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공약 지킬 수 있을까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국민 100%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 “민생을 살려 중산층 비중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국민은 좌절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 그에게 ‘공약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은 약속에 예민해졌고, 문 대통령을 향한 기대치도 높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 설치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만들라.’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처음으로 했던 업무지시다. 대선 기간 강조해왔던 1호 공약을 곧바로 추진하겠다는 거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벼랑에 몰려 있다.
청년실업률(15~29세)은 4월 기준으로 11.2%로 역대 최고치(통계청)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34%를 넘는다는 조사결과(20 16년 현대경제연구원)도 있다. 대ㆍ중소기업 임금격차는 62.9%(고용노동부ㆍ2016년 임금총액 기준)에 달한다. 자영업 생존율은 30.8%(국세청ㆍ창업과 폐업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특히 대출금리가 0.1% 포인트 오를 때 자영업 폐업위험도는 7〜10.6 % 상승(한국은행)했다.
1344조원(한국은행ㆍ2016년 기준)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 된 지 오래다.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20년 전 일본의 부동산버블 때보다 위험한 상황”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기업도 죽을 맛이다. 2016년 수출액은 전년보다 5.9% 감소(산업통상자원부)했다. 자동차ㆍ선박ㆍ석유제품 등 주요 산업의 수출이 죄다 줄었다. 여기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 HAAD) 배치와 통상외교를 둘러싼 미국ㆍ중국발 외부변수까지 있다. 이런 상황들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거다.
반면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확대, 복지 확대, 정부의 시장 개입, 노동권 강화 등을 강조한다. 정부 역할이 커지는 만큼 재정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재정지출 증가율을 현재 연평균 3.5% 수준에서 7%로 2배 늘리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정책의 큰 틀을 바꾸려 한다는 얘기다.
재원 없으면 공허해질 공약들
일단 시장의 반응은 좋다. 대선 이후 코스피는 연일 사상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11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26.25포인트(1.16%) 오른 2296.37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4차 산업혁명 육성, 친환경 에너지 확대 정책의 수혜 업종들이 오름세를 보였다.
하지만 과연 장밋빛 전망만 있을까. 아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큰 걸림돌이 있어서다. 바로 재원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들은 보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정책들이 꽤 많다.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81만개 창출(5년간 21조원)’ ‘청년구직촉진수당(연 4500억원)’ ‘출산수당(연 4800억원)’ ‘기초연금 확대(연 4조4000억원)’ ‘아동수당 도입(연 2조6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이 추산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총액만 해도 5년간 약 178조원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 가계부에서 밝힌 필요 재원 총액보다 43조원이나 더 많다.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끌어 모을 것인지가 문 대통령 경제정책의 핵심인 셈이다.
문제는 재원마련 방안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선 기간, 경쟁후보들로부터 재원마련 방안을 놓고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방향성은 있다. ‘재정개혁(112조원)과 세입개혁(77조원)’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방향성일 뿐이다. 389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공약집에서 재원마련 방안 페이지는 고작 2페이지이고, 수치상으로 기재된 내용은 1페이지에 불과하다.
재원 대책이 文 평가기준 될 것
특히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기업 부채 등을 제외한 순수 정부부채만 올해 기준으로 68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0.4%에 달한다. 아무리 선진국 대비 부채 수준이 낮은 편에 속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작정 정부부채를 늘릴 수는 없다. 차기 정부에도 부담을 줄 수 있고,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채발행은 최후의 보루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에 국민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재원마련 대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한다면 큰 기대만큼 국민의 실망도 커질 것이다. 그러면 정책 추진력도 약해진다. 국민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기대치는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정부’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 구절처럼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를 원한다. 문 대통령이 5년간 곱씹어야 할 말이다.
김정덕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