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와 스토리 ‘telling’
류준호의 유쾌한 콘텐트
문화콘텐트가 대중화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문화콘텐트는 기업과 정부의 경쟁력으로 인정받으며 영향력이 커졌다. 문화콘텐트는 이제 그 개념만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누구나 스토리텔링을 들어봤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에서, 기업의 브랜드와 제품명에서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스토리텔링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스토리와 스토리텔링 차이는 ‘시점’
지자체는 축제를 개최하기 앞서 중앙 정부로부터 지원금 심사를 받는다. 심사에서 중요한 항목은 스토리텔링이다. 배점이 높다보니 일부는 억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고민 없이 접근한 탓에 특정 소재에 몰린다. 대표적인 게 이순신과 세종대왕이다. 전국에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소재로 스토리텔링을 만든 지역 축제는 각각 8개, 6개나 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다 스토리(story)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과 스토리의 차이는 ‘시점’이다. 스토리는 과거완료형이고, 스토리텔링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완료형인 스토리는 이야기가 종결된다. 그래서 스토리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현재진행형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점이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현재도 변화하지만 미래의 변화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주체다. 말하는 주체는 고객·소비자·시청자·사용자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은 만든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를 듣고, 보고, 즐기는 대상이 ‘텔(tell)’의 주체인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만든 사람은 소비자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과 구조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구조’의 특성을 띈다.
이야기 구조에서 스토리텔링은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가지의 이야기가 생성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과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 고객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부하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Key)’다.
스토리텔링에서 주목할 것은 고객과 함께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1단계는 이야기 구조를 제시하고, 2단계는 고객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3단계에서 이야기의 구조가 확장되면, 4단계에선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가지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구조다. 이런 특징은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지역 축제나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에게서 나타난다.
매해 100만명이 찾는 화천 산천어축제. 산천어라는 이야기 구조 위에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산천어를 잡는 추억(이야기)이 덧붙는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하면 돼(Just Do It!)’를 내세운다. 방황하는 나에게 믿음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신념(이야기)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이키의 스토리텔링 기법
산천어축제와 나이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객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야기의 주도권이 지자체나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있는 것이다. 이는 무한 순환구조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100만명이 함께하면서 100만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디지털은 쌍방향을 지향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앞으로 디지털시대의 스토리텔링은 더 복잡해지고 치밀해질 것이다.
류준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연구교수 junhoy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