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은 배를 버리고 도주하는데…

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43회

2013-09-30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배설은 자기의 병선도 군사도 돌아보지 않고 단기로 도주하였다. 배설의 도주는 삼군의 장졸에게 큰 불안을 주었다. 새로 온 전라우수사 김억추까지도 무예는 있다 하나 아직 연소하고 전장의 경험과 학식이 전임 이억기에게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위태롭구나, 백암 이장군이여! 삼도통제사라는 이름뿐이요, 병선이 있나 군량이 있나 군사가 있나 군기가 갖추어졌나. 나라일이니 힘 미치는 데까지 목숨 있는 날까지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라는 책임감으로 나서기는 하였으나 앞길이 아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순신의 앞길에는 오직 실패가 있을 뿐이요, 십중 구의 죽음 있을 뿐이요, 그 뒤를 이어서는 조정에서 참소와 무함과 형벌이 있을 뿐이었다. 정말 “새를 잡고 나면 활을 치우고 토끼를 잡고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8월 10일에 보성 땅에 와서 전날의 부하 맹장으로 전공을 많이 세워 가선동지嘉善同知까지 진급되었던 배흥립이 찾아와 유숙을 같이하였다. 또 송희립 최대성같은 용장들도 11일 아침에 찾아와 다 종군하였다.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황정록이 각기 병선 한 척씩을 타고 와서 순신에게 속하였다.

순신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순신이 왔단 말을 듣고 놀라서 자기의 병선 10여척을 몰고 회령포1)로 달아났다는 사정을 안위에게서 들었다. 안위는 또 배설이 적의 수군의 크나큰 형세를 두려워하여 정녕코 배를 몰고 육지로 갔으리라고 하였다. 순신은 그를 염려하였다. 13일에 본영 우후 이몽구가 순신의 부르는 영을 받고 병선 1척을 타고 왔으나 군기라고는 싣고 오지를 아니하여서 순신에게 엄히 문책을 당하였다.

하동현감 신진Τ媤이 찾아와 고하되 삼가 악견산성을 지키던 우병사 김응서는 적군이 삼가로 오는 것을 알고 소위 일도의 대장이 되어 싸워볼 준비는 고사하고 겁이 나서 미리 달아나고 [요시라는 어디 가고 도망을 해] 정개산성을 지키던 진주목사도 달아나 산성이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순신은 듣고 분개함을 마지 아니하였다. 15일에 보성 군기고를 검열하여 쓸 만한 것만 가려 말에 나누어 실었다. 16일에는 김희방金希邦 김붕만金鵬萬 등 여러 호걸이 찾아와 종군하였다. 다 전날의 부하이던 장사였다. 17일에 장흥 백사정白沙汀에 와 말 먹이고 회령포에 들어왔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수질2)이 심하다고 칭하고 출영하지를 아니할뿐더러 그 이튿날 19일에 교유서를 숙배할 때에도 참석하지를 아니하므로 순신은 대노하여 배설의 체리替吏를 잡아다가 그 오만무례함을 꾸짖고 형장을 때려 보냈다.

순신이 통제사가 다시 되고는 전라남도 연해안 각 읍을 거쳐 회령포로 급히 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순신이 순천 낙안 보성 장흥 등지로 다니며 군사도 모집하고 전날의 제장들도 거두며 첫째로 병선을 물색하였다. 그러나 병선이라고는 도저히 싸움에 쓸 만한 배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 거제현령 안위와 발포만호 황정록이 병선 2척을 타고 왔다. 순신이 안위에게 묻기를 배설은 어찌해서 오지 않느냐고 하였다. 안위는 비밀히 고하되 배설은 병선 10여척을 끌고 회령포로 가 있는 것은 도무지 적세가 워낙 우세하며 강하고 큰 것을 겁을 내어 싸울 뜻이 없고 도망할 기회만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순신은 안위의 보는 바가 내 뜻과 같다 하여 이 때문에 행여나 배설이 이렇게 귀중한 병선을 침몰시키거나 태워버리고 상륙 도주할까 하여 급속히 회령포로 달려와 배설의 불의에 나타난 것이 배설로 하여금 놀라게 한 책략이었다.

배설은 지난 칠천도싸움에 원균과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자기에 속한 병선만 끌고 한산도로 도망하며 공공연히 말하기를 “원균이 필패하리라”하고 창고에 방화하고 백성을 피난시켰다. 그 뒤에 바다로 떠다니며 기회를 보아 주사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 관망하는 전술을 취하여 이시언 김응서의 무리와 같은 행동을 하여 볼까 한 것이 천만의외에 노량목에서 순신을 만났는데 순신으로부터 노량목은 삼남의 요충이니 그를 사수할 것을 권고한다. 배설은 즉석에서 답하기를 군사상 가장 중대하신 분부이니 사수하겠다고 승낙은 하였으나 순신이 떠난 뒤에는 그 승낙한 것을 바꾸어버렸다. “큰 집이 무너지려는데 나무 하나로는 지탱하기 어렵다” 하고 곧 노량을 버리고 전라도 바다로 쫓겨 넘어온 것이었다. 그러나 또 뜻밖에 회령포에 와서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렵기도 하고 귀찮아하기도 하였다.

13척과 1000척의 대결

첫째로는 이순신이 상관이 되어 왔으니 반드시 노량목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논죄할 듯도 하고 둘째로는 나아가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기를 엄명할 듯도 하여 이것이 다 배설에게는 무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회피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꼭 하기 싫은 일이었다. 배설의 위인은 재략과 무용이 출중하여 그런 고로 그 성품이 굳세고 오만하며 자긍심이 많아서 타인을 누르는 기질이 강하다. 그러니까 원균 같은 무리는 마음속에서 깔보고 있었다. 그 마음에 굴복이 되어서 그 기록에 쓰기를 “이 섬에서 대인물을 만나보게 될 줄 몰랐다” 하여 순신을 자기보다 훨씬 나은 줄로 그 오만한 성질에 스스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 지모와 무예도 이억기와는 상등한 사람으로 자처하고 원균 같은 자는 비교할 수도 없다. 배설은 일본 수군이 몇 백척인지를 잘 안다. 그 함대가 금명일간이면 전라도 바다로 밀어 넘어올 것을 잘 안다. 이제 13척밖에 없는 병선을 가지고 하물며 이미 패전한 뒤에 500~600척이나 되는 적이 쳐오는 것을 대항하자는 순신의 사정은 제 아무리 손자 오자 같은 명장이라도 달걀로 바위치기가 되고 말 것이니 꼭 싸워죽자는 말과 마찬가지인 것을 배설의 명민한 두뇌 속에는 벌써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배설은 순신을 대하기를 꺼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설마 순신이 자기의 체리를 잡아다가 장형까지 할 줄이야 몰랐던 것이었다. 배설은 비로소 겁이 나서 순신의 군문에 나아가 석고대죄하였다. 순신은 배설을 불러들려 대청에 오르게 하고 순신은 반가운 안색으로 사소한 감정 없이 상대하여 말하기를 “장수는 적이 오거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제일 큰 일이니 지금 적선이 녹도에 왔다하니 일각을 늦출 수 없소 다행히 13척 병선이라도 남았으니 곧 나아가 적을 막아야 하오. 출전할 준비를 어서 하오” 하고 엄명하였다.

배설은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소인인들 싸울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적선이 노량목을 넘어선 것만 해도 500여척은 넘을 것이고 한산도 저쪽에 있는 적선을 합하면 1000척 이상은 넉넉할 것 같소. 이제 13척의 병선을 가지고 이렇게 우세한 적의 함대를 막으려하는 것은 마치 적수공권으로 무너지는 태산을 버티는 것과 다름이 없는가 하오. 소인의 우매한 생각에는 차라리 배를 버리고 육지에 올라 육군을 모아 상륙하는 적군을 막는 것이 득책이 아닌가 하오. 사또의 뜻이 어떠하올지?” 하고 배설은 간절하게 심중에 있는 말을 간하였다.

순신의 곁에는 제장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도 배설의 진언을 그럴듯하게 듣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순신은 벌떡 일어서 팔뚝을 들면서 강개한 태도와 큰 목소리로 “그러면 우리나라 삼천리강토의 해상권을 우리 수군 제장이 살아 있고도 일본군에게 모조리 내어준단 말이오? 설사 조정에서 이러한 말이 있더라 하여도 우리 수군은 적을 막으라 하신 왕명을 받은 장수이니 힘 미치는 데까지 목숨 있는 날까지 우리의 해상제해권을 지켜 잃지 않는 것이 우리 수군 군인의 직무일 것이오! 또 전략상으로 말할지라도 원균의 잘못한 패전으로 낙심할 것은 없는 일이며, 전라우도 이북의 충청 경기 황해 평안 제도의 병선은 아직 남아 있으니 불과 몇 달 이내에는 다시 대함대를 조직해 낼 수 있는 일이며, 그러고 또 우리는 지리 즉 도서 항만의 험이를 알고 조수의 순역을 알고 하여서 잘만 이용할 것 같으면 이소격중하는 묘한 비결을 발휘하여 이길 수도 있는 일이니 한나라 광무제의 곤양대전과 주유의 적벽대전이 다 이소격중하였으며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수나라 병사 백만을 일부의 군대 수만으로 격파하고 양만춘楊萬春은 당나라 군사 100만을 안시성安市城 하나로 막아냈거든 적의 병선이 비록 많다하나 두려워 할 것이 무엇 있소? 어서 출전준비를 해야지!” 하고 배설에게 엄명하였다.

순신은 전라우수사 김억추에게 군관을 보내어 남아 있는 병선을 시급히 거북선 모양으로 가장이라도 하여 오게 하고 우수영 창고에 있는, 이억기가 우수사로 있을 때에 만들어 둔 철삭[쇠 동아줄]을 있는 대로 다 실어오게 하였다. 순신은 회령포는 포구가 좁아서 싸우기에 불편할 것이라 하며 또 순신은 사졸들이 다 겁내는 마음을 품은 줄을 짐작한다.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며 적은 이긴 뒤를 타서 예기가 방장하고 우리는 패한 뒤가 되어 예기가 좌절되어 있을 때이므로 순신은 혼자서 사기를 고무하여 묘책을 써서 승리하는 병법을 말하며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자는 충의를 장려하였다.

맹장의 휘하에는 약졸이 없다는 것이었다. 통제사 이순신은 칼을 빼어 들고 제장을 독령督令하여 다 배에 올랐다. 배설도 배에 올랐다. 판옥대맹선이 합 13척이요, 탄 장졸이 이순신 이하로 2000인에 불과하였다. 성화같이 군량과 음료수를 배에 실고 13척 병선이 일제히 돛을 달고 회령포를 떠나 이진梨津으로 진을 옮겼다.

임진년 이래 6년 동안에 순신이 심력을 다하여 건조하고 수선하여 놓은 1000척이나 되는 병선을 원균의 잘못한 죄로 칠천도 한번 싸움에 모조리 없애고 또다시 심력을 경주하여 이 외롭고 약한 형세를 가지고 나서는 이장군은 유성룡의 시에 “척수친부천반벽隻手親扶天半壁”3)이라는 뜻과 여실히 부합하였다. 이 시를 읊고는 동정의 눈물을 누구 아니 뿌리리오. 8월 24일에 순신은 병을 무릅쓰고 배에 올라 행선령을 내렸다. 도괘지刀掛地라는 데 이르러 아침밥을 먹고 꺽금도를 지나 어란진4)에 이르니 벌써 관리 백성 할 것 없이 다 달아나고 텅 비었다. 그래서 밤을 바다에서 지냈다. 26일에는 군관 임준영任俊英이 말을 달려와서 적선이 벌써 이진까지 범하였다는 말을 고하였다.

순신은 김억추에게 밀령하여 명량해협5)에다가 철삭으로 바다 밑을 가로질러 막게 하고 김위金渭와 송희립을 보내어 그 일을 감독하게 하되 명량의 안목 바깥목 두 군데를 택하여 조류가 가장 급한 여울목에 쇠 동아줄 즉 쇠사슬을 걸고 남쪽 언덕에 기계를 설치하여 감아올리고 풀어 내리게도 하여서 그 제도가 극히 교묘하게 하되 극비밀리에 준공하라고 하였다.

27일에 경상우수사 배설이 순신에게 진언하되 “적선 300여척이 이진에까지 왔다한즉 어떻게 싸운단 말이오?” 하고 무서워하는 기색이 얼굴에 나타났다. 순신은 답하기를 “물은 흙으로 막고 병사는 장수로 감당하는 법이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소? 싸워서 깨뜨릴 것이지!” 하고 순신의 두 눈동자에는 전기 불이 일어나 배설을 쏘았다.

분개를 금치 못하다

배설은 순신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배설은 적선도 무서우려니와 순신이 더욱 무서웠다. 배설의 음성은 떨렸다. “13척밖에 안 되는 배로써 300척의 적선을 어떻게 싸운단 말씀이오?” 하였다. 순신은 “그러면 영감은 어디로 피하자는 말이오? 내가 있으니 염려 마오” 하고 웃었다. 배설은 한참 묵묵하다가 대꾸하기를 “장수의 영을 어찌 피할 수 있겠소…” 하고 물러갔다.

배설의 마음에는 어찌 하면 이 죽을 곳을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여 순신의 고집불통하고 꿈적도 않는 태도를 원망하였다. 28일에 과연 적의 선봉선이 불의에 어란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순신의 13척 전선에 탄 장졸들 중에는 아직 싸움에 경험도 없는 새로 모집된 사람이 많아서 모두 겁을 내어 당황하고 분주하고, 경상우수사 배설은 칠천도에서 도망하던 버릇을 재연출할 자태가 보였다. 순신은 칼을 빼어 들고 배설이하 제장에게 적선을 맞아 싸울 것을 명하고 순신이 몸소 선봉이 되어 탄우와 포연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하여 포를 쏘며 돌입하였다. 배설은 순신의 장령을 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군사들도 어찌 되나 하고 대장선의 뒤를 따라 진격하였다. 그중에도 전날의 부하들은 순신을 태산같이 신뢰하여 필승을 기대하는 듯이 맹렬히 싸웠다.

그러하여 순신의 함대는 풍우같이 공격하는 바람에 적선은 많은 손해을 입어 예기가 꺾여서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순신의 함대는 갈두6) 끝까지 추격하다가 순신은 쇠를 울려 군을 거두었다.

순신은 예측하되 적의 선봉이 어란진에 우리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갔으므로 반드시 주력함대의 적의 대군이 본격적 공격이 있으리라 하여 곧 전함대를 몰고 장도獐島로 진을 옮겼다가 그 이튿날 진도군 벽파진7)으로 차차로 서쪽으로 적을 유인하는 듯이 물러나고 또 물러나서 진을 쳤다. 벽파진은 진도의 동쪽 끝에 있어 그 안에 능히 수십척의 배를 숨길 수 있었다. 이 벽파정 아래에서 여러 섬 사이로 북으로 향하고 20리 나가면 진도와 해남 사이에 한강 넓이만 한 물길을 두고 마주보는 곳이 명량이라는 해협이었고 그 해협을 지나 오른편 해남 쪽으로 오긋하게 들어간 곳이 전라우수영이었다.

이 해협은 어구가 심히 좁고 조수가 급하게 흐르는 곳에는 물 밑으로 큰 바위가 가로막혀서 문지방같이 되었으므로 조수가 빠지면 여울이 되어 물결이 험악한 곳이었다. 순신은 미리 김억추와 김위 송희립의 무리를 밀령하여 이 해협에 쇠 동아줄을 물속으로 건너막는 공사를 하루바삐 장치하여 놓게 하였다.

편성된 함대는 이몽구가 타고 온 좌수영 병선 1척, 배설의 병선 8척, 녹도 병선 1척, 안위의 배 1척, 김억추가 거북선으로 위장한 배 1척, 유형의 배 1척 합 13척의 판옥대맹선이었다. 세력은 심히 외롭고 약하였다. 순신의 심중에는 분개함을 금할 수 없을 것이었다. 순신은 이 13척으로 된 함대를 몰고 서쪽으로 계속 물러나 벽파진으로 온 뜻은 천험인 명량해협의 지세와 조류의 급한 수력을 즉 우주간의 대자연을 자기의 전략상으로 이용하자는 심산이었다.

이 명량 울돌목을 경유하는 조수는 목포 앞바다로 들고 나고 하는 물이어서 하루 네 차례로 조수가 소리를 악악 지르고 물결이 한길이 넘게 언덕이 지고 용솟음을 쳐서 배가 왕래할 수 없게 되는 시간이 하루도 네 번이나 된다. 이 급한 조류와 또 인력으로 된 두 줄의 철삭 이 두 가지 조화는 순신이 미리 천지간의 자연력을 인공으로 변환해 이것을 군략상으로 원용 응용 이용하자는 복안이었다. 전에 풍신수길이 고송성을 물에 잠기게 하던 수단에서 가일층 더 기묘하였다.

“우리 이순신 장군이 간신의 모함에 죽지 않고 또다시 나타나 벽파진에 와서 또 적을 막는다” 하는 소식을 듣고 각 지방 연해에 흩어져 있던 부호의 피난선 상선, 어민의 어선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수없는 적선이 질풍같이 바다를 덮어 몰려온다는 소문까지도 들었으나 그래도 이 여러 배 사람들은 순신의 위대하고 너그러운 날개 밑에서 살아날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순신은 천신이니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얻어 우리를 살려주리라 하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9월 2일 새벽에 경상우수사 배설이 배를 버리고 도주하였다. 배설은 순신의 귀신같은 도략도 10배되는 적의 대세력 앞에는 결국 전멸이 되고 말 것을 짐작한다. 원균은 비록 용열하다 하나 그 수하에 이억기 이운룡 같은 명장이 있었으며 병선도 수백 척이 있었지마는 칠천도 일전에 전멸이 되었거든 하물며 13척의 병선을 가진 순신이야 어림없는 고집불통이야 하고 배설은 칠천도에서 하던 대로 도망하고 말았다.

초7일에 탐망군 임중형林仲亨의 보고에 적선 55척이 갈두 끝을 돌아왔는데 그 중에 13척은 벌써 어란진에 와서 우리 주사를 찾는다고 하였다. 순신은 곧 각 전선에 대기명령을 내리고 피난하는 민선에 대하여는 경동치 말고 멀찍이 있어 의병疑兵 모양으로 가만히 떠있으라는 영을 내렸다. 그리고 절도 있게 진퇴하라고 하였다.

배설은 자기의 병선도 군사도 돌아보지 않고 단기로 도주하였다. 배설의 도주한 것은 위급한 이때에 삼군의 장졸에게 큰 불안의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새로 온 전라우수사 김억추까지도 비록 무예는 있다 하나 아직 연소하고 전장의 경험이라든지 학식이라든지 전임 이억기에게는 비교가 못된다. 순신이 군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도 김억추는 잘 알아듣지를 못하여서 첨사나 만호 자격에 불과하지만 그를 추천한 좌의정 김응남의 잘못으로 장수의 중임을 맡긴 것이라 하여 순신은 개탄하였다.

그래도 배설은 병법의 소양이 있고 실전의 경력도 있는 상당한 장수라 하여 순신은 그 재략을 아껴서 아무쪼록 동심합력하려 하였지마는 그는 너무나 경계심이 과민하여 닥쳐 올 형세를 비관하고 나를 버리고 간 것이라 하여 순신의 낙심은 여간이 아니었다.

조선군, 대승 거두고 의기충전

순신의 13척의 병선에 대하여 55척이나 되는 적선이 쳐온다는 말에 군사들과 피난선들의 사람들은 무서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신시나 되어 적선 13척이 벽파진을 향하여 와서 포를 쏘고 달려든다. 순신은 전함대에 출동하여 맞아 싸우라고 명하고 자기가 선봉으로 최전선에 나서서 겁을 내는 각선의 용기를 고무하기 위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순신의 탄 기함의 각양 대포는 적에게 많은 손해를 주었다.

적은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며 각양 대포를 놓고 내닫는 것을 보고 또 그 뒤에 많은 의병 즉 민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다 순신의 후군이라 하여 적은 얼마 싸우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순신은 부하 각선을 몰고 추격하다가 바람과 조수가 다 거슬러 올 때이므로 군을 거두어 벽파진으로 돌아왔다. 피난민들은 순신이 적을 쳐 물이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춤추었다.

순신은 제장을 자기가 탄 기함에 불러놓고 명하기를 “오늘 밤에는 적이 야습하여 올 염려가 있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고 응전할 준비를 하여야 된다” 하고 또 민선에 대하여서는 “오늘 밤에 포성을 듣거든 일제히 횃불을 들고 멀찍이 따라 나오라”고 명하였다.

이경이나 되는 때에 아니나 다를까. 과연 적이 멀찍이서 쳐들어오는 흔적이 들렸다. 순신의 제장은 모두 겁을 냈다. 순신은 “미리 준비가 있는 우리는 겁낼 것이 없다. 만일에 회피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고 엄명하고 또 적이 착탄거리 안에 들기 전에는 대포와 화전을 쏘지 말고 대기만 하고 있으라 하였다. 적의 포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순신의 배는 나는 듯이 섬 그늘에서 쑥 나오며 각양 대포를 쏘고 북을 울렸다. 한 시간 동안이나 싸우다가 적은 순신의 복병에 해를 입어 많은 사상자를 내고 배도 여러 척이 부서져 대패하여 달아났다. 순신의 군사는 대승을 거두어 의기충천하였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