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의 15년 전, 그리고 현재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인수ㆍ합병(M&A) 전문가’로 통한다. 1990년대 말 M&A를 통해 두산을 현재의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시킨 인물이 그다. 하지만 약 15년이 흐른 현재, 그가 구축했던 사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두산건설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두산중공업ㆍ두산인프라코어는 실적악화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회장이 선장에 오른 후 대한상의엔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신세대 오너’ ‘트위터리안 CEO’ 답게 박 회장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박 회장은 취임 직후인 올 10월 대한상의 임직원 200여명과 함께 직접 얼굴을 맞대고 격의 없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상의에 ‘소통’이라는 DNA를 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울러 박 회장은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두산, 외형 확대로 인한 위기 오나
하지만 박 회장이 신경써야 하는 건 대한상의뿐이 아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두산그룹이 ‘위기설’ 복판에 놓여 있어서다. 두산그룹은 현재 두산중공업ㆍ두산인프라코어ㆍ두산건설 등 중공업ㆍ기계 중심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3사의 매출을 합하면 2012년 기준 19조원이다. 그룹 매출 26조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문제는 3사의 상황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두산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44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마이너스 3086억원)에 이은 2년 연속 영업손실이다. 2008년 5월 21만원대에 머물던 주가 역시 12만5500원(2013년 12월 9일 현재)로 내려앉았다.

두산건설 지분 84.29%를 보유하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올 초 알짜 사업부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사업부문을 두산건설에 양도하고,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해 2조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해줬다. 그럼에도 두산건설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두산중공업의 재무적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익명을 원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두산인프라코어ㆍ두산엔진ㆍ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두산중공업은 그룹 전체의 재무적 완충력을 지지하는 축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계열사에 지속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의 실적까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14조2519억원, 영업이익 74 0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1조3165억원, 영업이익은 2285억원 줄어들었다. 순이익은 더욱 심각하다. 이 회사의 같은 기간 누적 순이익은 99억원으로 전년 동기비 4571억원에 비해 4000억원가량 감소했다.

박용만 회장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산그룹의 사업구조를 구축하는 데 실무역할을 톡톡히 한 인물이 박 회장이라서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OB맥주를 포함한 주력 사업을 매각하며 그룹 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2001년부터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ㆍ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ㆍ2005)ㆍ미쓰이밥콕(현 두산밥콕ㆍ2006)ㆍ미국 밥캣(현 두산인프라코어 인터내셔널ㆍ2007) 등을 인수하며 두산을 중공업ㆍ기계 중심 그룹으로 변신시켰다.
우선 그는 사업조정에 나서고 있다. 인수ㆍ합병(M&A) 전문가답게 비非수익사업 또는 그룹성장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되는 부문을 빠르게 정리했다. 두산이 수입차 딜러사업, 외식 브랜드 버거킹을 매각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이 사업조정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면 세부적인 매각 계획과 절차는 자회사가 직접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돌려막기식 유동성 확보’로는 부족
그러나 두산건설과 관련해선 제한적인 재무구조 개선안을 내놓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두산건설은 최근 10분의 1의 감자와 4000억원 규모의 증자 계획안을 발표했다. 두산건설은 이번 방안을 통해 내년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차환자금을 확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기적인 요소가 강하고, 실질적인 상환능력 회복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두산건설의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두산중공업이 떠안고 있는 재무적 부담도 줄어든다. 물론 반대의 경우엔 두산중공업 역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15년 전. 두산그룹은 과감한 M&A를 통해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그 초석을 마련한 박용만 회장이 또다시 심판대에 섰다. 이번에도 ‘과감한 정리’가 그의 몫인듯하다. 100년 기업 ‘두산’의 또 다른 미래가 박 회장에게 달렸을지 모른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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