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하나로 日 아성 깨다
국내 FPCB소재 시장구조 바꾼 ‘이녹스’
연성회로기판(FPCB)은 디지털산업의 핵심소재다. FPCB소재 시장을 주도한 것은 일본이었다. 국내 업체가 개발에 나섰지만 품질을 극복하지 못했다. 일본산 제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장 구조를 소재전문기업 이녹스가 바꿨다. 2003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다.
디지털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연성회로기판(FPCB).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부터 첨단 IT제품까지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간다. FPCB의 역할은 첨단제품 안의 부품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인체로 본다면 ‘신경’과 같다.디지털산업을 주도하는 FPCB는 원래 방위산업용으로 개발됐다. 1960년대 미국 화학기업인 듀폰이 핵심소재인 폴리아미드(PI) 필름을 생산한 것이 발단이었다. PI필름은 ITㆍ우주항공ㆍ방위산업 분야에 쓰이는 핵심소재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소재가 개발됐지만 정작 활용도는 낮았다. 이유는 비싼 가격이었다. 연구용으로 전락할 뻔했던 FPCB를 상업화한 것은 일본의 한 전자회사였다. 1980년 듀폰의 일본 생산거점인 토레이 듀폰이 FPCB를 휴대용 전자제품의 회로로 구성한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FPCB소재와 기술개발의 선도국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FPCB소재 시장은 급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정보통신산업이 호황을 이뤘기 때문이다. 모든 전자제품과 기기에 FPCB소재가 대량으로 들어갔다. 당시 국내에서도 FPCB소재 개발에 성공한 업체가 있었는데 소재전문기업 ‘새한’이었다. 현재 국내 FPCB소재산업을 주도하는 이녹스의 전신이다. 하지만 당시 새한의 품질 수준은 미진해 일본에서 전량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새한은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1년 전자정보소재를 개발하던 연구원과 핵심인력이 새한마이크로닉스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3년, FPCB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들은 2005년 4월 사명을 이녹스로 바꾸고, 일본산이 독점하던 2층 FPCB소재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6년엔 FPCB소재를 본격적으로 양산하면서 기존 일본산 제품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녹스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이 3층 CCL(동박적층판) 분야에서도 일본산 제품을 대부분 대체하고 있다.
이녹스가 시장 구조를 선도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15년 동안 쌓은 기술력 덕분이었다. 이녹스는 고분자특성 설계, 합성ㆍ배합, 가공기술, 생산ㆍ평가설비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2011년 신공장을 세우고 생산능력을 확충한 데 이어 생산라인을 전문화했다.
탄탄한 기술력을 무기로 삼은 이녹스는 괄목할 실적을 보이고 있다. 2011년 1159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423억원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알차다. 136억원(2011)에서 193억원(2012)으로 4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신속한 결정으로 이익구조를 개선했다. EMI(전자파 장해) 차폐 필름 등 스마트 플렉스(Smart Flex) 사업부의 적자품목이었던 MCCL(금속동박적층판)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녹스 관계자는 “저가형 LED 제품의 판로를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고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증권가는 이녹스의 이런 결정이 향후 스마트 플렉스의 이익구조를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기홍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MCCL 사업부 철수 효과는 2014년부터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