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인물의 뚱한 조롱

손보미의 Art & Dream | 페르난도 보테로의 반전 작품

2013-10-02     손보미 ProjectAA* Asian Arts 대표

재미있다는 것은 어떤 상황일까. 코미디언이 일부러 만들어낸 바보 같은 넘어짐이나 지능이 모자란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행동일까. 하지만 진짜 재미는 별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느낄 수 있다. 사회의 편견에 해학적으로 반항할 때, 반전의 매력이 있을 때 ‘재미있다’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예술은 아름답고, 예술 속 주인공은 더욱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반전의 매력을 선사하는 한 조각 작품. 필자도 모르게 ‘큭’하고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 작품을 만난 곳은 콜럼버스 서클(Circle·광장)에 있는 타임워너센터의 1층 로비다. 1492년 미국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 높다랗게 서있고 그 아래에는 콜럼버스가 이끌던 니나호·핀타호·산타마리아호의 뱃머리가 조각돼 있다.

위트와 비판이 공존하는 작품

많은 뉴요커와 관광객의 약속장소로도 유명한 이곳. 건물 3개층이 연결된 투명 유리창으로 햇살을 듬뿍 머금은 타임워너 빌딩 로비의 양쪽 엘리베이터 앞에 필자를 웃음 짓게 만든 한 쌍의 커플. 그 커플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1932~)의 ‘아담과 이브’라는 대형 청동조각 작품이다. 작품 제목만 보면 훈남의 아담과 바비인형처럼 예쁜 이브의 조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울퉁불퉁 터질 듯한 뚱뚱한 아담과 이브가 나체로 서 있다.

뚱뚱한 것이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깨는 몸매를 한껏 뽐내는 조각을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가만…. 어쩐지 보면 볼수록 귀엽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각상 앞에서 빙그르르 계속 돌게 된다. 여기저기 신체의 은밀한 구석까지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까지 훑어보면서.

보테로는 라틴아메리카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보테로의 작품을 보면 금방이라도 터질듯 한 형태의 풍만함과 볼륨감을 느끼게 된다. 햇살이 열정적으로 내리쬐는 라틴아메리카의 대중문화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뚱뚱한 관능미과 함께 삶의 여유로 인한 늘어짐의 미학을 표현하고자 주로 부풀려진 소재를 이용해 품을 만든다고 한다.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작품을 표현하지만 옛 거장의 작품을 이용한 독특한 패러디 작품과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콜롬비아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인 바로크 양식의 성당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성직자들, 응접실, 창녀촌 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회 풍자작품으로 유명세

더 흥미로운 사실은 보테로 작품 속 인물은 뚱뚱한 것만 아니라 인물의 느낌도 뚱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일부러 인물의 개성을 거의 생략해 뚱뚱한 덩어리로 표현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도 재미있다. 때론 성직자·군인·정치인처럼 한 나라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 듯한 세력가들이 근심에 쌓인 것처럼 보이고, ‘아담과 이브’에서처럼 당연히 아름다울 것이라는 인물을 뚱뚱한 미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위트가 넘치면서도 사회비판적인 그의 작품은 미술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타임’지를 장식하는 등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위대한 화가 반열에 오른 보테로는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미술관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그는 고국 콜롬비아의 잔혹한 식민역사, 마약으로 망가져가는 일상을 안타까워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평화로운 시골을 풍경으로 자살 장면을 그리는 식이다. 과장된 인체 비례를 통해 제도화된 규범을 조롱하는 한편, 침울한 작품에 묘사된 뚱뚱한 인물을 통해 위트가 넘치고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나는 내 그림들이 뿌리를 갖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뿌리가 작품에 어떠한 의미와 진실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내가 손을 댄 모든 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영혼으로부터 침투된 것이기를 바란다.” 단순한 유희가 아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게 ‘재미 있는 삶’이라면 예술도 그런 삶과 같은 맥락에 있진 않을까.
손보미 ProjectAA* Asian Arts 대표 www.sonbo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