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자와 원수는 특허 한 장 차이
양날의 검 ‘특허공유’
2013-11-12 김정덕 기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특허공유(크로스 라이선스)’가 현실화되고 있다. 올 2월 디스플레이협회 총회에 참석한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LG디스플레이와의 특허공유 가능성을 언급한 후 양사는 특허소송과 특허무효심판을 9월 23일 모두 취하했다. 양사의 실무진은 이후 정기적으로 만나 특허공유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10월 1일 ‘제4회 디스플레이의 날’ 기념식에서 삼성과의 특허공유 실무협의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항을 말하긴 어렵지만 협의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신 기술이 쏟아지는 IT업계에서 특허공유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삼성은 2004년 경쟁기업 소니와 2만여건의 특허를 공유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관계자는 특허공유 협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분야에서 수율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핵심부품인 박막트랜지스터(TFT) 제조에선 삼성이 앞선다. 삼성의 다결정실리콘(LTPS)은 단가가 비싸지만 품질이 좋다. 반면 LG는 코닥의 OLED 특허를 사오면서 기술력을 강화했다. 현재 화이트RGB(WRGB) 방식으로 OLED 양산 문제도 해결했다. 하지만 TFT 분야의 옥사이드는 단가가 싸지만 품질이 낮다.” 서로 장•단점이 있으니 상대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단 얘기다.
관련 업계도 특허공유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삼성과 LG가 양분하고 있지만 중국이 추격해오는 상황을 감안할 때 특허공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삼성과 LG가 중국 등 후발주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건 OLED와 플렉시블인데, 이번 특허분쟁에서도 알 수 있듯 어느 한쪽이 기술력 우위를 갖췄다고 할 수 없다”며 “그래서 두 기업의 특허공유는 더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공유 범위 설정 쉽지 않아
우려도 없지 않다. 특허공유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기준을 정해서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는 주로 TV와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TV와 스마트폰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타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특허공유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또는 광범위하게 설정하면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거다. 사례도 있다. 2001년 인텔과 AMD는 특허를 공유했지만 “AMD가 자회사가 아닌 기업과 특허를 공유했다”는 인텔의 비판이 제기되면서 특허침해소송을 겪었다.
공유된 특허의 사용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지도 문제다. 예컨대 OLED 기술의 경우 조명 분야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한상범 사장이 “특허공유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고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물론 양사가 특허공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잘 조율하면 된다”면서도 “다만 특허공유를 하고 난 이후에 특허침해소송에 휘말리면 현재 남아 있는 서로에 대한 배려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