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 뚫은 정체성의 ‘힘’
미샤ㆍ더페이스샵 맹추격하는 ‘이니스프리’
국내 최초 허브 코스메틱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마트에 진출했다. 반응이 좋았지만, 화장품 유통 판도가 빠르게 변했다. 2006년 로드숍 시장에 진출했다. 경쟁사와의 격차가 컸지만 ‘상권보호정책’을 고수했다. 멀리 내다본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6년 후, 포화상태에 이른 로드숍 시장에서 이니스프리가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뉴 밀레니엄으로 세계가 들썩였던 1998년.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 화장품연구소 ‘나텍’(NATEC)을 개설했다. 고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나텍은 2년간의 연구개발(R&D)을 거쳐 국내 최초 자연주의 허브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를 론칭했다. 2001년 1월의 일이었다.21세기에 탄생한 이니스프리는 새로운 유통경로를 찾았다. 방문판매와 화장품전문점이 주도하는 기존 화장품 유통경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장 트렌드를 이끌려면 20대와 30대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대형마트’였다.
시장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마트ㆍ까르푸ㆍ월마트 등 대형마트에 진출한 4개월 만에 월매출 10억원을 올렸다. 이니스프리의 성공을 견인한 것은 또 있었다. 마트의 특성을 감안한 중저가(1만~2만원) 정책이었다. 호재도 있었다. 2000년대 웰빙 열풍이 불면서 이니스프리의 ‘자연주의 허브’ 콘셉트가 각광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면 생활용품 취급을 받을 것’이란 업계의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내화장품의 유통시장에 변화가 일었다. 저가형 로드숍 코스매틱 브랜드의 활약이었다. 마침내 국내화장품 시장 판도를 바꿔버렸다. 이들은 저가와 품질을 무기로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소비자를 흡수했다.
이니스프리는 고심 끝에 전략을 수정했다. 소비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2006년 1월 서울 명동에 로드숍 매장인 이니스프리 허브스테이션을 론칭했다.
뒤늦게 로드숍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경쟁사 브랜드와의 격차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다 이니스프리는 로드숍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권보호정책’을 고수했다. 이니스프리가 2006년 상반기에 오픈한 매장은 50여개.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이는 전국에 한정된 매장을 운영하겠다는 얘기였다. 자칫 독이 될 수 있었다.
시장은 냉정했다. 경쟁사인 미샤와 더페이스샵의 2006년 매장 수는 각각 3000여개, 500여개였다. 이니스프리는 외형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선 또다시 ‘이니스프리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반전은 2010년에 일어났다. 수십개의 로드숍 브랜드의 등장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브랜드마다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었는데, 특히 자연주의를 내세운 브랜드 간의 콘셉트 중복이 심각했다.
반면 이니스프리의 콘셉트는 굳건했다. 그동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매장을 오픈하며 속도조절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조롱받던 ‘상권보호정책’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009년부터 허브 대신 ‘제주’를 내세워 청정 이미지를 강조한 것도 브랜드를 살리는 데 주효했다.
효과는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 매출 836억원, 영업이익 861억원이었던 실적은 2년 만인 지난해 매출 2294억원, 영업이익 3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니스프리의 철저한 상권 관리가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