 세대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진학, 취업, 혼인, 주택 문제 등으로 매사 심각한 경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일본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근면과 성실함이 어느 세대 보다 특출 나며, 자신들이 일본의 경제신화 주역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충성심과 정의감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에코 부머(echo-boomer)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자녀 세대로, 1979~85년생(2012년 현재 만 27~33세)이 이에 해당한다. 이 용어는 부모세대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밀레니엄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전후세대 또는 불경기 후 사회적ㆍ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1990년대를 전후하여 소비문화의 주체로 떠올랐다. 부모세대가 이뤄놓은 사회적 기반 및 경제력 등의 영향력을 이어받아 20~30대를 넘어 2010년대 들어 또 하나의 소비 주체로 떠올랐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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